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명이 사망하고 351명이 부상한 11월 13일(금) 파리테러 직후, 프랑스는 긴급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현행법상 12일을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11월 20일 임시국회를 개회하고 3개월 연장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11월 26일자로 다시 돌입하는 국가비상사태는 2016년 2월말까지 발효될 예정이며, 프랑스 전 국토는 물론 과달루프, 마르티니크, 마이요트 등 해외령까지도 포함한다. 

국가비상사태는 2005년 11월에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출신 이민자들이 밀집된 파리근교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선포됐었다. 당시 프랑스대통령은 파리남쪽 그리니, 파리북쪽 생-드니 등 28개 파리근교도시에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6개 지구에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번처럼 프랑스 전역에 국가비상사태가 발효된 것은 알제리전쟁 이후 처음이다. 

현재 프랑스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전시상황이다. 하지만 단순한 전쟁이 아닌, 첨예한 복선들이 깔린 새로운 형태의 21세기형 전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슬람테러(IS)와의 피비린내는 이념전쟁이면서, 동시에 전쟁 대상에 프랑스 내국인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 우려감도 도사려있다.

2015년 새해 벽두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1월 7일 샤를리 엡도 테러이후 다시 발생한 11월 13일의 테러는 더 충격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첫째는 등골이 오싹케 하는 최악의 테러수법인 카미카즈(kamikaze) 자폭테러들이 버젓이 파리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카미카즈의 표적이 평범한 선남선녀였다는 점. 프랑스-독일 친선축구를 관람하러 경기장에 모여든 축구팬들, 미국 록그룹 공연을 보기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든 음악애호가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한가하게 주말저녁을 보내던 평범한 시민들이 표적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셋째는 1월의 샤를리 엡도 테러범들은 물론이고, 이번에 새로 등장한 카미카즈도 자국민들이라는 점에서 프랑스는 더욱 경악했다. 89명의 사상자를 내며 바타클랑 공연장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바꿔놓았던 3명의 카미카즈들 중에 신원이 밝혀진 1명은 전직이 RATP 시내버스 운전자였다. RATP는 2005년 파리근교 폭동이후 이민자 자녀들의 사회적응과 취업률을 향상시키고자 이들을 대상으로 채용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터였다. 파리근교 생-드니 출신인 이 테러범은 2012년 RATP에 사표를 던지고 이슬람테러집단에 합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카미카즈 자폭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는 데는 엄청난 병력이 요구된다. 

생-드니 중심가에서 11월 17일 수요일 새벽 4시 20분부터 벌어진 소탕작전에 육군 1사단이 출동했다. 3명의 테러범을 소탕하기 위해 무려 5,000발의 총알이 발사됐다. 참혹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테러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 S리스트... 영장 없는 압수수색, 체포, 구금

 

국가비상사태에 돌입하면서 가장 먼저 경찰, 헌병, 군인들의 역할이 강화됐다. 일명 S리스트에 오른 테러감시대상 인물들을 영장 없이 압수수색, 체포가 진행되고 있다. 

현행법상 인권차원에서 21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압수수색이나 체포가 시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긴급사태라 영장 없이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다. 11월 19일까지 6일 동안 전국에서 무려 600여건의 압수수색이 시행됐고, 감시대상 157명의 주거지와 활동범위에 통제가 뒤따르는 등, 테러범 추적과 테러 사전 차단에 박차를 가했다. 

올해 1월 S리스트에 오른 감시대상은 5천 명, 10개월 후 11,500명으로 늘어났다.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프랑스 국적 소지자들은 2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공식 집계도 있다. 이들 가운데 RATP직원, 공항 인부도 포함되어 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듯 1월 테러이후 S리스트는 대폭 늘어났지만 공권력의 강력한 통제조치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11.13 파리테러가 발생하자 1월 테러 이후 무엇을 했느냐며 경찰과 테러정보요원들에게로 눈총이 쏠렸다. 그러자 경찰노조 측에서 해명하고 나섰다. 테러수사관들의 정보력과 경찰병력은 우수하지만, 이들의 행동력과 추진력을 뒷받침해줄 과감한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사관, 경찰들의 현실과 의자에 앉아 지시를 내리는 정치계, 법조계의 정책 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다고 경찰노조 측에서 밝혔다. 130명이라는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뒤에야 경찰과 정보수사관들이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도록 뒤늦게 발목을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한편 11월 17일 오전 생-드니에서 펼친 대대적인 테러소탕전에서 수사관과 경찰병력의 민첩한 정보력과 우수한 역량은 인정받았다.

