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꼬일때는 이유가 있다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뉴욕을 벗어나기 힘들다. 출발한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왔다. 만우절(萬愚節) 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이게 웬 해프닝인가.
퀸즈 빌리지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에 가서 예약한 표를 발매하려고 했더니 컴퓨터가 다운됐다며 버스 운전수에게 얘기하고 맨해튼에 가서 발매하란다. 그레이하운드 기사도 같은 소리를 하며 버스를 태워줬다. 아 이제 장장 34시간의 대장정이 펼쳐지는구나 싶었다. 이때만 해도. 비장한 표정으로 마중 나온 가족들과도 작별했다.
뉴욕 포트 오서리티(Port Authority) 터미널에 도착해 한 시간을 줄을 선 후 들은 답변은 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퀸즈 빌리지에서 부킹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표 출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탈 차는 이미 매진(賣盡)됐다고 한다. 퀸즈 빌리지에서 출발 시간이 지나도록 표를 발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결된 차량편까지 줄줄이 취소된 것이다. 밤 10시 표가 한 장 남았고 월요일 새벽 5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회사 모집 담당자에게 그 표라도 예매해달라고 할 요량으로 전화를 했지만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토요일이라 일을 안 하는 모양이다.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계속 무소식이다. 오늘은 텄다.
얼마 만인지 기억도 없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방네 설레발만 친 꼴이라 창피하다. 뭔가 일이 꼬일 때는 대개 이유가 있다. 무슨 일이 생기려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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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week delayed. Why?
아침에 회사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틀 늦었지만 오늘이라도 출발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다음 주에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한다. 한 주 허비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게 정상적이긴 하다.
맨해튼에서 표를 발매하겠느냐고 묻기에 표를 미리 발권(發券)할 수 있다면 퀸즈빌리지 정류장이 편하다고 했다. 다음번에 또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표를 미리 발권할 수 있다기에 퀸즈빌리지로 해달다고 했다. 퀸즈빌리지는 집에서 차로 10여분 거리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그냥 출발이 일주일 늦어진 것이고 다른 것은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출발이 무산된 다음날인 일요일 아내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눴다. 사실 아내는 트럭킹을 하러 타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가능하면 뉴욕에서 자리를 잡아보라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과 혼자 남는 것에 대해 무척 불안해한다. 그런 아내를 충분히 설득하지 않고 얼렁뚱땅 가버리려고 했던 면이 있다. 도망가려는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한다.
아내는 그동안 내가 했던 일에 반대를 하더라도 끝내는 내 뜻을 따라줬다. 나는 사소한 일은 대부분 양보하지만 중대한 결정은 관철(貫徹)하고야 마는 고집이 있다.
언쟁을 싫어하는 터라 웬만하면 묻어두려 가려는 내 성격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자신이 찌질하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도망가서는 안 된다. 대화하고 설득하고 양보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쉰이 다 된 나이에 아직도 나는 멀었다 싶다.
사실 출발하는 날까지 몸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남은 며칠 동안 가족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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