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5년 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집중에 집중을 더해 딱 5년만 투자해라..라는 주제의 책은 5년을 투자해 인류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몇몇 사례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사실 상당히 단순합니다. 5년 동안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며 인생을 ‘투자’한다면 비록 꿈꾸던 만큼의 변화를 일구어내지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그 언저리 어디쯤에는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분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 투자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생활습관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희생을 의미한다 말합니다. 없애야 할 습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생활의 영역에서 지워버리고 꼭 가졌으면 하는 습관들을 하나 하나 삶의 카테고리에 영입하는 노력을 5년간 꾸준히 지속할때 인생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얼마전 한국에서 방문하신 한 투자전문가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아마도 뜻을 같이하는 몇 분들과 팀을 이루어 일을 하시는듯 했습니다. 그 분은 팀원들에게 항상 투자와 투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했습니다. 투기가 주로 단기간의 자금운용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에만 집중되는 반면 투자는 긴 안목을 가지고 정성들여 키워 나갈 회사를 물색, 선정한 후 자금을 동원해 그 회사를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 그 동안 들인 노력의 결과를 나누어 갖는 행위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투기가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켜줄 달콤한 결과에만 주목하며 다른 누군가의 손해를 바탕으로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면 투자란 투자대상의 성공을 기원하며, 꿈꾸며, 협조하며 실질적인 성장이 이 루어질 때까지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일듯합니다. 그리고 이 투자의 원리가 한 개인의 삶에 적용될때 그것은 짧은 시기에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목표지상주의적 갈택이어(竭澤而魚)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정성과 노력과 무엇보다도 삶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고 있는 습관을 고쳐가면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길을 걷는 일이 될 수 있겠습니다.
몇 년전 한국의 한 대학교수님이 TV아침방송에서 자신의 다이어트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저야 다이어트에 딱히 신경쓸 상황은 아니었으니 그저 흘려듣고 있었는데 그 분의 말씀 가운데 한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건 바로 그 분의 다이어트 비법이었는데 4년동안 매 식사때마다 밥을 한숟가락씩만 덜어냈더니 15kg의 체중이 줄어 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교수님은 4년동안 끼니때마다 밥 한숫가락을 덜어내는 노력과 절제, 꾸준함을 투자해 건강과 아름다움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일구어 내신거지요. 많은분들이 다이어트를 할때 2주 코스, 한달 코스 등등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전전하는 것을 봅니다. 대부분 별로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고 부작용이나 요요 현상 때문에 고통 을 받기도 합니다. 그건 아마도 도달 체중 몇Kg을 향한 목표 완성 위주의 사고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요..
교수님의 사례는 그와는 달리 강의와 연구, 학술모임에 개인사업까지.. 눈코 뜰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사건들을 감당하기엔 체력이 너무 모자란다는 현실인식의 바탕위에 생활속의 습관을 바꾸는 긴 안목을 가진 투자를 덧 입혀 이루어낸 꾸준함의 승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명의 선생으로서, 저는 운동선수가 되는 길을 걷다가 어떠한 상황이 되어 공부로 방향을 전환한 학생들을 좋아합니 다. 선생이 좋아하는 학생의 자질이 거의 대동소이함을 생각할 때 그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누구나 생각할 법한 것들일 텐데요. 그들은 기본적으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희생해야만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참 먹성이 좋은 10대 후반의 남학생들이 체중관리를 위해 식욕을 억눌러야 하고 이성친구를 사귀는 일 또한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사치인 것이 당연하며 코치나 선배들에게 부당한 꾸지람을 들어도 꾹꾹 참아내며 인내의 속울음을 울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제할 줄 알고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줄도 압니다. 지금 당장의 피곤함이나 괴로움이 길고 긴 시간의 타원을 날아 부메랑처럼 되돌아올때는 성취의 기쁨이 되어있으리라는 기대감 또한 가지고 있지요.
그 학생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그 날의 달콤함에 도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꿈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한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으니 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고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맘에 쏙 들어 쓰담쓰담하고 싶은 운동선수 출신 학생들 가운데 R과 S가 있습니다.
