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전하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5)
동병상련의 아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달리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트빌리시를 벗어나자 바로 대초원지대로 들어선다. 삼림지대와 사막의 중간지점에 나타나는 이런 스텝지역에는 수목은 없고 비가 내리는 봄철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여름철 건기에는 말라죽어 불모지(不毛地)로 변한다. 양떼들이 곳곳에서 풀을 뜯고 있다. 양떼들 사이에는 목동이 하나나 둘이 항상 있다. 대게의 경우 한 사람의 목동이 하루 종일 양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드넓은 벌판에서 목동은 작대기 하나 들고 하루 종일 소일을 한다. 무료한 목동은 그 작대기로 돌멩이를 때려 저만큼 있는 토끼 구멍에 집어넣기를 시도한다. 그것이 골프가 되었다.
이들은 끝없는 벌판에서 파란 하늘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몽상에 젖을 것이다. 하늘에서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든지, 알퐁스 도데의 ‘별’의 이야기처럼 주인집 딸이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돌아가다가 불어난 물에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와 함께 밤새도록 별을 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이렇게 비바람이 부는 날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나는 일들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날 것이다.
내가 이런 악천후 속에 달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두려움을 벗어던지지 못하듯이 양치기들도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눈비가 온종일 내리며 갑자기 어두워질 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무렵 사랑스런 그녀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잠시 모습만 보여주고 사라져가는 그녀를 소리를 부르며 쫒아가서 세우려하면 그녀는 나무가 되어버린다. 또는 그녀가 가져다 준 맛있는 점심을 정신없이 먹다가보면 흙을 먹고 있다.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벌판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달리고 있는데 마침 바로 길 옆에서 양떼들과 함께 있는 목동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나누는데 양처럼 순한 눈을 가진 그에게서 양 특유의 냄새가 풍겨온다. 양떼들을 자세히 보면 그 무리 속에 몇 마리의 염소가 섞여있다. 염소란 놈은 질투가 심해서 자기 외에 다른 놈들이 사이좋게 붙어 지내는 꼴을 못 본다고 한다. 둘이 사이좋게 붙어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떼어놓는 일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로 삼는다. 양털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염소를 함께 키우는 것이다.
국경은 한산하였지만 군인들이 입국절차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뇌리를 떠오르는 것이 ‘독재국가’였다. 어렵사리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앞에서 우리를 맞는 것은 거대한 철문과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얼굴의 거대한 초상화였다. 철문은 문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볼일이 없겠지만 저 초상화는 시시대대로 내 시야에 나타날 것을 생각하니 결코 기분 좋은 기억만 남기지 않겠구나하는 걱정이 앞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사회의 정의로움과 행복지수는 비례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정당하고 당당하게 느낄 때 훨씬 행복하다.
날씨는 며칠째 우중충하게 가는 비가 내리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도 우울해 보인다. 입의 옷의 색상도 대부분 검정색 계통의 옷으로 어두웠고 사는 집들도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나라 어는 곳이라도 지하 3m만 파면 석유가 나온다는 산유국의 풍요로움은 찾을 수 없고 허름한 집들과 연식(年式)이 오래된 자동차들이 찌든 삶은 말해주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달리는 자동차로 내 기관지는 몸살을 앓을 지경인데 검문소를 지나다 본 그 비호감 사내의 초상화가 또 나타나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사실 저런 비호감의 사내와 여자를 국내에서도 뉴스 때마다 봐온 나였지만 이렇게 적응이 안 된다.
인구 9백만 명, 크지는 않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참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나라이다. 아시아인도, 이란인도, 터키인도 아닌 사람들의 생김새가 우선 오묘하다. 우울하며 경직된 모습 속에 감춰진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이 나그네에게 묘한 분위기를 금세 느끼게 한다. 반사막에 가까운 스텝지역에서 생산되는 기름은 아제르바이잔 국가경제의 큰 원동력이 될 것인데 사람들의 삶은 기름지지 않으니 거대한 초상화 속의 그 사내의 얼굴과 똥배가 기름지게 하는 모양이다.
19세기후반의 제정 러시아를 살찌우기에 안성맞춤의 지역이었고, 이후 구 소련연방에 편입되어 1991년 독립할 때까지 그 착취(搾取)는 계속되어왔다.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이루어냈지만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전 역사를 통해 독립을 유지한 것은 통틀어 100년이 체 안 된다고 하니 이 나라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나그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제르바이잔도 우리와 같이 역사의 참혹한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있으니 그것이 1,300만에 이르는 이산가족이다. 오스만제국과 제정 러시아와의 게임에 의해 아제르바이잔은 나눠졌다. 아제르바이잔 남쪽 지역은 지금의 이란지역에,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러시아가 갈라먹음으로서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이산가족이 생겼다. 언제나 강대국들의 이권문제로 약소국들이 희생되는 처절한 생태계 형태가 지구의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제르바이잔도 분단국이나 다름 아니었다. 지금도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나라들을 상대로 미국과 서방, 그리고 러시아가 살점하나라도 더 뜯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양치기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칭기즈칸과 다윗 왕이다. 늘 양을 돌보며 몽상에 잠겨있던 이들이 큰일을 해낼 수 있던 원동력은 열정이다. 몽상 속에 그려지던 일들이 뜨거운 열정을 만나면 안개 속에 갇혀 있던 희미한 강 풍광이 드러나듯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기개(氣槪)와 지략(智略)은 양을 돌보는 따스한 마음과 그 마음에 드넓은 들판을 품고 눈에는 푸른 하늘을 담은 데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서양이나 중동 쪽의 동화에는 목동이 왕이 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나그네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흥얼거린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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