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9)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카스피 해가 남쪽으로 내달리다 이란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엘브르즈 산맥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곳이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카스피 해 연안이다. 거대한 엘브르즈 산맥은 카스피 해만 막고 서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왕래도 막고 비구름도 막아서서 엘브르즈 산맥 저 남쪽은 카비르 사막, 루트 사막 등 황폐(荒廢)한 사막이 되고 만다. 황폐한 사막 뒤에는 언제나 거대한 산맥이 풍요의 비구름을 가로막고 서있다. 미국의 모하비 사막 뒤에는 록키 산맥이 버티고 있고,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 뒤에는 텐산 산맥이 길을 막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은 거대한 산맥과 같은 세력이다. 그들은 ‘인권’과 ‘세계평화’를 내세우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명제 아래 다른 모든 것은 다 집어삼킬 수 있는 괴물이 되어갔다. 거대한 산맥 뒤에 황폐한 사막이 생기듯이 거대한 세력 뒤에는 황폐한 식민 국가들의 삶이 있다. 아직 나의 여정은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가지 달려온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에 이 거대한 세력들의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페르시아제국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를 지배한 많은 왕조의 통칭(通稱)이다. 페르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북아프리카을 포함한 중근동 지역을 통치한 강력한 국가였다. 레자 샤 팔레비 때 새 왕조를 세우고 국호를 이란으로 바꾸었다. 그는 1925년부터 1941년 영, 소 연합군의 이란 침공으로 강제 퇴위되어 그의 아들에게 양위하였다. 그 침공은 단순히 2차 세계대전을 치르던 소련의 원유확보를 위해서였다. 부왕의 양위로 왕위를 승계한 모하메드 레쟈 팔레비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 아래 세속주의 근대화 전책을 밀고 나가 토지개혁과 여성참정권 부여 등 근대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미국을 등에 업은 그 정권은 부패하여 왕실은 치부(致富)를 하고 사치가 극에 달하고 국방비 증액과 치솟는 물가와 생필품 부족 등으로 국민들의 민심은 멀어졌다.
이것이 극단적인 이슬람 전통을 중시하는 원리주의 무슬림, 민족주의 세력의 반발을 불러 이란 이슬람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극단은 언제나 또 다른 극단을 부른다. 극단적인 자국 이기주의는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 독재정권이나 부패정권도 지원해 준다. 미국이 만든 또 다른 형태의 괴물이 이란의 극단적 원리주의 무슬림 정권이다. 나는 2월의 싸늘한 공기를 맞으며 카스피 해와 엘브르즈 산맥의 기운이 서로 상충하는 지역을 달리면서 과연 이슬람 혁명은 이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 혁명인가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나는 이란에 들어와 제일 적응이 안 되는 것이 돈 계산이다. 수학을 못하던 나는 이란 돈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세노라면 금방 머리에서 쥐가 돌아다닌다. 쥐라는 놈은 못된 것이어서 모든 것을 헝클어지게 한다. 백만 리알짜리 화폐가 별 값어치가 없으니 난 이란을 떠날 때까지 적응을 못할 것 같다. 내 추측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때 생긴 그 엄청난 인플레를 화폐개혁도 못하고 그대로 안고 사는 것 같다.
이제 5개월을 넘으니 몸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난다. 사실 세르비아를 지나면서부터 정강이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여 여러 날 고생하였고 그것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뒷무릎에서 다시 소요를 일으켰다. 이제는 허리에서 집단봉기가 일어난 것처럼 통증이 몰아친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양말 신고 옷 입는 것이 힘들다. 용변을 보고 뒤처리할 때는 무진 애를 쓴다. 얌전하게 순응하던 몸이 너무 혹사(酷使)를 시키니 거칠게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달릴 때는 허리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몸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응석을 다 받아주면 안 된다. 난 내 안에 이 통증을 다스릴 치유의 해법도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지금 내 안에 숨겨진 80%를 찾아 나선 사람이다. 이런 정도 허리의 통증은 충분히 각오했었다. 이 정도 대가도 치루지 않고 룰루랄라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서 횡단하려며 마음먹을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이 정도 고통이 분단 73년의 한반도가 겪는 고통에 비할거나! 어찌 그 안에서 분단의 아픔을 피눈물 흘리며 고스란히 참아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아픔에 당할거나!
나에게 달리기는 호두깎기인형과 같은 것이다. 고통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고 그 안에 있는 고소하고 영양 만점의 호도 알갱이 같은 기쁨과 환희를 찾아내는 것이다. 마술사가 소매에서 비둘기를 꺼내듯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를 끄집어낸다. 끝없이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서 좋다. 그곳에 에너지를 공급할 활기찬 심장이 있어서 좋다. 때로 마음속에 실망과 좌절이 몰려들 때도 달리면서 희망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속에서 끊어 오르는 나쁜 기운들도 달리는 동안 내면을 성찰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이란이라는 이름은 ‘아리안의 땅(Land of the Aryans)’이라는 의미의 현대 페르시아어다. 이란인의 조상은 고대 게르만족의 일부가 북유럽에서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대이동한 아리안족의 일파이다. 종교는 주변 아랍국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이지만 그들은 이슬람 내에서도 소수파인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처한다. 기원전 3,000~4,000년 경 아시아초원에서 거주하던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인 아리안 족이 서남쪽으로 이동한 부족은 게르만족, 슬라브족, 그리스족, 라틴족의 원조가 되고 남쪽으로 더 이동한 부족은 이란인의 기원(起源)이 된다.
미국에 의해서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이란을 달리며 악의 그림자마저도 지워버릴 이 사람들의 환한 미소의 환대를 받는 것은 내게 짜릿한 기쁨을 선사한다. 지나가다 차를 멈추고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하고 차를 마시고 가라고 불러 세우기도 하고 사진촬영도 같이 하자고 한다. 나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지금은 한류스타 부럽지 않다. 그러나 한편 눈에 보이는 그들의 삶은 녹녹해 보이질 않는다. 세계 제 2의 산유국이 경제재제로 만신창이가 된 거다. 이란을 달리며 난 경제제제야말로 반인륜적이며 반 인권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맘에 안 드는 정권 제거하려고 시민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다.
거대한 산맥이 풍요의 비구름은 막아서지만 봄기운마저 막아서지는 못한다. 제 아무리 강대국들이 거대한 산맥처럼 막아선들 지금 한반도에 도도하게 흘러들어오는 상서러운 평화의 봄기운을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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