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대학생 딸의 문신을 본 후 충격을 받고 한달 넘게 딸과 대화를 끊고 있다는 아버지, 고등학생 아들의 책상에서 콘돔을 발견한 후 아이를 야단쳤더니 돌아오는 말대꾸.
‘왜 내 책상을 뒤져요? 사생활을 존중해 주세요!!’대성 통곡하고 들어 누웠다는 어머니.
이 두 가정의 얘기에서 한국 부모의 깊은 고민이 전해진다. 아이는 태어나서 5살때까지 부모에게 평생의 기쁨을 다 준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갑자기 난폭한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는데, 이 시기에 부모의 갱년기(특히, 어머니) 까지 겹쳐게 되면 집안은 일촉 즉발의 전쟁터가 된다.
자아를 형성하는 청소년기. 한국과 뉴질랜드 양 문화를 경험하며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은 더욱 특별한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두 세상의 가치관을 함께 살펴보자. 수직적 위계 (Hierarchy)와 수평적 평등 (Egalitarianism). 우리 한국인은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의식,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나이, 성별, 권력과 재산, 교육의 정도를 확인하고 그 관계안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자연스럽게 찾아서 들어간다. 형, 아우, 선배, 후배, 선생님, 제자, 상사, 부하. 최근에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갑과 을.
일단 관계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 안에서의 서열에 순응하도록 요구된다. 그 질서에 충실하면 집단 안에서 보호를 받지만, 만약 이 원칙에서 벗어나게 행동하면 제재가 가해진다.
몇해 전 현지 고등학교에서 한국인 남학생이 후배 학생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Brother (형) 이라고 안불러서’라고 했다. 키위 교장선생님이 물었다. ‘친형제가 아닌데 왜 브라더라고 불러야 하나?’한국어의 존댓말과 호칭을 통한 위계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장선생님께는 너무나 어려운 답변일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도 권한과 임무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있고 그 안에서 엄연히 질서가 작동한다. 그렇지만, 나이, 재산, 권력, 교육정도에 따라 위, 아래로 순서를 매기는 일은 거의 없다. 수평적인 평등의 가치관에서는 개인의 사적 영역 (Personal boundary)을 정하고 이를 존중하도록 노력한다. 따라서, 이 원칙하에서는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고 이견이 있을 때 이것을 조정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뉴질랜드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한국인 사이에서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현지 학교 선생님들은 한국 학생들을 대체적으로 ‘얌전하고 성실하다.’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남을 너무 의식한다’라는 의미라면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닐 것이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곳이 우리의 가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가 부모와 의견이 다를 때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혹은 도전적으로) 얘기한다고 하자. 만약, 부모가 ‘버르장 머리 없는 녀석! 어디, 꼬박 꼬박 말 대답을 해’라고 윽박지른다면, 아이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것이다. 수직적 위계질서와 수평적 평등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표현방식이 미숙하지만, 아이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자기의 생각을 얘기한 것인데, 부모가 이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계질서를 깨는) 위협요소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건강한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도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아이를 선택할 수 없다. 우리 부모세대들이 뉴질랜드식 개인주의적, 수평주의 평등의 교육환경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을 질서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부모의 생각틀에 가두지 말고, 마음을 열어 그들의 소리를 듣자.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길은 끊임없는 배움과 자기 성찰의 수련 과정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김 임수 심리상담사 / T. 09 951 3789 / imsoo.kim@asianfamilyservices.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