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언론들에는 남빙양의 한 외딴 섬에서 쥐 구제 작업을 벌이던 자연보존부(DOC) 직원에게 급성 질병이 발생, 해군 함정이 긴급 출동해 며칠 만에 본토로 이송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 오클랜드 제도 전경과 건물들
구조 활동이 벌어진 ‘앤티포데스(Antipodes)’제도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남섬 최남단 항구인 블러프(Bluff)에서도 동쪽으로 800km이상 떨어진 망망대해의 섬이었다.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 뉴질랜드에는 본섬 외에 이처럼 먼 바다에 외따로 떨어진 섬들이 꽤 많은데, 이번 호에서는 그 중에서도 ‘아남극(Sub-Antarctic)’에 위치한 섬들을 오클랜드와 앤티포데스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남극해에 붙어 있는 오클랜드>
남빙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도하는 뉴스들을 접할 때면 ‘오클랜드 제도(Auckland Islands)’라는 단어를 종종 대하게 된다.
이는 블러프에서 남쪽으로 400km 이상 떨어진 먼 바다에 자리잡은 몇몇 섬들로 이뤄진 오클랜드 제도를 일컫는 것이다.
이 제도를 비롯해 그 주변 바다에는 스네어스(Snares)와 캠 벨(Campbell) 제도, 앞서 언급한 앤티포데스 제도와 바운티(Bountuy) 등 5개의 뉴질랜드령 아남극 제도들이 사방에 점점이 박혀 있다.
그러나 비록 주변이라고는 하지만 이들 섬들은 속도가 빠른 해군 함정으로도 족히 사나흘 정도는 항해해야 서로 만날 수 있는 각각 수백km씩 떨어진 절해고도들이다.
이들 섬들은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은 물론 기나긴 겨울을 포함해 연중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사나운 파도까지 몰아치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현재 상주하는 인구는 없다.
그러나 엄연히 뉴질랜드 영토인 이곳은 펭귄이나 갈매기 같은 다양한 조류는 물론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한데, 매년 뉴질랜드 정부는 섬 현황을 조사하고 생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이들 섬에는 과거 200여년 전부터 남극해를 드나들던 고래잡이배들이 기항하면서 유입된 설치동물인 쥐가 조류나 생태계의 골치거리로 등장하는 바람에 이를 없애거나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한 구제 작업도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클랜드 제도를 비롯한 앤티포데스 제도 등 뉴질랜드의 아남극 제도들은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지난 1998년 ‘세계자연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됐다.
▲ 지도: 아남극의 뉴질랜드 섬들
<서울보다 더 넓은 오클랜드 제도>
오클랜드 제도는 블러프에서는 465km, 그리고 스튜어트(Stewart) 섬에서는 360km 남쪽에 있으며 주섬인 오클랜드를 비롯해 아담스(Adams), 엔더비(Enderby), 디서포인트먼트(Disappointment), 유윙(Ewing Island), 로즈(Rose), 던더스 (Dundas), 그린(Green) 섬 등으로 구성됐다.
오클랜드 본섬은 크기가 510km², 길이가 42km이며 나머지 섬들까지 합치면 전체 면적이 625km²에 달하는데, 참고로 제주도는 1840km²정도이며 거제도가 380km², 그리고 서울이 605km² 크기인 것으로 미루어 오클랜드 제도가 결코 작지 않은 섬임을 알 수 있다.
이 섬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고 깊숙한 후미(협만, inlet)들을 끼고 있는데, 해안에는 높은 절벽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황량한 산악 풍경 속에 해발 6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여럿 솟아 있다.
1500~250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이 섬들의 연중 평균기온은 11.17℃이며 7,8월 8℃ 내외, 그리고 여름인 1월에는 15℃가량으로 해수의 영향으로 생각보다는 그리 낮지는 않은데 연중 강수량은 1500mm이다.
▲ 오클랜드 제도의 바다새들
<13세기부터 인간이 거주>
오클랜드 제도에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은 의외로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 발굴에 의해 엔더비 섬에서 13세기 폴리네시안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됐으며,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폴리네시안 주민들의 주거지 흔적 중 가장 남쪽이다. 유럽인 중에서는 고래잡이가 활발하던 1806년 8월에 포경선인 오션(Ocean)호의 아브라함 브리스토우(Abraham Bristow) 선장이 처음 발견, 아버지 친구인 오클랜드 남작의 이름을 따라 지명을 정했다.
