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실전!”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지난 밤에는 9시에 쓰러져 아침까지 내리 잤다. 오랫만의 숙면(熟眠)이었다. 7시에 나가니 마침 셔틀 버스가 도착했다. 프라임 본사로 향했다. 2주 전에 혼자서 찾아가 본 적은 있다. 듣던대로 본사의 카페테리아는 숙소의 카페테리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메뉴가 수십 가지에다 서빙하는 직원들도 많고 음식의 질도 좋았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평소 숙소에서 먹던 메뉴를 골랐다. 계산을 하려니 금요일 안전모임(Safety Meeting) 참석자는 공짜란다. 좋은 거 먹을 걸. ㅠㅠ
안전 모임은 본사에서 유타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터미널 두 곳을 연결해 화상 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창업자는 나오지 않았다. 어제 회사에서 백만장자의 밤(Night of the Millionaries) 행사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백만 마일, 2백만 마일, 3백만 마일을 무사고로 약속 시간에 배달한 기사들을 위한 행사다. 회사 벽에 그 사람들 얼굴이 동판으로 붙어 있었다.
신입생 안내 강좌를 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진동했다. 미시건 주 번호였다. 트레이너일 것이다. 강의 중이라 전화를 안 받았더니 음성메시지가 들어왔다. 들어보니 월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으니 전화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곧 전화 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OK 답신이 왔다. 회사 견학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했다. 견학이 끝나는대로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의 전화기도 울리기 시작했다.
견학이 끝나고 점심을 위해 식당으로 가는 중에 전화를 했다. 이미 다른 사람과 하기로 했단다. 뭐야 이런. 아까 통화를 할 걸 그랬나. 점심을 먹고 연습장으로 향했다. 연습장 내 사무실에서 기다리는데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디 갔나 싶어 밖으로 나가 보니 연습장 반대편으로 저멀리 줄지어 가는 게 보인다. 그쪽으로 향했다. 몇 명씩 나눠서 강사들에게 사전운행검사 Pre-Trip Inspection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가까이 갔더니 강사 한 명이 오면서 트럭을 몰아보자고 했다. 얼떨결에 다른 두 명과 함께 따라갔다. 트럭에 제일 나중에 탔더니 먼저 탄 두 명은 뒷 벙커에 앉아 있고 내가 일번으로 운전을 하게 됐다. 옆에서 강사가 지시하는대로 차량을 움직였다. 생각 외로 차의 반응이 예민했다. 연습장 바깥 쪽으로 한바퀴씩 돌고 교대했다. 별 감흥은 없었다. 연습장이라 속도도 10마일 내외였고 트레일러가 붙지 않은 밥테일 상태였다. 내려서 다시 인스펙션 연습을 하러 갔다. 거기 있는 학생들이 한 번씩은 다 운전을 해보게 했다.
트레이너가 보통 주말 중으로 정해지고, 가장 오래 기다린 학생은 8일이라고 했다. 지난 12일에 내가 처음 왔을 때도 룸메이트는 화요일 아침에 트립을 떠났다.
