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6시가 조금 넘어 잠에서 깼다. 호텔에서는 5시 45분에 꼭 알람콜을 해주는데 오늘은 콜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늦게 입실한 것에 대한 배려인 모양이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식당에서 간단히 아메리칸 스타일로 먹은 후 강의실로 갔다.
학생들은 지난 번보다 조금 적었다. 약 80명 가량. 남녀 비율은 비슷하고 나이대는 젊은 층이 좀 더 많아졌다. 강의 내용은 지난 번과 같았다. 강사들의 멘트도 같았다. 나는 이미 마쳤던 과정들을 생략할 수 있는 지 궁금했다. CBT 프로그램은 새로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나중에 강사에게 말해야지. 신체검사에 필요한 서류를 나눠주는 간호사 재키에게 이것 다시 작성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다시 할 필요가 없다며 서류를 되돌려 받았다. 아 그러면 나는 오늘 널널하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이날 내가 안 해도 됐던 것은 신체검사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시 했다.
명찰은 있어야 셔틀 버스도 탈 수 있으므로 명찰을 받으러 오리엔테이션 사무실로 갔다. 직원이 종이 서류는 보관하지 않는다면서 File Review를 다시 하라고 했다. 직장경력, 범죄경력, 사고경력, 티켓경력, 지인 연락처 등 말하자면 신원조회(身元照會) 서류다. 식당에서 서류를 작성한 후 사무실 안쪽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와서 나를 찾는다. 체력 검사를 안 했다는 것이다. 어 그것도 다시 해야 하는 것이었나? 단체로 하기 때문에 체력 검사가 가장 빨리 끝난다. 나하고 다른 한 명이 서류가 남아 있어 찾으러 나선 것이었다. 나는 혼자서 체력 검사를 진행했다. 지난 번보다 조금 수월하게 수행해냈다. 체력이 좋아졌거나 요령이 생겼거나.
다시 사무실에서 서류 검토를 마치고 의무실로 가서 재키 간호사에게 약물검사도 해야 하냐고 물었다. 다시 해야 한다며 30분 후에 오라고 했다. 그래 2주 동안 내가 약물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이해한다. 나는 CBT과정도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필요한 내용이니까 교육에 포함된 것이고 한 번 더 한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마치 내가 큰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손해봤다는 보상심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자. CBT 과정도 다시 보니 유익했다. 온라인 과정이다보니 나중에 방에 가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도 학습이 가능했다.
교육과정 중에서도 절대 빼먹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이 시뮬레이터 클래스다. 지난 번에는 뚱보 강사에게서 배웠는데 이번에는 깐깐하지만 실력이 있어 보이는 영감님 강사 쪽으로 갔다. 그런데 보는 눈이 비슷한지 그쪽으로 많이 모였다. 결국 몇몇은 자원해서 다른 쪽으로 가야했다. 나는 여자 강사쪽으로 갔다. 다른 사람에게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5명이라 3개조로 나눴는데 나는 혼자였다. 전에 우리 조는 3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워낙 경험이 없고 잘 못해서 내가 많은 시간을 양보해줬었다. 나를 미스터 길재라고 부르며 붙임성 있게 굴던 젊은 친구였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아저씨하며 따르는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도 이틀은 수업을 받았다고 막 과정을 앞서 나가려니까 여자 강사가 와서 제지했다. 순서대로 하라고. 그래 건방은 떨지 말자.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했다. 그게 도움이 많이 됐다. 훨씬 부드럽게 기어 변속이 이뤄졌다.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2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금새 끝났다.
방으로 돌아오니 룸메이트는 자기는 내일 집으로 간다고 했다. 시민권자는 출생증명서나 미국여권이, 영주권자는 영주권카드가 필요한데 모두 원본이라야 한다. 룸메이트는 최근에 시민권을 받았는지 시민권 증서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복사본이었다. 나는 익일 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원본을 받으라고 했더니 어차피 여권이 있어야 하는데 신청해서 나오려면 며칠 걸린다고 했다. 나 역시 서류 상의 문제로 다시 온 것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겠으며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도착한 지 몇 시간만에 다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기분은 어떨까? 나처럼 며칠 지나서 아는 것보다는 미리 아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워낙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사건이 연이어 터진 터라 무슨 일이 생길까 조심스러웠다. 혹시 메디컬 카드가 안 나오면 어떡하나? 약물검사에서 걸릴 것은 없나? 평소 내가 안 먹던 것을 먹은 적이 있나? 강주희 전도사님이 건강 챙기라며 싸준 인삼 추출액을 오늘 아침에 한 포 마셨는데 혹시 인삼성분이 마약으로 간주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까지 들었다.
태블릿으로 CBT 학습을 더 하려고 했지만 눈이 감겨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9시도 안 돼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며칠 만의 긴 잠이었다. 미국 중부지방에는 내일 폭풍이 예고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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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5시 45분 어김 없이 알람콜이 왔다. 룸메이트는 씻고 있었다. 6시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그와 작별 인사를 한 후 나도 샤워를 했다. 변함 없이 아메리칸 스타일 아침을 먹고 7시 수업에 들어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제 신체검사를 같이 안 했기 때문에 메디컬 카드를 본사에 가서 받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왕이라고 불러서 못 알아 들었다. 길재황이냐고 물으니 맞단다. 메디컬 카드 사본이었다. 지난 12일자로 내가 작성한 것이다. 시작이 좋다.
