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이야기 - 세번째 편지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잠언 6:27 ...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해원(解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 ‘해’, 원통할 ‘원’ ‘원을 푼다’, ‘원통함을 해소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을 품고 있으면 그 악함의 결과로 옷 뿐 아니라 온 몸이 타버리고 맙니다. 또한 악한 무리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결국 그 악한 행동으로 발 뿐 아니라 온 몸을 데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속에 화가 들어 있으면 화병으로 삶이 처참해 지고, 억지로 분을 밟고 있으면 인생이 괴로워집니다.
그렇습니다. 악으로부터 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악을 떨쳐 버리고 떠나면 됩니다.
하지만 분함과 화로부터 삶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원’을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해원'인 것입니다.
‘친일을 하면 삼대가 떵떵거리고, 항일을 하면 삼대가 쪽박을 찬다.’ 거나 ‘독재를 하면 삼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를 하면 삼대가 핍박을 받는다.’는 것으로부터 그냥 떠나는 것은 삶을 되살리는 길이 아닙니다. 아니 개인의 삶 뿐 아니라 민족의 역사까지도 치욕(恥辱)의 구덩이에 던져버린 채 포기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하기에 친일의 분을 품었으면 옷이 타기 전에 청산을 해야 하고, 독재의 숯불이 발아래 있거든 발을 데기 전에 꺼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성폭력의 분이 가슴에 있거든 ‘MeToo'로 풀어야 하며, 부정과 부패로 더러워진 적폐(積弊)의 불을 밟고 있거든 온 나라를 태워버리기 전에 반드시 꺼야 합니다. 더하여 나로 인해 ‘원’을 품에 품었거나, ‘분’을 밟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내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해원’ 하지 못하면 결국 그 ‘원’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받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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