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계속된 로켓발사에 이어진 김정은과 트럼프의 말 폭탄 던지기에 극도로 고조되었던 한반도 위기상황이 지금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듯 싶게 급속히 대화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러시아 언론들이 거의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반도가 위기상황에서의 탈출하게 된 계기를 한국 문재인정부의 리더쉽과 북한 김정은의 능수능란한 외교행보에서 찾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지난 1월 11일자 타스통신과 2월 20일자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기고문들은 12월 29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미국에 한미 연합 독수리(Foal Eagle) 훈련과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고 제안한 것이 한반도 위기국면의 돌파구를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 동안 러시아언론에서는 한반도 정치군사적 상황변화의 중심축(中心軸)에 미국을 두었다. 한국은 미국의 하위동맹 수준 정도로 인정하고 동북아 지형에서 한국의 역할을 낮게 평가 하던 경향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요즘 러시아언론보도 행태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러시아언론이 한반도정세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가 3월 6일자 기사에서 강경화 한국 외교장관의 세계기자대회 발언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문은 강경화 한국 외교장관이 한국이 현재 대북관계에서 견지하고 있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첫째로는 북한이 또 다시 도발을 감행해서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도록 대화를 진행하며 화해 분위기를 촉진해 나가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제재와 협력을 같이 사용할 것이다. 셋째로 북미 간에 직접적 대화를 위한 조건을 조성할 것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실제 행동에 옮기게 된 계기를 무엇보다도 북미간 전쟁의 위험성이 매우 고조된 상황에서 찾고 있다. 한국정부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대북 군사행동을 시작할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최소한 남북한 사이에 적극적으로 대화를 계속하면 미국에서 위협하는 상황들을 실행에 옮길 수 없을 것이라고 희망한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실현시켰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대화의 맞상대인 북한이 한국의 대화 제의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호응하고 나선 배경은 무엇이라고 러시아언론은 분석하고 있을까? 러시스카야 가제타 온라인판, 2월 27일자에선 이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기사를 찾을 수가 있었다.
북한입장에선 핵 미사일 실험 중단은 사실 아무런 손해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은 전략적 핵 군사력 개발 프로그램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러시아 주간지 프로필, 3월 19일자, 저명한 북한 핵,미사일전문가 블라디미르 흐루스탈레프의 분석기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경제제재에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고, 실제적으로 북한경제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노바야가제타 3월30일자 기사는 중국의 대북 원유수출량의 급속한 감소와 중국상품의 북한수출량의 축소는 북한경제에 큰 어려움을 주기 시작했다고 분석해서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일하던 북한노동자 약 3만 5천여명도 러시아가 계약연장을 거부하면서 단계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우방들의 북한에 대한 등돌림에 북한이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입장에선 때마침 이루어진 한국의 대화제의에 선뜻 호응해 나갈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정상회담에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의 전망과 성과는 러시아 언론에서 어떻게 보고 있을까? 리아노보스티 3월 13일자 분석기사에서는 러시아내 한반도전문가들의 견해는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해도 한반도 평화 정착 가능성은 희박(稀薄)하다면서 이미 핵, 미사일 실험중단을 선언한 북한에 대해서 미국이 북한에게 제안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네자비스마야 가제타, 4월 10일자에서는 저명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보론쵸프 교수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을 전망한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서 단계적인 장기 과정을 제안할 것이고 특히 북한체제 안전에 관한 요구를 충족시킬 조치들을 원할 것이다. 김정은은 한국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전에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미군 철수, 미국과 수교, 경제제재 해제 등 여러가지 조건들을 내걸었다. 미국에 여기에 대해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큰 의문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완전하고 검증되고 불가역적인 핵무기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데 북한이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할 리는 만무(萬無)하다.
현재 러시아언론의 일반적인 입장은한국과 북한 주도로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 급변상
황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 패싱’을 우려하는 듯한 기사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데이터루 통신은 3월 15일자 기사에서 북미정상회담장소로 ‘블라디보스톡’이 거론되고 있는 소식을 전하면서 러시아가 이미 여러 번 북미간 접촉에 중재자역할을 할 수 있고 발언했던 것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서 북미회담 전에 김정은이 중국을 기습 방문했듯이 러시아에 대한 방문도 기대하는 듯한 기사들을 내보내는 언론사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회복세에 발맞추어 그 동안 보류되어왔던 남북러 삼각 협력사업에 대한 큰 기대감을 내비치는 기사들도 요 근래에 러시아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모스크바프레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