9시 셔틀버스를 타고 DMV로 갈까 했지만 밖에 비가 오는데다, 1시30분에 시뮬레이터 수업이 있는 D조를 위해 양보하기로 했다. 일기예보에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내일 가자. 급할 건 없다. 대신 얼마 남지 않은 CBT 과정을 끝냈다.
빗발이 약해졌다. 나는 생각을 바꿔 11시 셔틀버스를 타고 DMV로 갔다. 1층 시험장으로 가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는 2층 면허증 발급 사무실로 바로 향했다. 시험이야 이미 지난 번에 합격했다. 사람이 별로 없어 10분도 걸리지 않고 임시 퍼밋과 임시 미주리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정식 퍼밋과 면허증은 2주 내로 호텔로 보내준다. 뉴저지, 뉴욕에 이은 세 번째 미국 면허다. 이거 두 장을 받기 위해 뉴욕과 미주리를 오가며 그 고생을 했다니. 이걸로 연습하고 실습 나간 후 상용차 운전면허증인 CDL을 따게 된다. 그 후에 다시 뉴욕주로 가서 뉴욕 면허증으로 바꾸면 된다. 재미 있는 것은 면허증 사진을 찍는데 모자를 쓰고 찍어도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사람이 모자를 쓰고 찍길래 나도 모자를 쓰고 찍었다. 뉴욕에서는 모자를 벗고 찍어야 한다.
셔틀 버스는 1시 20분 쯤에 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시내버스를 타도 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다 월마트에서 내려서 5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우산도 없이 서류를 들고 빗속을 걷기는 별로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막 건물을 나서는데 프라임 학생들이 승용차를 타는 것이 보인다. 우버를 부른 모양이다. 나는 가까이 가서 나도 타도 되겠냐고 물었다. 자리가 없단다. 나이가 지긋한 운전수가 자리가 더 있다며 내려서 짐칸 트렁크를 열더니 바닥에서 좌석을 끄집어 올려 세번째 열을 만들었다. 링컨 SUV였다. 운이 좋았다. 호텔에 도착해 요금을 지불한 학생에게 5달러를 줬다. 11시 45분, 아직 점심 시간 전이다. 오리엔테이션 사무실로 가서 퍼밋을 내밀었더니 여직원이 반색을 한다. 지난 번에 이것을 받지 못해 다시 집에 가야했다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화요일 오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할 일을 거의 다 마쳤다. 남은 것은 저녁에 시작하는 시뮬레이터 수업 뿐이다. 점심을 먹고 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사실 3시 30분에 수업이 하나 더 있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지난 번에 들었던 건강 관련 강좌라 안 들어도 되는 것이었다. 따로 출석을 부르지도 않는다. 저녁에 듣기로는 이 수업은 오늘 취소 됐다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시뮬레이터 수업에 들어갔다. 이 수업은 빠져서는 안 되는데다 마지막에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기 같이 생겼지만 기기 한 대의 가격이 실제 트럭 가격과 비슷한 13만 달러란다. 이 장비 덕분에 다른 곳에서는 4~5주 걸리는 실습기간을 2~3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혼자 연습했다. 우리 조에 있던 여자 한 명은 집으로 가야 해서 수업에서 제외됐다. 지난 번 나하고 같은 신세다. 여자 강사는 내게는 오늘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다. 잘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전혀 관심 갖지 않고 내 연습에만 열중했다. 어제 업쉬프팅을 연습한데 이어 오늘은 다운 쉬프팅과 스킵 다운 쉬프팅을 연습했다. 업쉬프팅은 RPM(엔진속도)과 관련 있고 다운 쉬프팅은 차량 속도와 주로 관련이 있다. 기어를 갈아 먹지 않으려면 여기에 능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오토 트랜스미션 차량에는 필요 없는 과정이다. 예전에는 대형 트럭은 거의 수동이었지만 요즘에는 오토도 많다. 프라임도 현재 과도기로 절반 정도는 오토 트랜스미션이라고 했다. 이 말은 실습을 나갈 때 자동과 수동을 만날 확률이 반반이라는 뜻이다. 시험은 수동 차량으로 본다. 2주 가량 실습을 나간 후에는 호텔로 돌아와 이틀 정도 실습장에서 수동 차량으로 연습한 후 시험을 본다. 오토로도 시험을 볼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오토 차량 밖에는 운전을 못 한다.
수업은 목요일까지 예정돼 있지만 수요일 수업에서 자신 있으면 테스트를 받을 수도 있다. 목요일 수업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만 듣는 것 같았다. 현재까지의 진척 사항으로 봐서는 통과는 무난할 것 같다.
내일은 오전 7시 수업을 마치면 저녁 9시까지 일이 없다. 다른 학생들은 시험 보랴, 퍼밋 받으러 DMV 갔다 오랴 바쁘겠지만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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