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가 본 남북정상회담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오오, 와 주셨구려, 정말 반갑소!"
"얼마나 고생이 심하십니까!"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서로의 몸을 굳게 끌어안았다.
미국땅 한구석에서 4월 26일 밤(미국시간) 이번 남북정삼회담 광경을 지켜보면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일본의 독도침공으로 비롯된 한반도의 위기에서 남의 대통령과 북의 주석이 대책회의를 열기 위해 긴급히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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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꼭 잡고 상대 지역을 잠입.탈출하고, 서로 고무.찬양하는 회담 장면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 사람이 어디 저 뿐이었겠습니까만은 불안과 초조로 보낸 지난 수개월 동안을 생각하니 벅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랜기간 미국땅에 살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습게, 그리고 쉽게 일어나는지 몸소 지켜 보았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분노와 화염'이니 '핵전쟁'이니 '괌폭격'이니 하는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이게 곧 실재가 되겠구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에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본국에서는 피난 베낭 세트가 동이 나고 소형 금괴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간다는 소식, 해외 투자자가 발길을 돌린다는 소식, 미군 가족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이미 부산 모처의 피난처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식,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부동산 중개인을 대동한 한국인들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이라크 침공하듯 북한도... 불안에 떨던 나날들
제가 불안과 초조에 떤 것은, 주변에서 불안한 소식이 들려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2003년 봄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참 '웃픈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가 911을 획책한 알카에다 집단과 한 패이고, 여전히 미국을 공격할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라크는 알카에다와 관련도 없고, 대량살상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유엔 등 국제사회 조사에서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로 미 의회가 한창 들끓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군사정보 분야 고위 관계자가 미 의회에서 두 대의 대형 트레일러가 찍힌 위성 사진을 보여 주면서 "잘 보십시오. 번쩍거리는 금속물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대량살상무기의 결정적 증거입니다"라고 주장하자 의원들은 경악했고, 여론은 더욱 들끓었습니다. 부시도 '이동식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라고 맞받아 주장했는데요. 트레일러들은 기상관측장비에 필요한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오래 전 영국에서 수입한 것이었음이 나중에야 밝혀졌습니다.
'증거'라며 내세운 모든 것들이 허위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어이 부시 대통령은 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민들을 열광시켜 '마치 매드니스(March Maddness)'로 불리는 대학농구 결선 토너먼트로 들썩이던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미국민들은 안방에서 농구와 함께 이라크전을 구경했고, 길거리에는 '아메리카 블레스 갓(America bless god!)'이라는 깃발까지 나부꼈습니다.
이후로 8년 8개월여 만에 끝난 이라크전에서 민간인을 포함하여 최소한 65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과 4400여 명의 미군 희생자(2006년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 추정)를 내고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은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40여년 동안 200여 차례 이상의 전쟁을 벌여왔을 정도로 거의 매년 전쟁을 치른 나라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고, 잘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나라가 세워졌고, 영토가 늘어났고, 초강대국이 되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세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불과 얼마 전 트럼프가 "전쟁이 나도 여기(미국)가 아니라 거기(한국)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어도 여기가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라 말했는데요. 어찌보면 늘상 열리는 프로농구나 풋볼경기처럼 전쟁이 일상화된 나라의 대통령의 말이니 뭐 새로울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의 '핵전쟁' 막말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를 떨게 했습니다. 익히 알고있는 대로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전쟁의 맛을 본 나라이고, 현재도 러시아와 함께 핵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 구석구석 60여 개국 미군기지에 엄청난 양의 핵을 배치해 두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조야에서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공격을 말하면서 '코피전략'(저강도 족집게 핵공격)을 자주 말해왔는데요. 이건 정말 소가 웃을 일이고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에서 '코피만 흘리게 하고 살짝 빠지는' 전략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코피가 터진 상대가 훅을 넣으며 죽자사자 반격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코피전략은 전면전을 의미하고, 핵전쟁을 위한 속임수입니다.
캐나다 지구화연구센터 설립자 미셀 초서도프스키 오타와 대학 명예교수는 지난 2월 21일 한국 국회의원 회관에서 <전쟁의 세계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현재의 열핵탄의 위력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탄의 100배, 전술핵은 최소 3분의 1에서 최대 6배 정도 위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트럼프 현 대통령은 핵전쟁의 결과에 대해 최소한의 희미한 관념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고 우려했습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자살임무를 수행중인 로켓맨'이라고 비아냥 대면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끝내 핵전쟁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한반도 땅은 '돌하나 돌위에 남기지 않고' 파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이 1만 5천곳에 이른다는 북한의 지하 요새를 핵으로 공격하는 동안, 파괴되는 것은 한반도땅이요 죽는 것은 남북 국민 뿐입니다.
"북한도 화해와 평화를 간절히 원해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노선을 택하여,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방을 하기 위해 작심하고 이번 회담에 응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갖게된 고립감과 경제 발전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북한이 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실용주의적 측면에 앞서 민족 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배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이익에 눈먼 트럼프의 간단한 결정에 의해 한반도가 멸망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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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지난 4월 10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듣게 된 김진향 개성공단 이사장의 강연은 북한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북측과의 협상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김진향 이사장은 북한이 애당초 관심을 가진 것은 '돈'이 아니라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한 '평화'였다고 했습니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진실이 많다'며 에둘러 표현한 김진향 이사장의 말을 좀 더 소개합니다.