연습을 하고 있자니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오클라호마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는데 말을 정확하게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자기도 회사에 있는데 어디 있냐는 것이다. 연습장에 있다니 몇 번 연습장이냐고 한다. 연습장도 번호가 있나? 자기가 가까이 와서 찾아보겠다면서 끊었다. 다른 강사에게 물어보니 12번이란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는데 도무지 못 찾겠다. 결국 연습장 사무실 건물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사람이 없다. 또 전화가 왔지만 못 알아듣겠다. 내가 회사 지리에 대해 모르니 얘기를 들어도 어딘지 알 길이 없다. 사무실 담당자에게 전화를 바꿔 주면서 내 위치를 그에게 알려 주라고 부탁했다. 그는 전화를 받더니 나 스티브인데 내 자리 앞에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스티브 영감님에게 이 사람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네이썬 (Nathan)이란다. 분명히 전화로 이름을 말했을텐데 나는 못 알아들었다. 그 역시도 내 이름을 여러 번 물어봤는데 못 알아들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잠시 후 트레이너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인사를 하고 그의 트럭으로 갔다. 피터빌트 최신형 모델이다. 차 내부도 엄청 깨끗했다. 성격이 깔끔한 모양이다. 자기는 청결(淸潔)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침대칸에는 신발을 벗고 다녔다. 나야 좋지. 트럭커 커뮤니티 게시판에 경험담을 보니 옷도 더럽고 차도 쓰레기장이고 걷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엄청 뚱뚱한 트레이너를 만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Nathan은 서른 후반 정도로 보였고 몸도 날씬한 편이었다. 호텔로 오면서 내 배경을 얘기해 달라기에 뭘 했고, 미국에 언제 왔고, 한국 출신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어렸을 때 군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있었다며 놀라워 했다. 어떤 음악 좋아하냐기에 재즈를 좋아하고 믿기 어렵겠지만 헤비메탈도 좋아한다니 자기도 그렇단다. 좋아하는 몇몇 락밴드 이름을 댔더니 맞장구를 친다. 이 친구랑은 얘기가 좀 통하겠구나 싶었다. 목소리도 비음이 섞인 중저음에 말을 점잖게 하는 편이라 마음에 들었다.
호텔로 와서 인스펙션 강의를 한번 받고 새벽 1시30분에 만나 2시에 연습장에서 4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트립을 나가자고 했다. 트립을 나가면 주로 내가 운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Nathan은 그리고는 차를 몰고 나갔다.
회사 앱으로 차를 조회해보니 피터빌트(Peterbilt) 2019년형 모델이고 14,000마일 밖에 주행하지 않았다. 완전 새차다. 피터빌트는 켄워스(Kenworth)와 더불어 트럭계의 럭셔리 브랜드다. 그런데 이 트럭은 오토매틱이라 나중에 다른 차량으로 연습을 더 해서 시험을 봐야한다. 시험에 쓰는 트럭은 프레이트라이너 (Freightliner) 10단 수동이다.
빨래를 하고 식당에 갔더니 이미 문을 닫았다. 금요일은 오후 2시까지다. 이따가 나가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멍하니 있는데 Nathan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정이 생겨 오전 4시로 연습장을 빌렸으니 3시 30분에 만나자고 한다. 트립 나가서 먹을 음식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매번 사먹을 수는 없으니까. 저녁도 식당에서 먹지 말고 연습삼아 트럭에서 먹을 음식으로 호텔방에서 먹기로 했다. 호텔 방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다. 월마트로 갔다. 주로 전자레인지에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샀다. 사다보니 너무 많이 샀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면 안 되는데. 가격은 50불이 안 됐다. 월마트가 싸긴 하다.
이렇게 빨리 길 위로 나갈 줄은 몰랐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출발이다. 얼른 짐을 싸고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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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을 떠나다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빠트린 것이 없나 짐을 챙겼다. 식품 때문에 짐이 많아져 들고 가기 어렵다. 호텔 체크아웃하고 기다렸더니 Nathan이 트럭을 몰고 왔다.
본사에 있는 운전연습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Freightliner 트럭과 컨테이너를 빌렸다. 2시간 가량 후진 연습을 했다. 직선 후진은 큰 문제 없이 금방 익혔다. 시뮬레이터와 달리 실제 트럭은 클러치와 브레이크 감각이 달랐다. 차가 오래되고 많은 사람에게 혹사 당해서인지 기어도 잘 안 들어갈 때가 많았다. 오프셋 후진도 배웠는데 여러 번 반복해도 매번 헷갈린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나 왼쪽으로 꺾어야 하나. 강의 동영상 보면서 한번 차분하게 생각해봐야겠다.