 

▶ 경찰 24시간 무장, 정당방위권 인정 

 

총기훈련을 받은 경찰 중, 희망자에 한하여 24시간 총기로 무장할 권한을 갖는다. 경찰의 정당방위권도 인정된다. 즉 경찰이 먼저 총을 쏘았다 해서 차후 법적심판을 받지 않는다. 11.13 테러즉시 경찰노조 측이 관철시키고자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했던 사항들이다.

지난 11월 17일 파리의 번화가인 생토노로레 거리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여 시민들이 대피하는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경찰과 대치했던 장본인은 자동차절도범이었다. 경찰이 먼저 총격을 가해 절도범에게 경상을 입힌 것으로 밝혀졌는데, 국가비상사태에서 생긴 한 에피소드이다.

국립경찰(Police national)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시장이 채용하는 시립순경(Police municipale)도 무기를 소지하고 방탄조끼를 착용할 권한을 갖는다. 시립순경의 비무장에 논란이 불거진 것은 1월 테러직후였다. 1월 8일 쿨리발리 테러범은 파리근교도시 몽루즈의 거리에서 마주친 여자순경을 무참하게 사살했다. 비무장에 방탄조끼도 없이 유니폼만 입었던 시립순경은 정당방위로 맞설 기회마저 없었다. 

11.13 테러에서도 총기 없이 바타클랑에 출동했던 시립순경이 중상을 입었으며, 근무를 마친 후 총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한 경찰은 제대로 손 한번 쓰지 못한 채 카페테라스에서 다른 손님들과 함께 무참히 사살됐다. 물론 총기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경찰이나 시립순경이 총기를 잘못 다루다 일으킬 불발사고에 대한 우려감도 도사려있다.

 

▶ 공공장소 출입 제한, 야간통행금지도...

 

시민들의 자유생활에도 제약이 뒤따른다. 공공장소에서 신원확인조사 혹은 불신검문에 응하지 않거나, 공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은 최고 2개월 징역과 3,750유로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일부 공공장소 출입이나 집회도 금지될 수 있다. 파리와 파리근교지역은 11월 27일 금요일, 테러희생자 추모식을 제외하고, 11월 30일까지 공공장소에서의 모든 집회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이로 인하여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음식물을 나눠주는 자선단체 ‘온정의 식당(Restos du cœur)’ 활동도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노숙자와 음식을 나르는 트럭들이 엥발리드 광장 등 파리의 공공장소에 대거 운집하기 때문이다.

야간통행금지도 발효될 수 있다. 파리 북쪽 120km 지점인 상스(Sens)는 11월 20일부터 3일 동안 테러우범지역에 저녁 2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테러와 연관되거나 찬양하는 인터넷사이트들도 사전 법적절차 없이 내무부장관의 권한으로 언제든지 폐쇄시킬 수 있다. 요즘 권총이나 전쟁무기용 어린이 장난감들도 매장에서 수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물론 프레스, TV 등 언론도 통제가 뒤따른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이후 테러범이나 테러용의자들의 출입을 봉쇄하기 위해 국경지대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자들도 검문이 길어지는 까닭에 평소보다 1시간정도 더 앞당겨 공항에 도착하도록 권장된다. 

 

한편, 11월 13일 8만 명 관람객이 자리 잡았던 생-드니 축구경기장 테러의 불발은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진다. 경기장 부근에서 21시 20분 자폭테러를 기점으로 파리 6곳에서 테러가 일제히 진행됐다. 축구경기가 이미 시작되어 경기장 외곽은 한산했던지라 행인 1명만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그럼에도 3명의 카미카즈들이 차례로 자폭했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1명의 희생자를 내기 위해 3명이 자살테러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만약에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시간대에 테러가 가해졌다면, 테러범들의 총격이나 폭탄보다도 인파가 갑자기 한쪽으로 쏠리면서 압사사고로 인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테러범들이 교통체증에 걸려 30, 40분 정도 경기장에 뒤늦게 도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뒤따른다. 생-드니 축구경기장 테러가 왜 불발로 그쳤는지, 수사관들이 풀어야할 미스터리이자 숙제로 남아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