이후 포경선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는 한편 해안에서는 수많은 물개들이 포획됐는데, 물개들이 거의 없어질 지경에 이르자 포경선들이 다른 섬들로 떠났다.
이후 1842년 채텀(Chatham) 섬 출신의 소규모 마오리 집단이 정착해 20여년 동안 거주했으며, 포경선 선원들이 아닌 고래잡이와 관련된 몇몇 유럽인들도 포트 로스(Port Ross)에서 몇년 동안 거주했다.
▲ 제너럴 그랜트호의 침몰 광경
<극적인 조난사고 벌어졌던 오클랜드 제도>
이 섬에서는 몇 차례 해난 사고도 발생했고 그중에는 우리가 영화에서나 접할만한 사건들도 있었는데, 가장 유명했던 것은 1866년 5월 발생한 ‘제너럴 그랜트(General Grant) 호’조난이다.
미국 보스턴 선적을 가진 돛대가 셋 달린 이 배는 1000톤 급으로 당시 승객 58명과 선원 25명 등 총 83명이 탔으며, 양모와 양피, 금 등을 싣고 멜버른을 출발해 희망봉을 돌아 런던으로 향하려던 중 오클랜드 섬 서쪽에서 절벽과 부딪혀 침몰했다.
결국 68명이 익사했으며 9명 선원과 6명 승객 등 모두 15 명이 생존했는데, 구명보트 2척으로 며칠에 걸쳐 이동했던 이들은 포트 로스에 도착해 대피소(hut) 2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지나가는 배들에게 구조 신호를 전하고자 2개 그룹으로 각각 나뉜 뒤 물개와 돼지를 사냥하면서 살던 중 9개월 뒤인 이듬해 1월에 선원 4명이 나침반이나 해도도 없이 뉴질랜드로 향했다가 끝내 실종됐다.
참고로 이들 섬에는 당시 인간들에 의해 1800년대 초에 돼지와 염소가 도입됐고 이들은 조난자들의 먹이감이 되기도 했는데, 1980년대에 포섬 역시 유입됐지만 다행히 적응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나머지 생존자 중 62세 남성이 9월에 질병으로 숨진 후 모두 10명이 남았다가 결국 조난된 지 1년 반이 지난 1867 년 11월 지나가던 소형 범선인 패니(Fanny)호에 발견돼 구조될 수 있었다.
한편 당시 배에는 호주에서 채굴된 2576온스(73kg)의 금과 아연(zinc) 6톤이 실려 있었는데, 이를 찾으려는 시도가 조난 직후부터 여러 차례 벌어졌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위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조난 사고를 계기로 뉴질랜드 정부는 이후 정기적으로 아남극 제도로 순시선을 보내 조난자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섬 전 지역 '중요 조류서식지역'>
오클랜드를 제도를 비롯한 아남극 섬들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조사는 1907년에 캔터베리 협회가 주관이 된 연구팀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당시 식생과 지형, 서식 동물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가운데 1941~45년에 대규모 연구가 뒤따랐으며, 이와 함께 지난 2014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규모의 보존지역(reserve)이 설정됐다.
이들 섬에는 본토와는 또 다른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며 2종류 물개(fur seal), 멸종 위기종인‘뉴질랜드 바 다사자(NZ sea lion)’와‘남방 코끼리 물범(Southern elephant seals)’들이 살고 있다. 또한 섬 주변 바다에서는 2000마리 이상의‘남방참고래 (southern right whales)’들의 서식이 관찰되기도 했다.
오클랜드 제도는 특히 새들에게 아주 중요한 서식지이자 번식지인데, 알바트로스(albatrosses)와 펭귄, 바다제비 (petrels) 등 많은 해양 조류들과 함께 내륙에도 노란왕관잉 꼬(yellow-crowned parakeet)를 비롯, 뉴질랜드 매(NZ falcon)와 투이(tui), 방울새(bellbirds), 논종다리(pipits), 가마 우지(shag) 등 아주 다양한 종류가 서식한다.
