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긴 하루였다. 아침에 치른 프리트립 연습은 98점이 나왔다. 10시간 휴식 제한이 풀리는 아침 8시를 기해 출발했다. 길이 눈에 익다 싶었는데 지난 번에 갔던 길이다. 꼬불꼬불 마을길을 지나가며 좁고 긴 다리까지 건너는 켄터키와 미주리 접경 지역이다. Nathan이 비명까지 질렀던 그 코스다. Nathan이 운전했기 때문에 속도는 훨씬 빨랐다. 좁은 다리를 건널 때는 Nathan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1시 30분 쯤 미주리에 들어선 이후 첫 마을로 빠졌다. Nathan이 자기가 먹어본 것 중 최고라며 언제 기회 있으면 가보자고 했던 중국 뷔페로 가기 위해서다. 트럭스탑에 세우고 걸어갈 줄 알았는데 쇼핑몰 주차장이 한산하자 거기로 들어간다. 우리 트럭은 트레일러 뒷바퀴를 뒤로 많이 물려놓은 상태라 좁은 곳에서 회전하기가 쉽지 않다. 힘들게 겨우 들어갔다.
지난 번 스프링필드에서 갔던 중국 뷔페와 비슷했다. 점심이라 메뉴는 좀 더 단촐했지만 김치는 더 맛있었다. 10달러 선에서 먹을 수 있는 식사로는 훌륭했다. Nathan과 나는 각 두 접시씩 먹었다. 물론 접시에 담긴 음식의 양은 Nathan이 훨씬 많았다.
이제는 내가 운전할 차례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길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코너에 철판이 있어 잘못하면 트레일러 바퀴를 찢어 놓을 수도 있다. 거기에 신경 쓰며 큰 각도로 회전하는데 Nathan이 소리를 지르다 못해 내 핸들까지 잡아 돌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건너 차선의 차를 칠까봐 그런 것이었다. 정작 운전하는 나는 침착했다. Nathan은 머쓱했는지 흥분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겁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작은 접촉사고라도 났더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졌을 것이다. PSD 기간 중에 사고를 내면 회사에서 채용 거부 당할 수 있다. 실기 시험 기회 조차 안 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직선도로가 45분 가량 이어졌다. 지평선 너머까지 10분에 한번 정도 완만한 커브가 나오고 그냥 일직선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차체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핸들을 기민하게 움직여 방향을 잡아야 했다. 콜로라도 쪽은 강한 바람으로 빈 차량이나 가벼운 차량의 운행을 제한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Nathan이 가족 얘기를 들려줬다.두 번의 결혼 얘기와 함께. 하지만 사생활에 관한 부분이니 페북에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블로그에는 상세히 썼다.
아까 일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침에 얘기를 하는데 내가 대꾸를 좀 시원찮게 한 것도 있고 해서 장단을 좀 맞춰줬더니 신이 나서 얘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역시 수다스러운 성격이었구만. 학창시절에는 무척 개구쟁이였었다. 화학실에서 폭발성 약품으로 장난치다 터져서 일주일 동안 수업에 못 들어가고 징계 받은 얘기도 했다. 성룡과 이소룡을 우상처럼 섬기고 무술도 도장에서 좀 배웠단다. 대학은 1년 다니다 돈을 벌어야해서 중퇴했단다. 학업에 그리 뜻은 없었던 것 같다. .
트럭 일 하기 전에는 우체국에서 우편 배달을 했다고 한다. 연공서열로 승진하는 것이라 자기 차례가 오려면 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트럭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주말에 혼자 있지 말고 자기 집으로 같이 가도 된다며 나를 초청했다. 자기 엄마가 좋아하며 물어볼 것이 많을 것이라고.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간 계산에 관한 한 내 예측이 맞았다. 역시 어제 2시간 정도는 더 달렸어야 했다. 배달을 마치고 본사로 오니 8시다. 차량 점검하고 트레일러 세척하고 나니 9시다. 6시에서 10시까지 연습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1시간만 연습할 수 있었다. Nathan이 중국 뷔페에서 점심 먹으려고 일부러 어제 일찍 멈춘 것은 아닌가 의심도 갔다. 근 일주일만에 하는 후진 연습인데 어떤 것은 기억이 나고 어떤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난 번 보단 좋아졌다. 내일 6시간 차를 빌렸고 연습장에서 후진 연습은 4시간 동안 할 수 있다. 이 시간 동안 후진을 마스터해야 한다. Nathan은 여전히 확신에 차 있다.
