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작년 봄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선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태극기집회도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태극기집회의 가장 앞자리를 목사들과 성가대 가운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주최측 예상보다는 적은 수였지만 실제로 한국교회에는 애국심과 신앙을 동일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표라고 자처하는 O교회의 경우는 매년 신년 예배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강단 위에 태극기를 세워놓은 교회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도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한국교회에서는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국가가 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이단이나 빨갱이 취급을 받게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육이오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나라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나라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충성을 바쳐야 하는 오직 유일한 나라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을 드립니다. 그 의미를 안다면 우리의 애국심은 상대적이 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버려야 할 우상에 대한 충성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로마의 황제 숭배 사상
초대교회 공동체가 직면해야 했던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국가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충성하면서 로마에도 충성을 하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습니다. 네로 이후 10번에 걸친 박해는 무려 25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교회사에는 그들의 박해 이야기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끔직한 학살을 당해야 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병사들은 갖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네로의 때에는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타르를 바르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산 채로 횃불이 되어 네로 정원의 밤을 환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과 맞붙어 싸우는 모습으로 로마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박해에서도 갖가지 참혹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로마인들의 오락을 위한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진 이유는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황제는 주인이시다."라는 구호를 외쳐야 했습니다. 그것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로마인들처럼 "황제는 주인이시다."라는 구호를 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는 주인이시다."라는 말로 로마에 충성을 맹세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이사에게 십일세와 공물을 드리는 것으로 정부 관리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로마의 시민으로서 본이 되는 모든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한 가지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곧 "황제는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주님에 대한 완전한 반역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백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주님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온몸에 타르를 바르고 산 채로 횃불이 되기도 하고 사자의 밥이 되는 장면을 로마인들에게 구경거리로 제공해야 했던 것입니다. 갖가지 회유책들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도 없이 전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이야기는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86세의 나이로 폴리캅은 황제를 주로 고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명망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선행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재판관은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칭송을 받을 뿐 아니라 로마의 권위를 잘 따르는 그를 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폴리캅에게 제발 한 번만 사람들 앞에서 황제가 주시라는 고백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가이사는 주님이시다. 무신론자들이여, 물러갈지어다."라고 한 번만 외쳐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황제에게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인들에게는 무신론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폴리캅은 마침내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고 있는 원형 경기장으로 불려나갔습니다. 관리와 그를 호송하는 로마의 병사들은 한 번만 외쳐달라고 한 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폴리캅은 부드럽게 웃음을 띠며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원하는 바가 오직 그것뿐이라면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로마 관리들과 구경꾼들을 둘러보며 외쳤습니다. "무신론자들이여 물러갈지어다."라고 외친 후 "지난 86년 동안 내가 신실하게 섬겨온 주님은 언제나 나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그런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본성상 늘 신성으로 옷 입으려 합니다. 그래서 과거 모든 국가들의 황제들은 자신들을 신이라고 하거나 하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신이라고 하였고 중국의 황제는 천자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의 국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주권, 권위, 그리고 권력은 신성으로 옷 입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사회를 탈신성화 사회라고 말하지만 현대사회의 신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국가라는 권력이 신성으로 옷 입고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스탠리 하우어스는 그의 책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에서 "우리가 자기 자녀까지 버리려 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기 자녀까지 바치려 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국가입니다. 우리는 근대의 정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단순히 시민들의 자발적 합의와 계약의 산물로 보고 싶어 하지만 오늘날 국가는 국민으로 하여금 충성과 숭배를 요구하는 새로운 신이 되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조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는 단순히 정치기구가 아니라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고대인과 같은 방식으로 신성으로 뒤덮인 세계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신성한 영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국가는 아직도 신화로 덮여 있습니다. 국가는 여전히 신령한 우상입니다. 아마도 현대인들이 유일하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숭고한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국가뿐일 것입니다. 특히 19세기 이후 출현한 국민국가는 순식간에 인간의 의식 깊은 곳까지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신이며 우상이라는 인식조차 없이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국가를 떠나서는 가치에 대해 논할 줄도 모르고 사고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떠난 가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국가 이외에 진정으로 의미 있고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종교에 목숨을 건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을 받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오직 국가에만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오늘날 국가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모든 선악의 기준이 됩니다.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입니다.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주저함 없이 대답합니다. 그것은 국가에 반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아니라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인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공의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됩니다.(심지어 그리스도인들로부터도) 국가가 그런 사람을 처단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