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시간 대장정에 나섰지만..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11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방문한 곳은 행정구역상으로 미주리(Missouri)주의 시모어(Seymour)에 속해 있었다. 시모어는 인구 2천명이 안 되는 작은 시골 도시다. 당시 나는 시모어 읍내에서도 차로 20분 거리의 한적한 곳에서 지냈는데 하루 종일 외부 사람을 못 보는 날도 많았다. 시모어에는 그해 크리스마스 휴가철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시모어가 미국에서의 내 고향처럼 느껴졌다. 내 영어 이름인 Phil도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에릭 핸슨(Eric Hansen) 박사님이 당시 지어 주셨다.
지금 내가 가는 회사인 프라임의 본사는 미주리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 있다. 스프링필드는 시모어에서 차로 50분 거리다. 즉 시모어는 스프링필드 권역이다. 스프링필드에는 캔자스시티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느라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당시 버스가 연착(延着)돼 대여섯 시간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 스프링필드에 근 10여년 만에 다시 방문한다. 그것도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떠났던 곳에 말이다. 이것이 그냥 우연일까?
미주리 스프링필드 www.en.wikipedia.org
회사에서는 버스표를 예약해줬다. 뉴욕에서 스프링필드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34시간 정도 걸린다. 내 돈을 더 보태 비행기를 탈까 했지만 어차피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일이라 버스를 타기로 했다. 토요일 정오경에 출발해 일요일 밤 10시가 넘어 도착하는 일정이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부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준비할 것과 미리 공부할 것이 많은데 몸살기가 있어 종일 잠만 잤다. 저녁 무렵 딸아이가 준 약을 먹고서야 컨디션이 돌아왔다. 내일은 바삐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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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don’t let me out!
뉴욕을 벗어나기 힘들다. 출발한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왔다. 만우절 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이게 웬 해프닝인가.
퀸즈 빌리지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에 가서 예약한 표를 발매하려고 했더니 컴퓨터가 다운됐다며 버스 운전수에게 얘기하고 맨해튼에 가서 발매하란다. 그레이하운드 기사도 같은 소리를 하며 버스를 태워줬다. 아 이제 장장 34시간의 대장정이 펼쳐지는구나 싶었다. 이때만 해도. 비장한 표정으로 마중 나온 가족들과도 작별했다.
뉴욕 포트 오서리티(Port Authority) 터미널에 도착해 한 시간을 줄을 선 후 들은 답변은 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퀸즈 빌리지에서 부킹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표 출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탈 차는 이미 매진(賣盡)됐다고 한다. 퀸즈 빌리지에서 출발 시간이 지나도록 표를 발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결된 차량편까지 줄줄이 취소된 것이다. 밤 10시 표가 한 장 남았고 월요일 새벽 5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회사 모집 담당자에게 그 표라도 예매해달라고 할 요량으로 전화를 했지만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토요일이라 일을 안 하는 모양이다.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계속 무소식이다. 오늘은 텄다.
얼마 만인지 기억도 없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방네 설레발만 친 꼴이라 창피하다. 뭔가 일이 꼬일 때는 대개 이유가 있다. 무슨 일이 생기려는지 지켜보자.
글로벌웹진 NEWSROH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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