비타민 잘못이야
오전 8시부터 2시까지 연습 시간이다. 2시간은 연습장에서 2시간은 도로 다시 2시간은 연습장에서 하는 일정이었다. 직선 후진 문제 없고, 오프셋 후진 거의 마스터했다. 문제는 평행 주차에서 생겼다. 차종이 달라져서 그런지 지난 번과 같은 요령으로 했는데 주차구역선을 자꾸 이탈하는 것이다. Nathan이 직접 해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트레이너도 못 하면 나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Nathan은 궁리를 해보더니 오프셋과 같은 포인트에서 핸들을 꺾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확히 맞게 들어갔다. 차종마다 달라지면 이걸 어쩐다. 평행주차가 시험에 안 걸리기를 빌어야 하나. 알리독은 한번 밖에 안 해봤지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인터넷에 후진 동영상이 많이 있지만 모두 제각각의 방식대로 하고 있어서 지금 나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수 있다. 여기서 가르치는 방식대로 해야 한다.
도로주행을 나갔는데 그간 많이 달린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역시 다운 쉬프팅이 좀 문제가 됐다. 우리 트럭은 오토 트랜스미션이라 쉬프팅 연습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다운 쉬프팅 때 기어가 잘 안 들어가니까 당황하게 되고 경황이 없어 도로표지판도 못 보고 지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창문을 열고 달려 바람이 몰아쳐 머리 카락이 흩날려 시야를 가리고 입 안으로도 들어갔다. 이 빌어먹을 머리를 당장 잘라버려야겠다 싶었다. 날씨는 초여름 날씨라 땀 삐질삐질 흘리고. Nathan의 지적은 계속되고. 힘들었다.
다시 돌아와 간단히 점심 만들어 먹고 후진 연습을 다시 했다. 평행주차에 시간을 많이 써 알리독을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도로주행도 100% 완벽하지는 않다. 나도 그렇고 Nathan도 그렇고 이대로 시험을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내일 하루 더 연습을 하고 토요일 시험을 보기로 했다. 역시 어제 연습을 충분히 못한 영향이 있다.
Nathan이 밥테일 트럭으로 캠퍼스인에 태워줬다. 프론트에 가서 아내가 보낸 약을 찾았다. 트럭에서 내릴 때 다른 학생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Nathan의 트럭이 좀 멋지긴 하지. 외장에 신경을 많이 쓴 트럭이다. 약 복용법을 보니 좀 복잡했다. 네 가지 약을 열흘 동안 먹어야 하는데 어떤 것은 하루 네 번, 어떤 것은 두 번, 어떤 것은 한 알, 어떤 것은 두 알. 일단 시험 끝나고 먹기로 했다. 약 챙겨 먹는 것 도와주는 앱이 있어 다운 받았다.
밀레니엄 빌딩에서 그간 밀린 빨래를 하고 그 사이에 샤워를 했다. 다시 기분이 좀 상쾌해졌다. 아내와 통화하고 쉬고 있자니 Nathan에게서 문자가 왔다. 7시에 트럭과 연습장을 빌렸다고 한다. 연습을 많이 할 수록 나는 좋다. 얼른 트럭으로 갔다. Nathan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빈 코스에서 연습을 하자고 했다. 트럭을 빌려서 시험용 트레일러에 연결하고 비어있는 연습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머리가 흩날리지 않도록 두건을 썼다. 막 첫 움직임을 시작하는데 트럭이 이상했다. 클러치에서 발을 떼지 말라고. 나 지금 클러치 끝까지 밟고 있어. 어 그래? 차 시동이 꺼졌다. 클러치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회사 정비센터에 전화를 해서 기술자 두 명이 와서 수리를 시작했다. 나는 그틈을 이용해 프리트립 연습을 했다. 시험에 쓰는 트럭은 Nathan의 트럭과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부품 위치도 다르다. 차이점을 세심히 살펴보니 이제 100%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프리트립은 마스터다. 기술자들은 한참을 트럭 밑에 들어가 손을 봤지만 고치지 못했다. 정비장에 가서 고쳐야 한단다. 트레일러를 제 자리에 두기 위해 트럭을 움직였다. 클러치를 밟지 않아도 기어를 이동할 수 있다. 플로팅 쉬프팅(floating shifting)이라고 하는데 숙달된 운전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Nathan은 이 방법을 써서 트럭을 움직였다. 문제는 클러치를 밟아야 후진 기어를 넣을 수 있으니 이때마다 시동을 끄고 기어를 넣은 후 다시 시동을 걸어야 했다. Nathan은 숙달된 솜씨로 트레일러 주차하고 트럭과 분리하고 다시 트럭을 제자리에 주차했다. 오늘 연습은 텄다. 연습하지 말라는 모양이다. 내일도 이 트럭을 쓰도록 되어 있어 취소하고 다른 트럭을 예약했다. 연습 시간도 달라지고 트럭 종류도 달라졌다.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는 가벼운 트럭으로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는 풀사이즈 트럭으로 한다. 한 종류로 하는 게 좋긴 한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할 수 없다.
Nathan은 태연한 척 했지만 속상한 기색이 보였다. 잠시 후 자기가 오늘 비타민 챙겨먹는 것을 잊어 먹었다며 자기 잘못이란다. 너 잘못이 아니고 비타민 잘못이야. 그제야 웃는다. 나도 비타민 챙겨먹어야겠다. 인삼추출액도 마시고.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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