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삶을 좋게 하려는 목표, 한인 2세 판사로서 이뤄가겠습니다"
태런 카운티 제323 가정법원 판사(Family District Judge 323rd Judicial District)에 도전하는 한인계 알렉스 김(Alex Kim, 한국명 김한중) 후보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해 11월 본선을 앞두고 있다.
김 변호사는 4년전 같은 자리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예비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재도전에서 보란 듯이 승리했다. 예비선거 결과도 안정적인 득표차로 승리해 자신감과 희망을 줬다. 특히 지역적으로 공화당이 우세한 곳이어서 11월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태런 카운티 사상 첫 아시안 판사가 탄생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태런 카운티 한인들을 비롯해 많은 지지자들이 그를 성원하고 기대를 보냈다.
한인 2세로서 그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미 그는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대변해줬다.
빅 픽처의 주인공인 그에게 한인 2세로서, 첫 아시안 카운티 판사 후보로서, 청소년을 담당하는 가정법원 판사 후보로서, 공화당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 등을 들어봤다.
우선 예비선거에서의 압도적인 승리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매우 좋은 성적으로 이겼다. 나는 공화당에서 많은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열렬한 공화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카운티 판사로서의 나의 첫 도전에 많은 공화당 지원이 있었고, 또 여러 커뮤니티의 성원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격려를 보냈다. 태런 카운티에서 나는 변호사로 활동해 잘 알려져 있다. 또 정치적으로 나는 항상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기본적으로 낙태반대인 프로 라이프(Pro-Life), 가족 중심(Pro-Family) 등의 정통 보수 입장을 지켰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도움이 됐다. 이런 주장을 갖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펼쳤는데, 지역적으로 이런 보수적, 공화당 지지자들이 광범위하게 많은 걸 확인했다.”
김 변호사는 오랜 기간 형사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카운티 판사에 도전하는 일은 큰 변화일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판사라는 직에 대해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판사는 항상 배우는 직책이다. 법을 항상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법은 매년 바뀐다. 어떤 의미에서 법은 매일 바뀐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판사로서 어려운 사건들을 다루고 법을 이해하는 일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내가 도전하는 판사직은 가정법원으로 청소년을 다루는 곳이다. 아이들이 법을 어겼든, 구속됐든, 부모들이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구치소로 오게 된 경우들을 다루는 법정이다. 나는 이에 대해 열정이 있다. 지역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태런 카운티 아동들이 제대로 법을 지키며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가정에서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들이 되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싶었다. 이는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마침 이 자리 판사가 은퇴를 하게 돼 후임자를 뽑는 것을 알고 과감하게 도전했다. 최선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이어서 꼭 하고 싶었다.”
김 변호사는 이미 지역 커뮤니티에서 아동에 대한 도움이나 청소년 문제 해결 등의 봉사 활동에 많이 참여하던 중이었다. 개인적인 열망이 그를 이 분야에 계속 관심을 두고 참여하게 한 것이다.
“나는 청소년들을 다루는 일이 항상 좋았다. 내가 뉴올리언즈 툴레인에서 박사 과정에 있었을 때 주니어 하이스쿨 아이들을 교회 선데이스쿨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해 장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교회가 나를 필요로 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몇차례 청소년 선교 여행에 함께 했다. 경험상 12세에서 14세 정도의 청소년들은 그 시기에 좋은 영향을 받으면 변화도 되고 또 평생 도움이 되는 연령대로 보였다. 그들에게 열심히 사는 법과 절제된 삶, 존중과 책임감의 자세를 가르치면 큰 효과가 있다. 현 사회에서 이런 덕목들이 부족한 상태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동 법정도 이런 것을 아이들에게 주지시키는 일을 한다. 나는 스포츠 코치도 해봤는데, 사춘기인 십대 후반 아이들은 아무리 해도 변화가 어렵지만 더 어린 이런 아이들은 잘만 가르치면 모든 면에서 좋은 변화를 갖는 걸 봤다.”
