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전국의 민물낚시 명소들이 밀려드는 외국인 낚시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소중한 낚시터들과 송어 자원을 빼앗길수 없다면서, 흔히 극우정당 정치인들이 외치는 ‘키위 퍼스트(Kiwi First)’라는 이름을 내세운 낚시 로비 단체까지 등장했다.
정치도 아닌 일반 취미 생활인 민물 낚시에서 이처럼 외국 관광객들과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정치적 용어까지 등장시킨 배경과 함께 현황을 알아본다.
<작년 외국인에게 발급된 낚시면허 7천건>
지난 3월 말 국내 주요 언론들은, 특히 송어(trout)를 잡고자 밀려드는 외국 낚시꾼들로 인해 어족 자원이 고갈되는 것은 물론 이들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특집 기사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실제로 작년에 국내에서는 모두 13만 8000건의 민물낚시 면허가 발급된 가운데 이 중 최소한 7000건 이상이 외국인들에게 발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하루짜리 면허 등은 관련 통계에 정확하게 잡히지 않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외국인들이 뉴질랜드에서 민물낚시에 나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주로 ‘갈색 송어(brown trout)’를 잡는데, 이 송어는 냉동선이 개발(1877년)되기 전인 지난 1864년 얼음상자에 담겨진 알들이 영국에서 호주 타스마니아로 옮겨져 부화에 성공하면서 대양주에 도입됐다.
3년 뒤 1867년에는 호주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알이 도입돼 부화에 성공한 후 남섬 하천에서 서식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북섬에서도 최북쪽을 제외하고 특히 타우포(Taupo) 지역을 중심으로 폭넓게 서식하고 있다. 작년 10월에 남섬 사우스랜드의 작은 도시인 고어(Gore)에는 갈색 송어 도입 150주년을 맞아 파이버글래스로 제작된 송어 형상의 기념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많은 강이나 하천에서 이 송어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할 정도로 남획되고 있으며, 국립수대기연구소(NIWA) 자료를 이용한 한 보고서에서는 실제 100여 곳 하천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른 배경에는 국내 낚시꾼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낚시꾼들이 명당으로 알려진 외진 장소에 장기간 머물면서 고기를 대량으로 잡은 것이 더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 고어 시내에 등장한 송어상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되는 낚시 명당들>
현재 유튜브(YouTube) 등 각종 인터넷 영상 사이트를 통해 낚시를 취미로 가진 전 세계 수백만명의 낚시꾼들이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낚시 관련 영상을 손쉽게 대할 수 있다. 최근 만들어진 ‘뉴질랜드 트라우트 앱(NZ Trout App)’에는 각 지역 낚시터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앱이 만들어진 처음 두 달 동안 그것을 사용했던 1585명 중 많은 숫자가 미국과 영국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를 소개하는 각종 영상에서 뉴질랜드를 낚시 천국과 같은 곳으로 묘사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흔하다. 이는 한국인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데, 실제로 한국교민들 중 낚시를 취미로 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는 주변인들로부터 낚시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경험들이 꽤 있다.
게다가 특히 관광업 분야에서는 낚시 전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아예 대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데, 이들이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뉴질랜드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원시 환경에서 강태공들에게는 꿈과 같은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파라다이스이다.
특히 ‘에베레스트 플라이 낚시(Mt Everest of flying fishing)’ 라고 소개하는 상품처럼 헬리콥터를 이용해 외딴 곳까지 쉽게 접근한 후 낚시를 즐기는 값비싼 상품도 많은데 최소한 인당 하루 경비가 700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낚시관광 나서는 이들은 대부분 서구인>
민물낚시가 국가 전체에 끼치는 경제적 효과는 연간 2억 5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 보존부(DOC)와 관광부처럼 서로 입장이 다른 부서들에서는 대책 마련에 대해 때로는 엇박자가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관광회사나 전문 가이드 등 모객에 나서는 입장에서는 천혜의 자원을 이용해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낚시꾼들을 끌어들이고자 각종 영상을 비롯한 소개자료 등을 만들어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와 연관된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40여 곳에서 낚시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는데, 현재 뉴질랜드 관광청(TNZ)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사업을 홍보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국인들을 포함해 많은 아시안들이 뉴질랜드를 매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낚시를 목표로 입국하는 관광객들은 주로 호주와 미국 등 서구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례로 미국 몬타나(Montana)주에 본사를 둔 한 대형 낚시 전문 여행사는 매년 전 세계 각지에 수 천명씩의 낚시꾼들을 보내고 있는데, 이 회사 관계자는 뉴질랜드 낚시 여행은 자사의 이른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몇 년 전부터, 그동안 남미로 보내던 손님 숫자를 줄이고 대신 뉴질랜드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회사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숫자를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뉴질랜드를 찾는 손님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만은 확인해주었다.
이 관계자는, “솔직히 미국 서부 지역의 강에서는 성수기 때면 보트 램프에 50여개 팀 이상이 모이지만 뉴질랜드는 대부분이 처음 찾는 곳이며, 미국 강들에 비해 고기도 많다”고 말해 이들이 뉴질랜드 낚시터를 찾는 이유 중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첨단 장비, 인터넷 정보 환경도 문제 확대에 일조>
한편 이처럼 외국에서 송어 플라이 낚시를 위해 오는 이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첨단화된 장비를 갖추고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숨겨진 낚시터들을 쉽게 찾고 있다.
