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의 2차조국순례기 마지막회
고려불화 재현하는 조이락화백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나는 이번 여행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연(因緣)을 맺었지만 그 가운데 특히 민족문화를 위해 인생을 치열하게 불태우는 사람을 소개하고 여행기를 마칠까 한다. 내가 양산의 시민운동가 박승자 여사의 차로 통도사 아랫마을에 사는 조이락 화백을 방문한 것은 울릉도로 떠나기 전날이었다. 그분과 나는 그분이 한국문화재단 주최로 풀러싱 타운홀에서 개최된 고려불화(高麗佛畫) 전시회 참가차 미국에 왔을 때 전시회 축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 내가 그분의 불화를 보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별로 크지 않은 화폭에 그려진 불상에는 깨알만한 불상이 무려 1만5천개나 그려져 있었다. 돋보기를 대고 보면 부처님 얼굴 하나하나가 또렷이 나타난다. 마치 현미경으로 그린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의 화실과 작업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도착즉시 그분께 찾아뵙겠다고 연락했다. 이날 조 화백을 만난 것은 나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분을 통해 나는 새삼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1년 부산서 태어나 미대를 졸업하고 네 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유망한 서양화가였던 그녀는 1999년 우연히 본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 매료된 후 완전히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 고려시대는 우리민족이 가장 문화적으로 왕성했던 때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문화는 크게 다섯 가지로 상징된다. 모두 불교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세계최초 금속활자와 고려청자 팔만대장경은 많이 알려졌지만 고려불화와 고려사경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남아 있는 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불화는 세계 미술사 특히 회화사(繪畵史)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사경 역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려불화나 사경은 많지 않다. 국내에는 20점만 전해지고 일본에 120여 점 유럽 미국에 20여 점이 흩어져 있다. 대부분 일제시대 약탈당한 것들이다.
세계 미술연구가들 사이에서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어 온 고려불화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70년대까지는 일본에 있던 수월관음도 한 점 뿐이고 나머지는 부석사, 수덕사 벽화가 전부였다. 당시 만해도 고려시대 불화의 우수성은 문헌에만 나올 뿐 실물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고려 불교회화와 관련 호암미술관 수월관음보살도와 부석사 조사당 벽화 2점만 제시되어 있다. 이런 차에 일본 불교미술연구단체가 논문을 통해 조선불화 고려불화가 70여 점 일본에 있다고 발표해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불화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했다. 78년 일본에서 고려불화특별전이 열려 처음 일반에 공개되었다. 81년에는 아사히신문이 ‘고려불화’ 탱화집(幀畫集)을 발간하고 한국 중앙일보도 ‘고려불화’를 펴냈다. 이때부터 고려불화는 일본에 있는 탱화를 중심으로 한국과 구미에 흩어진 것을 종합하면서 한국 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이락 화백도 이 시기 우연히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보고 형언할 수 없는 뜨거움을 느낀 것이다. 서양화가 조이락 씨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일본 간단진자 소장 수월관음도는 문수보살 지시에 따라 구도중인 선재동자가 보타락산에서 관세음보살 가르침을 받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법화경 내용 중에 재난으로부터 구제되는 모습이 그림 하단의 가는 금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가루) 선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조이락은 이를 자신의 손으로 그리고 싶었다. 고려불화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 이를 전승한 화가가 있을 리 만무였다. 그녀는 미친 듯이 불화연구에 빠져들었다. 불화의 기본인 먹선 긋기인 불화초를 2천여 장이나 그리면서 본격적인 불화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 후 조이락은 용인대학교 대학원과 정재문화재 보존연구소에서 불화기법을 연마했다. 고려불화 원본작품을 스승으로 삼아 한 해에도 몇 점씩 수월관음도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맥락이 단절된 고려불화를 계승하고 싶었다. 2005년 용인대학교박물관에서 고려불화 재현작품과 16나한도 재현으로 개인전을 열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양화가 시절 하루에도 1점씩 작품을 완성하던 때에 비해 6개월 동안 겨우 지장보살도 한 점 완성하면서도 죽자고 그림에 매달렸다. 2011년 그녀는 수월관음도를 모사하면서 갑자기 눈이 밝아졌다. 기법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림에 해탈한 것이다. 다음부터는 붓이 작가를 이끌고 가듯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조 화백은 2015년 작품들을 모아 L.A 프록시 플레이스 갤러리 초청으로 고려불화재현 개인전을 가졌다. 이렇게 많은 작품이 공개된 것은 미국에서 최초다. 아름다운 석채의 색과 금빛의 유려한 선과 문양 등이 높은 평가를 받고 관객들이 많아 한달여 전시를 연장했다.
우리를 맞이한 조 화백은 자신의 화실을 보여주었다. 연립주택 아래 위층을 사용하는 조 화백은 한 개 층을 화실로 사용하고 있다. 화실에는 물감과 캔버스 그리고 미완성 그림들이 널려 있었다. 조 화백이 아끼는 ‘1만5천불‘ 불화를 확대경(擴大鏡)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부처님 입이며 얼굴 전체가 불상으로 채워져 있다. 확대경에는 깨알만한 불상들이 하나하나 생동감 있게 보였다. 불교신자인 그녀는 불상을 하나 완성할 때마다 절을 한 번씩 했다고 하니 1만5천배 한 셈이다. 이밖에도 화실에는 수월관음도 양류관음도, 아미타삼존내용도, 지장보살도 등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불화들이 많이 있었다.
조 화백은 고려불화 재현은 당시 사용했던 재료인 석채를 사용하고 표현방법도 채색법과 아름다운 금니선 운용 등 까다로운 작업이며 오랜 연마와 집중이 선행돼야 훌륭한 그림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는 마지막 힘은 부처님께 대한 신심과 원력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화백은 고려불화 원화는 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손상된 작품이 많다며 앞으로 원화에 가깝도록 재현되는 때가 오기를 희망하며, 자신의 부족함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을 온전히 표현하리라는 처음의 원력을 잊지 않고 정신하는 것으로 메워나가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독신으로 살면서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불태우는 조 화백에게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녀의 화실구경을 마치고 함께 통도사 아래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그녀의 안내로 통도사를 번개 치듯 관람했다. 통도사(通度寺)는 양산 영취산 남쪽기슭의 큰 절로 선덕여왕 때 창건된 1400년 가까운 고찰이다.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힌다. 통도사는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사리와 가사를 봉안(奉安)한 불보사찰(佛寶寺刹)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 재건하고 1641년 중건되었다. 대웅전은 남면으로 배치된 정면 3칸, 측면 5칸 단층으로 지붕 종마루가 우물 정(井)자형을 이룬 독특한 양식이다.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고 거대한 불단만 있다. 이는 대웅전 뒷편 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이다.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보 290호다.
대웅전 옆 연못이 구룡지(九龍池)다.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어 자장이 여덟 마리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다고 사정해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통도사는 일정이 넉넉하면 하루 쯤 더 머물며 샅샅이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찰이다. (끝)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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