나머지 2시간은 회사 근처 거리에서 주행연습을 했다. 기어변속은 대략 큰 문제는 없었지만 다운쉬프팅에서 몇 번 실수를 했다. 기다란 트레이너를 끌고 회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Nathan은 소리 지르는 일 없이 차분하게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 마지막에는 고속도로 주행까지 했다. Nathan은 나보고 처음 치고 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트립을 마치고 돌아와 연습장에서 몇 번 더 훈련하면 시험 통과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했다. 지난 번 훈련생은 쉬프팅이 서툴어 3주 반이 걸렸다고 했다.
차를 반납하고 이제 트립을 떠날 차례다. 사무실에 들러 서류작업을 했다. 정비부서에 들러 라면 액상스프같이 생긴 손바닥 크기의 비닐 두 봉지를 샀다. 하적장에서 컨테이너를 찾아 트럭에 연결할 때 비닐을 fifth-wheel 위에 올려놓았다. 컨테이너와 연결될 때 터지면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세차장에 들러 세차를 하고 주유장에 들러 연료를 채우면서 무게도 쟀다. 컨테이너 냉동기도 사전운행검사 과정이 있었다. 냉동기가 자체 진단을 하는데 15분 정도 걸렸다. 문제가 있으면 한번 더 실시해보고 그래도 불합격이면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가 끌 컨테이너는 한번에 통과했다. 나는 도무지 이 모든 과정이 혼란스러웠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2% 정도만 아는 느낌이었다. PSD 단계에서는 운전 기술 위주로 배우고 이런 트럭킹에 관련한 실무는 TNT 과정에서 배운다. Nathan과는 TNT과정까지 함께 간다. 어떤 트레이너는 PSD만 하고 어떤 이는 TNT만 하는데 Nathan은 둘 다 했다.
Nathan이 내 나이를 물어보길래 얘기해줬더니 깜짝 놀랬다. 자기는 나를 서른으로 봤다고 했다. Nathan은 마흔이라고 했다. 아이는 4명. 전 부인이 2명이었다. 헐.
우리가 배달할 화물은 의약품이었다. 위스콘신 주에 있는 West Logistics Inc라는 회사까지 배달해야 한다. 시카고 북쪽에 있었다. 배달 시간은 이틀 후인 월요일 오전 8시, 시간은 널널했다. 총 주행시간은 10시간 가량 거리였다. 오늘은 Nathan이 운전하고 내일은 내가 운전할 것이라고 했다. 날씨를 체크해보더니 좋지 않다고 했다. 그쪽에 비가 내리는데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프링필드에도 간간이 빗방물이 떨어졌다.
세인트루이스 방향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가는 코스를 잡았다. 중간에도 비가 내렸다. Nathan은 운전하면서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를 교육했다. 이런 교통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 코너링은 어떻게 하는 게 좋다 등. 중간에 Nathan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예전에 살던 곳이 의정부라고 했다.
나는 프리트립 대본을 꺼내서 공부를 했는데 졸음이 몰려와서 도저히 진행할 수 없었다. 조수석에서 잘 수는 없으므로 공부는 포기하고 대화를 했다. 옆에서 사람이 자면 운전자도 졸린 법이다. Nathan은 PSD 기간 중 식비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PSD과정에는 수입이 없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고마웠다. Nathan은 차는 리즈한 것이라고 했다. 회사차라면 Peterbilt가 아닐 것이라며 자기는 어릴 때부터 Peterbilt 팬이라고 했다.
Hamel이라는 곳에 위치한 트럭스탑에서 묵고 가기로 했다. 오후 2시였다. 트럭스탑은 당연히 널널했다. 일부러 먼쪽에 주차하고 프리트립 연습을 한번 한 후 건물로 걸어서 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한 후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었다. 침대칸에 있던 짐을 정리한 후 2층 침대를 꾸렸다. 내 짐을 2층칸에 올리고도 발을 다 뻗고 누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는 넉넉했다. 눕자마자 기절했다. 7시쯤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빗방울이 좀 더 굵어졌다. 트럭스탑은 아직 자리가 있었다. Nathan은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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