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청론] 국제감각 없는 한국언론의 ‘뒷북치기’ 한심하다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조선일보> 등 국내 보수언론이 5월 2일,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연세대 특임교수)이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며 강하게 비판, 문 특보 해임까지 요구했음은 한국 언론의 무지와 함께 스스로가 사대주의자들임을 드러낸 경우라 할 수 있다.
우선 기자들은 <포린 어페어스>가 미국의 정치 외교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 및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공부를 해야 했고, 특히 문 특보가 국제정치학계에서 인정하는 거물급 학자(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보다 겸손한 자세로 기사를 다뤘더라면 실수가 덜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 필자 김현철 기자 |
문 특보는 자신의 기고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한 언론을 나무라는 대신 기고문에 "미군철수를 주장한 적이 없다. 주한미군 철수 논의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을 얘기한 것"이라고 점잖게 해명했다.
그런데 바로 이틀 후인 5월 4일, 한국 언론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태가 또 다시 발생했다.
< 연합뉴스TV >, < YTN >,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 국내의 매체들은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트럼프, 펜타곤에 주한미군 감축 검토를 지시했다”는 기사를 옳다는 듯 비판 없이 그대로 베끼는 데만 정신을 쏟은 것이다.
사실상, 트럼프는 문 특보의 ‘주한미군 철수 논의에 대한 대책’ 관련 글보다 훨씬 강한 톤으로 ‘주한미군 감축 검토 지시’를 내렸다.
‘트럼프의 감축검토 지시’ 소식을 듣고 한국 언론이 문 특보의 기고문 내용 일부를 헐뜯어서는 안 될 것이었음을 깨달았어야 한다.
그 전에도 문 특보의 발언 때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계속 무지를 드러내는 비판성 기사로 물고 늘어졌다.
그가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근시안적인 한국 언론은 문 특보가 종북이나 된 듯,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결과는 문 특보의 말 대로 한미 연합 훈련이 축소됐고 언론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언론이 미군 지휘부의 흐름에 아무런 정보가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다.
문 특보는 또 작년 9월, 송영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언급한 ‘참수부대 운영 계획’에 대해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하자, 언론은 곧바로 이를 질타했으나 결국 국방부는 작년 12월 국내 언론에 “참수부대라는 명칭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때도 언론이 함구했음은 역시 문 특보에 대한 전번의 비판이 무리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국제정치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한국 언론
흘러가는 정세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관찰하는 학계 권위자의 분석과 평가라면, 그 방면에 문외한일 수 있는 기자들이 무례하고 교만한 자세로 따지려 들게 아니라 필자가 기고문에서 주장하는 대목을 사전에 여러 차례 읽어 보는 등 좀 더 겸허한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특보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에 대해 “문 특보는 특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교수다. 풍부한 정치적 상상력을 도움받기 위해 대통령이 특보로 임명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흥미롭게도 4월 27일 마티스 국방장관 조차도 문 특보의 주장에 동조하듯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주한미군 문제도 논의 의제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때도 한국 보수언론은 "트럼프, 주한미군 감축 검토 지시"와 마찬가지로 마티스의 말을 미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 보도했을 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 비슷한 말을 한국 관리가 발언했다면 사퇴를 압박하는 기사로 도배하지 않았을까?
‘평화협정’이란 남북미 간 적대적 관계의 해소를 뜻하는 것이므로, 북미 간 평화협정이 논의될 때 전쟁을 전제로 주둔중인 주한미군 관련 논의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김정은의 한반도평화통일지향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임을 안다면 북미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질 경우, 더 이상 핵무기가 없는 주한미군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돼, 십중팔구 미사일에 버금가는 재래식 무기를 가진 북한군의 인질로 전락하게 된다.
그 때 주한미군의 존재는 미국에 오히려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 때도 주한미군이 필요하겠는가? 이런 점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주한미군 철수에 예민한 기자들의 임무다.
언론의 핵심 가치는 ‘표현의 자유’다. 주한미군 관련 논의를 공론장으로 이끌어 내야 할 임무는 바로 언론의 몫이다. 무조건 미국 매체나 베껴 쓰는 줏대 없는 국내 언론은 언제쯤 스스로의 창피한 모습을 자각할까.
1948년 2월 13일치 <서울신문> 사설은, “• • •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 몰각한 (친일친미)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 한탄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 민족의 문제는 지금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