특히 외국까지 원정 오는 이들이다보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좋은 장비로 무장하고 전문 가이드를 따라나서면서 깊은 숲속 오지에 뚝 떨어진 낚시 명당까지의 접근도 헬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와나카(Wanaka)에서 고급 수제 낚시용품을 만들어 파는 한 상점 주인은, 큰 돈을 쓰는 낚시꾼들은 주로 미국에서 오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출신도 늘어났으며 호주 손님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가게에서 낚싯대를 산 한 손님은 지난 시즌에 헬리콥터 경비를 포함해 혼자 7만 달러를 낚시를 즐기는데 쓰는 것을 봤다고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보통 낚시꾼들은 낚시 명당 자리는 비밀로 하고 주변에도 잘 알려주지 않는데, 최근 늘어난 외국 낚시꾼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명당 위치를 족집게처럼 잡아내고 몰려든다. 낚시와 사냥이 전문인 한 작가는, 칼럼이나 책을 쓰면서 절대 낚시했던 장소를 올리지 않는데, 이는 사진을 올리거나 대략적인 장소라도 공개하면 구글링 등을 통해 순식간에 정보가 퍼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나 스웨덴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의 한 채팅룸에 뉴질랜드 낚시 명당에 대한 위치가 어쩌다 한번 뜨기라도 했다면 아마 5년 동안은 화제에 오를 것이다”고 말하며 현 실정을 이야기했다.
또 유능한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는 국내의 한 낚시 전문 가이드는, 스마트폰에 사진을 올리는 경우에도 위치 정보를 지우고 있으며 배경에 대해서도 쉽게 눈치챌 수 없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한 낚시꾼이 자기가 잡은 고기를 자랑이라도 하려고 사진을 스마트폰을 이용해 페이스북에 올렸다면 이미 그 순간 유능한 꾼들은 위치를 대번에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 낚은 송어를 놓아주는 낚시꾼
<국내 법규와 전통 무시하는 낚시꾼들>
이처럼 외국 출신 낚시꾼들이 몰려들면서 발생한 문제 중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는 어족 자원의 고갈이다. 머나먼 외딴 곳까지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낚시꾼이라면 의례히 물 좋은 명당을 차지하고 싶고, 또 명당을 찾았다면 많은 고기를 낚으려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이들 외국 출신 낚시꾼들이 나타나면 강에서는 고기가 씨가 마른다는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갈색 송어가 귀중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부분 잡은 고기를 손맛만 느끼고 다시 놓아주는 국내 낚시꾼들과 는 달리 거의가 잡은 고기의 맛을 ‘입으로 직접 본다는 점’도 자원 고갈에 일조한다.
최근 언론에 사례로 등장한 프랑스에서 온 젊은이 3명으로 이뤄진 한 팀은, 외딴 낚시터에서 무려 3주 동안 머물면서 낚시를 했는데 당시 함께 가져간 맥주만 수 백병이었다.
이들은 인근 산장(hut)에서 지냈는데 문제는 산장에서 이틀 밤 이상 연속해 머무는 것이 불법이었던 데다가 낚시면허 또한 제대로 일자를 변경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은 5000달러까지의 벌금과 함께 낚시도구들을 몰수당할 수도 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들 외국 낚시꾼들이 외딴 낚시터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사유지를 무단으로 침범하거나 쓰레기 등을 함부로 내버리는 행위들로 인한 민원도 점증하는 추세이다.
국내 낚시 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뉴질랜드 강들이 얼마나 생태학적으로 취약한지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송어 한 마리를 잡아먹으면 전체 개체의 1%를 먹어치운 셈이라고 빗대어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특히 유럽 출신 낚시꾼들이 우리의 낚시 문화와 고유 전통을 짓밟으면서 최악의 못된 행동들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원색적으로 강력하게 비난했다.
▲ 외국 여행사의 NZ 송어낚시 홍보 사진
<'뉴질랜드 퍼스트' 외치고 나선 국내 낚시인들>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되자 1년 반 전쯤에 ‘뉴질랜드 낚시인 먼저(Kiwi Anglers First)’라는 이름을 내건 단체까지 등장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주말을 맞아 강둑에라도 나가보면 이미 외국 낚시꾼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으며, 이른바 자유 캠핑족 들은 아예 강가에 주저 않아 물고기로 먹거리를 충당하고 있고 외딴 곳에서도 이들로 인해 고기 씨가 말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말에는 뉴질랜드 거주자(residents)만 낚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외국인들의 낚시면허 비용을 대폭 올리며,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낚시 전문 가이드가 딸린 낚시 행위를 전면 금지할 것으로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어족 자원을 되살리기 위해 유명 낚시터에서 외국인들 낚시 행위를 중단시키자는 주장 등은 다른 단체들에서도 나왔으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낚시 및 사냥협회(Fish & Game NZ)’ 에도 의견이 전달됐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정부의 이렇다할 대책 발표는 없는데, 관광업계를 포함해 특히 낚시와 관련된 관광객들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곳에서는 경제적 이유를 들어 면허 비용 인상 등에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또 이는 한번 망가지면 쉽게 복원하지 못하는 생태 환경과 연계된 문제인 만큼 정부 역시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조만간 대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