며칠전에도 R은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한 채 학원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노트필기하는 시간을 줄여주고자 보드의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파일로 저장하게 하곤하는데 그 날따라 R은 전화기가 아닌 자신의 IPAD를 가지고 왔더군요. 전화기에 문제가 있다면서요.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기기이니 제가 함부로 볼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가까이 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다가 얼핏 IPAD의 바탕화면을 보게 되었지요. 흔히 연예인 사진이나 좋은 풍경, 혹은 게임 장면이 깔려 있는 10대 청소년의 IPAD엔 종이에 손으로 쓴 글귀가 사진으로 찍혀 남겨져 있었습니다
“Youtube가 인생을 망친다”
Youtube라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로고까지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넣으며 힘껏 써 놓은 글귀엔 R이 그동안 자신이 동영상을 즐기며 뒹굴거린 시간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낭비의 습관을 얼마나 경계하며 멀리하려 하는 지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좀 쉬었다 하자..’라 는 말과 ‘youtube 동영상을 보자’라는 말이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던 지난 날들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이젠 심심할 때 동영상이 하나 볼 양으로 IPAD전원을 켜면 그 순간 바탕화면에 떠오르는 자신의 손글씨에 화들짝 놀라 마음 자세를 바로하게 되겠지요.
R의 처절한 습관고치기 노력에 한 순간 충격을 받은것은 저도 R과 똑 같은 고민을 하고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검색해보는 주제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 하더라도 하루중 상당히 긴 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별 의미없이 어영부영 하는것은 매 한가지이니 말입니다. 나의 욕망을 절제함으로 인생을 더 값진곳에 투자하려는 R의 노력을 본받아야 할 듯 합니다.
삶의 모든 분야에 속속들이 뻣어나가 있는 잘못된 습관의 가지를 쳐내려는 R의 노력이 없어야 할 것을 없애려는 ‘덜어냄의 투자’라면 또 다른 운동선수 출신 학생인 S가 보여주었던 노력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삶의 지침을 세워나가려는 ‘더함의 투자’였습니다.
여학생이었던 S는 초등학교시절부터 운동에만 매진하느라 책을 펼쳐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공부에 소질이 있는지, 소위 말하는 공부머리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하네요. 대부분의 사례가 그러하듯 S 또한 무리한 운동으로 부상을 입었고 10대 후반의 나이에 그 동안 추구해 온 삶의 목표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표류하듯 일 년여의 삶을 살았다 하더군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뉴질랜드로 유학을 온 S는 놀랍게도 무척이나 잘 적응을 했습니다. 영어실력도 일취월장 발전해 나갔고 한국 중학교 수학 3년 과정을 1년도 안되는 시간에 섭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더군요.
어느날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S가 가방에서 꺼내 든 플래너(다이어리)를 보고 저는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S의 플래너는 여학생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자그마하고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팬시용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웬만한 참고서만큼 큼직하고 두툼한 덩치에 검은색 가죽커버가 중후한, 중년 아저씨들이 돋보기 내려쓰고 만년필로 끄적거리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릴법한 ‘플랭클린플래너’였습니다. 일정관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유명 회사의 제품이니 멋도 모르고 덥석 사버렸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만.. S의 설명은 달랐습니다. 원체 어려서부터 플래너로 일정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이 스스로에게 잘 어울릴법하다는 정도는 훤히 꿰뚫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제품이 너무 고루해보인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하루의 시간관리를 15분 간격으로 기록할 수 있는 플래너는 그 제품이 유일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설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S는 금,은,동 세가지 메달 중 하나를 거머쥐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혹독한 ‘운동선수’의 삶에서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너그러운 ‘공부선수’의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사실에 매우 행복해하고 있었고 늦게 시작한 공부에 밤을 새워가며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모든 일정을 15분 단위로 맞추고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플래너 안에 빼곡히 적힌 자잘한 손글씨들이라니…
이스라엘에선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고 가르친다 합니다. 당장 입안에 들어가 달콤함을 퍼뜨릴 사탕 한 알의 행복을 유보하고 그 몇 배의 가치로 되돌아 올 미래의 보람을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라는 말과도 같을 듯합니다.
우리의 아이들 하나 하나가 별다른 차이없이 가지고 있을 기본적인 시간, 체력, 지능, 성품... 누군가는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하며 소비해 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투기꾼의 삶을 위해 올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라기는 우리의 아이들이 가져야 할 습관을 세워나가고 버려야 할 습관을 없애가면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투자하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딱히 5년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보다 짧거나 다소 길다 하더라도, 현명한 투자는 보람찬 변화를 야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