애당초 2000년 8월 개성공단이 문을 열 당시 남측 협상단은 북측이 월급을 어느 선 이상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고, 북측도 남측이 어느 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협상에 임했다고 합니다. 남측은 '월 200달러 선으로 매듭을 짓겠다'고 생각하고 협상에 임했는데, 막상 북측은 월 57달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돈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에 적시된 평화'라고 하면서.
김 이사장에 따르면, 이후로 북측이 대폭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때마다 빗나갔고, 2015년에 이르러 겨우 140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북한은 주요 군사기지였던 자리에 들어선 개성공단사업을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의 완충장치로서의 안보적 역할, 그리고 체제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소통의 창구로서의 통일 미래적 역할로 인식하려 애써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려던 핵심은 '북한도 화해와 평화를 원해 왔고, 지금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은 북대로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 미국과 한국, 남은 남대로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 북한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분단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맴돌고만 있는 한반도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강의 내내 깊은 한숨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정상회담의 표어가 '평화, 새로운 시작'인데요, 민족의 염원을 쉽고 간결하게 잘 담아낸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남긴 어록을 보아도 남북이 얼마나 간절히 평화를 원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왜 우리가 핵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 "조선전쟁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 "결코 무력사용은 없을 것이다." 이게 김 위원장이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포한 말들인데요, 미리 작심하지 않고는 외교무대에서 감히 할 수 없는 발언들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전쟁에 대한 외세의 위협에 민족 말살의 위기감을 느낀 남북 지도자가 극적으로 만나 성사시킨 것이 이번 판문점 회담이란 것이지요. 정상회담 직후 가진 청와대 수석 모임 중 "노벨 평화상을 받으시라"며 이희호 여사가 보냈다는 덕담 쪽지에 문 대통령이 "우리는 평화면 가져오면 되고,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으시라"고 답한 것이야말로 이번 회담의 목적과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문맹' 재미동포의 눈물, "왜 그렇게 슬프던지"
▲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며 ▲ 남북 정삼회담 당일인 4월 27일 한 재미동포가 집 뒷마당 정원에 한반도 기를 내건 장면. ⓒ김명곤 | |
ⓒ 김명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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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개월 동안 해외동포들을 포함한 남북의 국민이 체험한 공포와 두려움은 우리가 얼마나 운명공동체적으로 묶여 있는지를 역으로 반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장면을 지켜본 많은 해외동포들도 어느 때보다도 감격과 감동을 경험했습니다.
"이민와 열심히 일해 잘 살게 되기는 했지만, 이제껏 '역사 문맹'으로 살아왔다"고 자책한 60대 초반의 한 동포는 남북의 정상이 달려와 만나는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철철 흘렸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왜 그렇게 슬프던지..."
일찍이 '서울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달라'는 시어로 떼를 쓰다 훌쩍 분단선을 넘은 문익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과 세계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정확하냐는 것은 보는 눈이 얼마나 맑으냐에 달려있고, 그 눈이 얼마나 맑으냐는 것은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프냐에 달려있다."
두 정상의 소설 같은 만남은 해외동포들을 포함하여 화해와 평화를 원하는 한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한반도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고 역사에 눈 뜨게 만들었습니다. 외세의 위협, 그리고 운명공동체적인 한반도의 현실, 그리고 왜 화해와 평화를 논하고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각을 일으킨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역사적 사변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60~70년대식 마인드로 디스를 놓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니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전쟁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한 자유 한국당 지도부는 철면피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홍준표 "남북합의 결코 수용못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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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홍준표 대표님께 한마디 드립니다. 홍 대표님을 가리켜 사람들은 '홍 트럼프'라고들 합니다. 아마도 본인은 이를 즐기시고 있는 듯합니만, 이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트럼프는 그렇게 막말로 싸우다가도 상대방이 잘 하면 박수도 치고 고무.찬양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신년 기자회견 장소에서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사회주의 정부'로 색깔을 입히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남북회담을 가리켜 '김정은이 말하는대로 받아쓴 회담', '김정은의 위장 평화쇼', '남북회담 적극지지층은 좌파뿐' 등으로 격하.비난했더군요. 오죽했으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같은 배를 탔던 하태경 의원이 "홍준표 대표는 평화의 적"이라면서 "홍준표 대표의 정계 퇴출을 위해서 정치권이 힘을 모을 것을 제안한다"고 했을까요.
막 가는 다른 분에게도 한마디 할랍니다. 조원진 의원님, 최종적으로는 미국과 북한이 풀어나가게 되어 있고, 복잡한 셈법과 단계가 예상되는 비핵화 문제를 놓고 문 대통령을 향해 "핵폐기 한 마디도 안 받아오고 200조원을 약속해버렸다. 미친XX"라고 했더군요. 이게 국회의원이란 분이 할 수 있는 말이던가요? 자라나는 애들이 듣게 될까 걱정입니다.
'사상이 의심스러운' 두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954년 미국 의회에서 36일간 벌어진 '매카시 청문회' 말미에 육군 법률고문 조셉 웰치가 매카시 의원에게 속사포 처럼 쏘아낸 말입니다.
"정치적 살인행위를 그만 중단하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은 할만큼 했습니다.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것입니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막아낸 '이니 대통령'과 '으니 위원장'께 격려의 덕담을 보냅니다. 부디 북미회담까지 성공시키고 한반도땅에 평화를 일구어 '역사가 주는 상'을 받으십시오. 우선, 70여 년 전에 쓰여진 오장환의 시 한 수를 선물로 드립니다.
The Last Train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냇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흐터져잇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여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즉도
누귈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맛나면
목노하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름 펼처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