이런 자세로서 판사를 하겠다는 건 아이들에 대해 삶의 긍정적 방향 제시가 우선된 마음가짐일 터. 그동안 한인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준 그의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나는 포트워스 태런 카운티 한인회에서 활동을 오래 했다. 한인회는 나에게 성원과 기대를 많이 보여줬다. 그래서 행사가 있으면 초청해서 사회를 보게하거나 인사를 하게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실, 태런 카운티 한인사회 외에도 지역에 많은 한인 커뮤니티가 있다. 나는 한인교회에 다녔다. 우리 식구 모두 한인교회에 출석했다. 나는 한인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내가 텍사스에서 성장하던 1970년대는 주변에 한인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알게되는 한인들 사이에 결속력과 친밀감이 더 좋았던 것 같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러 많은 한인들이 유입됐지만 오히려 결속력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어릴 적에 한인이 운영하는 식품점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만나는 몇 안되는 한인들은 금세 친구가 되고, 가족끼리 초청하면서 친해지곤 했다. 지금은 한인들끼리 만나도 그렇게 감격해 하지 않고 평범하게 대한다. 그 때는 한인끼리 만나면 너무 좋고 반가워 서로 오픈된 관계를 맺곤 했다.
내가 1978년에 샌안토니오에 살 때 내 부모님은 샌안토니오의 한인 업주들을 모두 친구로 삼고 있었다. 당시 한인은 몇십명, 몇백명이었다. 휴스턴으로 이주한 1980년에도 그곳 한인 교회는 몇개에 불과했다. 그 때는 한인 업소에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도와주고 싶어서다. 이제 한인사회가 커졌지만, 초점은 자신에게 맞춰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잘 살게 하는 게 무엇일까’ 대신 ‘내가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신경쓴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한인들이 미국에 온 이유는 후세들을 위해 뭔가를 세우고 또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로를 위하고 하나되던 이전의 가치를 다시 찾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본다.”
판사로서 그는 어떤 변화를 몰고올 것인가.
“판사는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확인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삶에 대해 많은 권한을 갖고 그것을 행사하는데, 그걸 제대로 하는 것인지 판사는 확인하고 국민의 편에 서게 된다. 아동 범죄에 대해서도, 정부는 해당 아동을 구속하기 위해 아동보호소 직원을 보낸다. 아동보호소 직원의 판단 하나로 그 가정은 영구적으로 아이들을 뺏길 수도 있다. 그래서 가정법원이 필요하고 판사가 필요하다. 가정보호소가 제대로 하는지를 확인해서 잘못된 결정이 없게 하는 것이다. 가정법원은 사실 예산이 많다. 이 돈들이 제대로 사용되는지를 감독하게 된다. 세금이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되도록 보수적 공화당원으로 감독할 것이다.”
한인사회에 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선거에 대해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대통령만 해도 선거로 뽑아놓지만 후에 쿠테타로 축출 당하고, 또 암살 당하고, 자살하고, 탄핵되는 역사를 반복했다. 그래서 민주적 절차인 선거에 대해 믿음이 부족할 수 있다. 미국은 다르다. 지난 200년간 평화롭게 정권 이양이 이뤄져온 나라다. 정치적 구조에서 미국은 누구든 참여해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 체계를 만든 나라다. 한인들의 선거 참여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내 한 표로 무슨 변화기 있겠느냐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누구든 선거에 참여하고 또 나처럼 후보로도 참여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현재 한인 2세로서의 여기에 서게 된 것이 매우 행복하다. 이런 행복이 계속 한인 후세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함께 뛰겠다.”
그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의 미소는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는 그의 판사로서의 목표는 그의 존재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미소 못지 않게 강하다. 타협이 없다. 올바름을 향해 초지일관이다. 그래서 적도 없지 않다. 그를 미워하고 그를 낙마시키려는 세력도 있다. 그는 항상 총을 소지하고 다닌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인터뷰=알렉스 김 | 정리=이준열 | 사진=Tov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