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2)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열번째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트럭 운전사는 보길대교를 지나 면사무소 앞에 내려주었다. 식당 앞에서 노인이 젊은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보길도' 지명은 15세기 ‘동국여지승람’에도 등장하고 있어 훨씬 오래전부터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보길은 한자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바구리의 옛말 ‘보고리’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보길도 형태가 바구니와 비슷하고 일부주민들은 아직도 '바구리 섬'이라고 부른다. 바구리를 한자음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조선시대 한글을 언문(諺文)으로 비하하고 한문을 진서(眞書)로 떠받들던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대사상으로 인한 문화적 폐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몸도 갈비뼈를 굳이 늑골(肋骨), 염통을 심장(心腸)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문장이나 간판에도 외래어를 써야 품위 있고 그럴 듯하게 인정받는다. 우리말을 살리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야기가 빗나갔다. 어쨌든 보길도는 해안선은 41킬로로 노화도와 같지만 면적은 33㎢로 노화도 25.01㎢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인구는 1250세대 2900명 정도로 노화도 절반수준이다. 아무래도 노화도가 읍소재지로 경제력도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보길도는 문화적 측면에서는 노화도보다 월등하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이후 많은 문인이 이곳에서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따라서 완도군은 지난해 보길도에 문학관과 창작실을 건립했다. 고산 유적지 세연정 인근에 주방시설을 갖춘 전통한옥 윤선도 창작관은 문인들에게 1년 이상 무료로 개방한다. 내가 이 글 제목을 ‘부자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로 택한 이유이다.
윤선도 원림
젊은이는 우리를 명승 제34호 윤선도 원림(園林)까지 태워주고 돌아갔다. 원림은 윤선도가 병자호란 후 은거하며 시문과 풍류를 벗 삼아 말년을 보낸 곳이다. 원래 뛰어난 자연풍광에 정원을 만들어 인공미를 가미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이다. 고산이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유흥공간이며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지었다. 51세 때인 인조 15년(1637) 왕이 삼전도에서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중 푸르른 숲에 우거진 아름다운 섬을 발견하고 아예 터를 잡은 것이다. 산세가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부용동으로 이름 짓고 주봉인 격자봉 아래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그 후 두 차례 귀양생활과 벼슬로 서울에도 가고 해남 등 다른 곳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85세로 별세할 때까지 섬 여기저기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등 여러 건물을 짓고 25곳 바위 등 명승지에 정자와 대(臺) 이름을 붙였다. 그는 오우가, 산중신곡 등 여러 가사와 어부사시사 등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다. 세연정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다. 정자 중앙에는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기란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고산 윤선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다.
그는 과거 급제 후 공직생활 60년 가운데 20년이 넘게 귀양살이를 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욱하는 성미에 과격한 상소를 여러 차례 올린 일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시 당쟁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는 남인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당시 예송논쟁에서는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북인인 우암 송시열과는 심한 경쟁관계에 있던 정적으로 사사건건 서로를 비방했다. 그는 다산 정약용의 5대 외조부이다. 그의 유배생활은 그의 나이 80세에 끝나고 별세할 때까지 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뿌리 깊은 당쟁에서 몰린 남인의 정치적 어려움은 그 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된 셈이다. 그러나 윤선도는 대대로 벼슬이 끊이지 않은 명문가 출신에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력으로 도처에 정자와 별장을 세우고 시문과 가무를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춘하추동 각 10수 씩 40수에 달하는 그의 대표적 연작인 어부사시사(漁父四詩詞)도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어부(漁夫)들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기는 사대부 낚시꾼 어부(漁父)들의 낭만을 노래한 것이라는 평가다. 그의 오우가(五友歌)도 마찬가지다.
“내 버디 몇치나니 수석과 송죽이라 /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 두어라이 다 밧긔 또 더 야 머엇리” (내 벗이 몇이냐 헤어보니 물과 돌 소나무, 대나무로다. 동산에 달 떠오르니 그 또한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이면 됐지 더해 무엇하리)
전형적인 양반네들 풍류시로 사대부 금수저다운 작품이다. 어쨌든 그는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조선 시조시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윤선도는 시문 외에도 풍수지리와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제2의 무학대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의사로 민간요법 관련서적 약화제(藥和劑)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재능과 업적은 유배지에서 가사문학과 저서를 남긴 송강 정철과 20여 년 유배지에서 수십 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 등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의 학문과 시맥은 성호 이익과 채제공에게 이어지고 정약용도 그의 재능을 이어받았다. 그는 본부인 남원 윤 씨 외에 조 씨 설 씨 두 명의 첩으로부터 4명의 적자와 3명의 서자를 두었다. 그러나 그는 별세하기 전 가뭄에 시달리는 보길도 주민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식량을 풀기도 했다.
나는 그의 삶의 자취를 보면서 부유층의 강직한 선비이자 낭만적인 휴머니스트로 생각한다. 세연정 지역에는 그가 학문을 연마한 낙서제와 동천석실 등도 있지만 노래에 맞추어 수십 명이 춤을 추며 나선형 모양의 무대로 오르는 서대(西臺)와 동대도 있다. 이밖에도 세연정 일대에는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인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는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든 판석보까지 있다. 세연지 연못에는 혹약암이라는 당장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 등 일곱 개 바위가 경치를 더해 준다. 윤선도의 세연정은 내가 3년반 전 찾았던 담양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윤선도 문학관
세연정 관람을 마치고 윤선도 문학관과 창작관을 둘러본 후 면사무소로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열녀각이 있어 들어가 보니 숙원 김해 김 씨 열녀비가 있다. 120여 년 전 여인의 이야기다. 16세에 혼인해 시부모를 성심껏 봉양하다 남편이 죽자 곡기를 끊고 28일 만에 자진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감동은 커녕, 분노만 느꼈다. 당시 죽더라도 여필종부(女必從夫) 했던 불쌍한 여인의 열녀각을 세워 다른 여인들의 모범으로 삼겠다는 남성우월주의 표본으로 생각된다. 남자들은 부인이 죽으면 당연히 재취하고 살면서도 당당히 첩을 얻던 시대 여자들은 재가도 못하게 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전국 대부분 열녀각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김해 김 씨 여인을 죽인 것은 잘못된 유교적 남성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여인들에게 주입시킨 그 시대 남정네들이다.
숙원 김해 김 씨 열녀각
열녀각을 나오자 노인이 굳이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 지역 특산물은 전복이다. 전복탕을 맛있게 먹고 민박집을 잡아 들어갔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갑자기 배탈이 왔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견딜 수 없어 약방을 찾았으나 보길도에는 없고 노화읍에 가야 한단다. 버스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오고 걷기에는 체력이 딸렸다. 민박집 주인이 면사무소 옆 보건소에 가보라고 권했다. 보건소에는 사무원과 의사 둘 뿐이다. 국민보험이 없어 일반수가로 계산하니 약값과 치료비가 상당히 비싸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의사가 밖으로 나가 약을 닷새 분을 주면서 그냥 가시라고 한다. 사무원이 싱긋 웃으며 의사가 자신의 보험으로 처방전을 끊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들어가 의사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의사는 “우선 아프신 것 낫고 봐야지요“라며 아무 걱정마시고 좋은 여행하시라며 현관까지 전송해 주었다. 고맙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또 다른 인정과 여유를 보는 느낌이다.(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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