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출발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이번이 가장 떨린다. 아내도 이번이 제일 허전하다고 한다.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태워줬던 지난 두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배웅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지난 밤을 꼬박 샌 탓이다.
새벽 같이 일어나 딸 아이를 맨해튼까지 라이드 해줬다.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총기규제 촉구 행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오면서 홈디포에 들러 목재와 나사 등 몇 가지를 샀다. 아들 녀석의 침대에 지붕을 만들어준다고 아내는 밤새 나무를 썰고 자르고 했다. 딸아이 먹으라고 삼각김밥도 만들었다. 전동 드릴 작업은 내 몫이다.
샤워 할 때 아내가 내 꼬랑지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냥 다듬기만 해도 될텐데. 졸지에 평생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단발머리가 됐다. 이 나이에….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아저씨....!!
침대 지붕 조립작업을 하다보니 시간이 빠듯해 퀸즈빌리지에서의 출발은 포기했다. 아직 짐도 안 쌌다. 맨해튼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4시 출발이다. 2시쯤 나서면 넉넉할 것이다.
점심 먹고, 간식 챙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 번 다녀온 터라 요령이 생겨 필요한 짐만 챙겼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포기했다. e-book을 읽기로 했다. 배낭도 없앴다.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짐을 최적화 했다.
17번 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스트릿으로 가는데 다 와서 길이 막힌다. 이러다 또 버스를 놓칠까 긴장됐다. 플러싱에 도착해 7번 지하철을 탔는데 다행히 맨해튼까지 바로 간다. 지난 몇 년간 주말에는 7번 지하철이 맨해튼까지 가지 않아 중간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했었다. 버스 출발 시각 15분 전에 도착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시간에 도착한 셈이다. 게다가 4시가 넘어도 승객을 태우지 않았다.
앞에서 두 번째 열에 앉았다. 발 아래 소화기가 비치돼 있어 살짝 불편했으나 별 문제는 아니다. 아울렛(전원 콘센트)도 작동했다. 전에 탔던 버스는 아울렛이 고장이 났거나 없는 좌석도 있었다. 예정 시간을 넘겨 출발했지만 다음 정류장인 뉴왁에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 젊은 운전수는 그 이후로도 예정 시간보다 항상 먼저 도착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이 번화가라 먹을 곳이 많다. 차이나타운도 있다.
버스는 지난 번 갔던 코스를 그대로 갔다. 이번에는 흥이 나지 않아 사진도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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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가 미저리가 될줄이야
인디애나폴리스 정류장도 번화가에 있었다. 지난 번에는 외진 곳에 있다 생각했는데 반대 방향으로 나가 보니 큰 건물들이 많았다. 한번 가봤던 도시지만 지난 번과는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날씨 탓인가?
중간에 교대 했던 운전수들도 열심히 달려 순조로웠다.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승객들은 내리면서 미조리, 미주리, 미저리 말 장난을 하며 웃었다. Missouri는 한국어로는 미주리로 표기하지만 정확히는 미조우리라는 발음에 가깝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Missouri가 Misery가 될 줄이야.
내가 타고 온 차는 LA까지 간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갈아탈 차는 시카고를 출발해 애리조나 주 피닉스까지 가는 노선이다. 6시에 출발하기로 돼 있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그냥 서 있었다. 7시가 되니 매표소에서 식권을 나눠 준다. 지난 번에는 버스 연착으로 간식을 나눠줬는데 얼마나 더 걸리려고 이러나. 나처럼 프라임으로 가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스무 명은 됐다. 차는 결국 11시를 넘겨서야 출발했다. 내일 일정에 지장을 덜 받으려면 차에서 눈을 좀 붙여야 한다.
스프링필드에 도착하니 새벽 4시다. 나는 한번 경험이 있는 터라 셔틀 버스가 서는 곳 가까이에 있다가 버스가 도착하자 가장 일착으로 탑승했다. 셔틀 버스를 탄 인원은 십수 명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가 집이거나 다른 차편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가다보니 어리버리 셔틀을 못 탔다고 전화가 왔다. 운전수는 너 말고는 다 탔다며 타박을 주면서도 호텔에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방 배정받아 입실하니 5시다. 7시 교육에 참석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 씻고 준비해야 한다. 룸메이트는 뉴저지에서 왔다. 뉴왁에서부터 같은 차를 타고 왔다는 얘긴데 전혀 몰랐다. 발음에 액센트가 심한 것을 보니 그도 나처럼 외국 출신인 모양이다. Groupon에서 일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나도 그루폰 애용자였지만 요즘에는 거의 안 쓴다.
우리는 샤워도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적어도 도착은 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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