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8 사순절 첫 번째 이야기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잠언 6:9...
<너 게으른 자야, 언제까지 잠만 자겠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겠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일손을 쉬어야지!" 하겠느냐?>
새벽에 일을 나가야하는 내게 있어 예전에는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두 세개의 시계에 각각 알람을 맞춰 놓았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 폰에 오 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놓습니다. 혹시라도 4시 45분에 울린 알람을 듣지 못할까 하는 걱정으로 4시 50분에도 울리게 해 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4시 45분에 알람이 울리면 슬그머니 끄면서 “괜찮아, 오 분 뒤에 다시 울릴 꺼야.”라는 생각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라고 내게 말합니다.
물론 조금 더 잘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일손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가 ‘조금 더“와 ’조금 더”로 계속 된다면 ‘조금 더’는 ‘조금 더’가 아니라 ‘계속 더’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국 사회에서 '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성별 지위 연령 인종 성적성향 등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폭력을, 특히 성적 폭력을 당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인 것이며, 이 다리를 먼저 건너기 위해 자신의 드러내기 힘들었던 삶을 세상에 밝히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敬意)와 찬사 그리고 사과와 존경의 뜻을 보냅니다.
이제는 그 분들의 고백에 대해 “Time's Up" 운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고, 사죄하고 처벌 되어야할 시간이 되었고, 청산되어야 할 시간이 되었으며, 통일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를 ‘조금 더’ 하면 결코 그 시간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Time's Up’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jtbc 캡처>
*********************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으면..
2018 사순절 두 번째 이야기
잠언 6:1 ...
<아이들아, 네가 이웃을 도우려고 담보를 서거나, 남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보증을 선다면, 네가 한 말에 네가 걸려들고 네가 한 약속에 네가 얽매이리라.>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은 이곳에서 목회하는 한인 목사들이 모이는 곳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회자들이 모여 이민 목회의 고충(苦衷)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교인들이 보증을 서달라고 하는데 난처하다.”는 말을 하자 듣고 있던 한 목사가 “난 성경 말씀대로 사는 목사이기에 보증을 서 줘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라고 하면서 잠언 6장을 근거로 대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후 그 모임에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만 사실 이민 목회에서 보증을 서 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더욱이 처음 이곳에 온 사람에게는 아파트를 얻거나 자동차를 사거나 할 때 누군가의 보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안 된다.’라고 잘라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더하여 처음 교회를 시작 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보증을 서 주는 것이 교인을 붙잡는 방법이 되리라는 유혹 역시 뿌리치기 힘든 것입니다.
나 역시 난감한 일을 당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 보증을 서 달라고 하면 또 서주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비록 내가 한 말에 내가 걸려 들고, 내가 한 약속에 내가 얽매이게 된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내 미련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 보증이든 담보이든 하는 것에 앞서 내가 내게 한 말에 책임을 지고 내가 내게 한 약속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먼저 바래보는 사순절(四旬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