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라 형제들 이야기 (41-42)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사람: 그렇다면 결혼이란 개념, 혹은 결혼 제도는 당신네 행성에는 없는가?
바샤: 당신들과 같은 의식화된 결혼은 없다. 우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그런 행위를 보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단순히 있는 것은 있다. 바램(desire)이 거기 없다면, 어떤 의식도 그것에 무언가를 더 부여할 수 없다. 당신들의 결혼은 직접적 교환이 아니라 무언가 중간적인 상징물(象徵物), 경제적 고려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단순화해서 말하겠다. 우리의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모든 타인과 결혼해 있다. 문명 전체는 자신과 결혼해 있다. 발생하는 모든 관계들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든, 결혼의 한 부분이고, 결혼관계이다. 한 때 여러분이 말하는 일부일처제 같은 형태를 띈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사람: 혼인서약도 없는가?
바샤: 진정한 자신이 되겠다는 서약, 상대에게도 그러겠다는 서약은 있다. 어떤 관계든지 협동적으로 만들어지면 관계자체가 즐거운 법이다. 그것에서 무엇을 기대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 우리 문명 세상에서, 왜 그렇게 서약하는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샤: 그것이 상호 지지를 보장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들은 자신을 온전하게(whole) 느끼도록 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러나 한편 당신들은 자신의 온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반영해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당신들 각자는 상대에게 같은 것을 반영(反映)해준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자신의 ‘반쪽’이 자기를 떠나지 않을 것을 보증받고 싶어 한다. 당신들은 자신이 정확하게 매혹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음을 안다면, 당신들은 그 관계에 충실할 것이다.
사실상 여러분은 알든 모르든 간에 항상 서약에 충실하다. 비록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여러분은 함께 창조한다는 생각에 충실하고 있다. 여러분이 서약을 중시하든, 서약이 없는 관계를 하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순간은 성실히 그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 관계하는 방식이다. 또한 어떤 상황이나 관계가 바뀌면, 우리는 그 변화에 충실한 이유도 그렇다. 만물은 변화하므로, 모든 변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 사회에도 평생 동안 일대 일 관계를 유지하며, 그런 관계에 충실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생을 거쳐서 여러 사람과 관계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창조하면서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 관해서 더 배우고, 인생에서 다양한 봉사의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상호관계도 만약 그가 정직하고 고결(高潔)하며 필요할 경우 언제나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인간됨의 산물이라고 인정한다.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건 간에 그것은 미미하다. 여러분의 사회에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비록 상호작용을 보장하기 위해서 결혼제도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지만, 관계가 바뀌면 이혼제도를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는 모든 방식으로 단순하게 행동하고 상호 교류한다.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상호관계를 유지하므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 우리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바샤: 그렇다. 우리가 알기로는 지구도 그럴 것이다.
Darryl Anka
‘인류는 무지에 싸인 존재’
저자 Whitely Strieber 가 쓴 열쇠( the master of key)의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저자는 20권의 소설과 여타 논픽션을 써서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대표작은 ‘교섭’(communion)으로 1985년 겨울 외계인과의 만남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뒤에 영화로 된 작품들도 썼는데, 그 중에 전 세계인에게 임박한 기상이변의 도래를 상기시켜준 영화 ‘터머로우’ (the day after tomorrow)의 원작인 ‘임박한 세계적 초대형태풍’ (the coming global superstorm)의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이 책이 쓰여 지게 된 배경은 아주 단순하다. 저자는 널리 알려진 작가로서 가끔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니는 사람이다. 그 날도 같은 목적으로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하는 중이었다. 1998년 6월 6일, 출판관계자, 서점, 독자들과 만남, 언론과의 인터뷰 등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서 깊은 잠에 들었다. 새벽 2시 30분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열어 주었더니, 원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호텔 직원이 무슨 일로 온 줄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자는 그 ‘신비스런 존재’와 약 2시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나고 그는 조용히 나갔고, 저자는 깊은 잠에 빠졌고 이튿날 아침에 깨어났다. 저자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그‘신비스런 존재’가 도대체 누구인가였고, 둘째는 그 대화 내용의 심오함, 새로움, 예언적 내용 등의 이해였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겠다. 즉 그 ‘신비스런 존재’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면,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대화 도중에 저자는 그의 신분, 정체성에 대해서 여러 번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이라는 것이 매우 아리송했다. 어찌 보면 천사 같고, 어찌 보면 외계인 같고, 어찌 보면 미래에서 온 사람 같고, 또한 신의 현현 같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슨 자신은 세금도 안내고 자동차 면허증고 없는 캐나다인이라고도 했다. 도대체 그가 누구란 말인가? 저자는 이 문제로 많은 생각과 추측을 해 보았으나 어떤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이 문제는 여기서 접어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실제 그를 만난 저자 자신이 확인하지 못한 일을 필자가 누구라고 단정하겠는가? 따라서 앞으로 그 사람을 ‘신비스런 존재’라고 부르기로 하자.
필자가 중시하는 것은 이 ‘신비스런 존재’가 전달한 메시지의 내용이다. 이 메시지의 내용이 지금 인류에게 중차대한 것이라면, 이것은 발언자의 신분확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예를 들어 보자.
어떤 가난한 청년의 어머니가 위급한 중병에 걸렸고, 신속한 수술이 필요하다. 이 청년은 수백만원 비용을 구하려고 하루 중일 헤매다가 실패하고 낙심하여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 때 어떤 낯선 사람이 나타나 봉투 하나를 주고는 가벼렸다. 와서 펴 보니 거기에는 그가 당장 필요한 병원비가 들어 있었다. 청년에게 그 사람은 천사였다. 그러나 천사의 신분확인이 중요했지만, 우선은 그보다 그가 건네준 금액이 더 중요했다. 대화 도중 내내 그 ‘신비스런 존재’는 자신의 신분보다 전달 내용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누차 강조했던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요약해서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존재의 실상과 조건이고, 둘째 선진국들의 진면목이며, 셋째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고, 넷째 인류 미래이고, 다섯째 인간의 비약 혹은 진화다.
첫째, 인간 존재의 실상과 조건에 대하여
그가 보기에 인간은 다음과 같았다. 인류는 감옥에 갇힌 죄수요, 보지 못한 장님이요, 자유롭지 못한 노예요, 무지에 싸인 존재였다. 이러한 진단은 부처의 견해와 상당히 일치하고, 러시아의 신비가 구르지예프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처님에 의하면 인간은 고해(苦海)에 빠져있고, 불이 난 집(火宅)에 살고 있고, 무지에 갇혀 있다. 탐. 진. 치의 무거운 덫에 걸려있다. 본래 왕자인 사람이 어떤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으로 거지가 되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고귀한 천품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인간은 영혼을 모르고, 신을 모르고, 사후 세계를 모르고, 더 높은 세계를 모른다. 영혼도 있고, 신도 있고, 사후 세계도 있고, 더 높은 세계도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들을 지각(知覺)하고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죄수이고 장님이고 노예고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도 모른 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층적인 무지에 싸여 있다. 애당초 이런 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지구라는 별에 왔는지, 그 의미와 목적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탐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어떤 경전에는 “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찾아라 만날 것이다.” 고 했다. 답을 알기 위해 먼저 질문하고 찾아야 한다. 우주는 응답하는 것이요, 존재전체는 감응하는 체계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박종택의 별나라 형제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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