이 같은 풍부한 서식 환경에 따라 국제생물보존기구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에 의해 오클랜드 제도 전역은 현재 ‘중요 조류서식지(Important Bird Area, IBA)’로 지정돼 있다.
현재 오클랜드 제도는 과학자들과 자연보존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찾고 있으며, 이외에 극히 제한적으로 오클랜드와 엔더비 섬에 대한 관광이 당국의 사전 허가 아래 이뤄진다.
<대대적인 쥐잡기 작업 벌어진 앤티포데스>
지난 3월 6일(화) 뉴질랜드 해군과 DOC는, 원양초계함인 ‘웰링턴(HMNZS Wellington)함’이 상태가 위급해질 수도 있었던 환자 한 명을 앤티포데스에서 태우고 당일 아침에 남섬 블러프 항구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당시 환자는 동료 9명, 탐지견 3마리와 함께 쥐 구제 작업 중이었는데, 앤티포데스는 본토에서 동남쪽으로 820km 떨어진 22km²크기의 작은 제도로 헬리콥터도 갈 수 없는 외딴 섬이다.
웰링턴함은 당시 앤티포데스를 거쳐 900km 남서쪽에 있는 오클랜드 제도로 보급차 나섰던 길에 뱃머리를 돌려 이틀 만에 돌아와 환자를 태운 후 다시 만 하루 이상을 달려 귀항했다.
앤티포데스는 오클랜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조류 및 해양 포유류 서식 및 번식지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섬 전체가 보존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섬에는 19세기에 유입돼 현재 2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 쥐(mice)가 섬의 유일한 육상 포유류로 크게 번창, 조류는 물론 자생식물들에도 큰 문제가 됐다.
쥐 숫자는 헥타르 당 150마리 이상인데, DOC에서는 개체 수를 조절하고자 지난 2012년 계획 수립 후 400만달러 예산으로 재작년 3월부터 해군 도움 하에 대규모 작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무너진 대피소를 다시 세우고 헬리콥터 2대를 동원, 2016년에 65톤의 쥐약을 살포하는 등 날씨가 허용하는 한 섬에 정기적으로 체류하면서 쥐들과 전쟁을 벌였다.
이는 특히 인간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섬의 식생을 자연 그대로 지키기 위함인데 지난 3월 21일 DOC는, 최근 섬에 한 달간 머물던 팀원들이 쥐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전날 더니든으로 귀환했다고 밝혔다.
유지니 세이지(Eugenie Sage) 자연보존부 장관은, 21종의 해양 조류와 4종의 육상 조류, 그리고 150여 종의 곤충들이 쥐의 공격으로부터 이제 자유로워졌다면서, 이는 자연 보존에서 뉴질랜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굉장한 뉴스라고 전했다.
▲ 캠벨 제도의 기상 관측소
<갈수록 중요성 커지는 남빙양 섬들>
한편 최근 온난화와 기후 변동으로 지구촌의 기상 이변이 잦아진 가운데 과거에는 인간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남극과 북극 등 극지방과 주변 해역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남극 제도 중 가장 남쪽의 캠벨 제도 기상관측소(me teorological station)에는 1995년까지 과학자들이 상주했고, 이보다 더 남서쪽 호주 영토인 매컬리(Macquarie) 제도에는 규모가 더 큰 기지가 세워져 있다.
특히 현재는 ‘유엔남극조약(Antarctic Treaty)’에 의해 영토권 주장이 중단됐지만 남극 본토에 대한 영유권 논쟁이 본격 벌어진다면 뉴질랜드 역시 지리적으로 빠질 수 없는 입장이다.
이처럼 아남극 제도는 생태학상으로 자연보존이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해양 영토를 통한 어자원 획득과 기후 및 생태계 연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그 가치가 높다.
이를 감안해 뉴질랜드 정부 역시 매년 과학자들과 자연보존부 직원들이 해군 함정 등을 동원해 정기적으로 섬을 돌면서 연구와 시설물 관리를 하고 있다.
한편 일반인들은 통상 여름에 호주 태즈메니아 호바트 (Hobart)를 출발, 남극 본토를 포함해 매컬리와 캠벨, 오클랜드 제도를 거쳐 인버카길로 돌아오는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기간도 한달 가까이 되고 요금은 2만 US달러 이상인 고급 크루즈 여행이다.
남섬지국장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