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0-71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오늘도 나사가 다 풀어진 기계조각 같이 힘 빠진 육신을 불굴(不屈)의 의지로 추스려 또 길을 나선다. 마리로 향하는 길이다. 그 옛날 혜초 선배와 마르코 폴로 선배 그리고 칭기즈 칸이 지나간 길이다. 그 옛 선배들도 마리로 향하면서 가물가물 꺼져가는 생명을 혼신의 힘으로 붙잡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오아시스가 나온다는 희망이 그 원천이다.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마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카라쿰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이다.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갔고 여기서 종교 정치 문화 경제, 사랑이 뒤섞였다. 마리야말로 물질적, 정신적, 지리적 실크로드의 중심이며 과거 유라시아의 광역생활권의 중심지였다. 실크로드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불상에서 그리스풍의 간다라 미술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유라시아 광역생활권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몽골제국 때는 유럽에서 북경까지 촘촘하게 만들어진 역참제를 이용하여 3개월이면 주파했다고 하니 과거의 세계는 지금보다 더 글로벌하고 다이내믹한 세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닫힘과 막힘이 없는 대지 위를 끝없이 달리면 생각과 상상력조차도 막힘이 없다. 이런 곳에서는 두 팔이 저절로 벌려지며 심연(深淵)을 향해 깊이깊이 숨을 들이쉬게 된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공기로도 내 번민과 좌절은 다 씻기어 나가고 성스럽고 순결한 큰 호흡을 하게 된다. 이 때쯤이면 황량한 벌판에 세차게 부는 바람과 내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벌판의 유일한 벗 바람과 번뇌 망상을 다 내려놓고 서로를 마주하면 오랜 연인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바람은 나보다 더 자유로워 지평선 저 너머를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초원의 풀과 그 풀을 뜯는 생명에 지대한 힘을 불어넣는다. 바람은 언제나 바람둥이처럼 온 세상만물과 사랑을 나누고는 내게 시치미를 뗀다. 나는 그런 바람을 사랑할 줄 안다.
나는 이곳에서 혜초 선배와 마르코 폴로 선배, 칭기즈 칸과 시공을 초월한 조우를 아주 오래 전부터 꿈꿔왔다. 이들이야말로 유라시아가 배출한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원탁에 마주앉아 유라시아 광역생활권과 유라시아의 평화에 대하여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내 안에는 오랫동안 숨죽여 살고 있는 혜초와 마르코 폴로, 칭기즈 칸이 살고 있었다. 그 거물들을 다 가슴에 품고 숨죽이고 사느라고 내가 그간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모른다.
나는 혜초 선배와 영매를 이루려 달리면서 독경을 수없이 암송한다. “마하반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언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명 불구부정 부증불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彼岸)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가자, 피안에 도달하였네. 아! 깨달음이여 영원하라! 이렇게 끝없이 독경을 하면 당시 약관 20에 해로를 통해 천축국으로 들어갔다가 4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이 길로 돌아갔을 24세 청년 배낭여행자 혜초와 격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것 같다. 때로 바람을 타고 목탁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 소리에 내가 지금 그러하듯이 이 막막하고 먹먹한 환경에 혜초도 두려워하면서도 가슴 떨렸을 그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배어난다.
걸출한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는 광저우를 떠나 하이난 섬을 거쳐 베트남과 말레이 반도를 지나, 벵골 만을 거쳐 바이샬리에 상륙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길은 해양 실크로드로 알려진 길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대식국 페르시아를 거쳐 이곳 마리를 지나 파미르를 넘어 둔황을 거쳐 장안에 도착했다. 도로가 이렇게 잘 깔린 지금도 먹고 자는 곳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든데 그 옛날 이 길 자체가 생사를 넘나드는 순례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험로(險路)였으리라! 아마도 대상(隊商)들의 무리와 동행을 했을 것이다. 불교의 본산에서 보고 듣고 공부해서 온 세상에 광명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젊은 혜초의 발걸음에 힘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 옛날 인도로 법의 보배를 찾아 나서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어쩌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구법의 길을 나선 대부분의 승려들은 생불이 되는 대신 사막에서 해골이 되었다. 후배 스님들은 앞서 길을 떠난 스님들의 해골을 보면서 이정표 삼아 두려운 발길을 옮겨야 했다. 중국의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기록에 의하면 또 다른 신라승 아리나발마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에 이르렀다. 그가 간 곳은 나란타(那爛陀)라는 최고의 승가대학이었다. 불교의 요체를 배울 수 있는 불교의 중심지이다. 그곳은 현장법사도 공부를 한 곳이기도 하다. 아리나발마는 거기서 다양한 경전과 논서를 공부하여 고국으로 꼭 살아 돌아가 큰 뜻을 펼치고 싶었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쉽게 생을 마쳤다.
베네치아의 무역상인 마태오 폴로와 니콜로 폴로 형제는 콘스탄티노플의 정세가 불안해질 것을 내다보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중국으로 떠나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 이르렀다. 쿠빌라이 칸을 알현한 이들은 종교를 논하다 교황의 서신과 토론을 벌일 그리스도교 사제 백 명을 데려올 것을 약속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백 명의 토론자를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열일곱 살의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와 함께 몽골로 돌아왔다.
몽골인들은 이들을 환대했고 서방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은 쿠빌라이는 소년 마르코를 총애하게 되었다. 그들은 쿠빌라이를 따라 제국의 수도, 북경으로 갔다. 중국에 17년을 체류한 이들은 칸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거절당하다 타타르 국의 아르센 2세가 황제의 공주 코카친을 아내로 맞고 싶다는 서신을 보낸다. 마르코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이 공주를 수행하여 타타르 국까지 인도하겠다고 청했다.
실크로드 여행가로는 단연 최고의 여행가로 명성을 얻은 이는 마르코 폴로이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동부지중해의 무역권을 두고 제노바군과 전쟁을 벌일 때 베네치아군 해군에 입대하여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무료한 감옥 생활 중에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뻥을 가미한 동방의 신비스런 이야기는 단연 최고의 인기였고 운 좋게 여기서 만난 영국 작가 루스티첼로가 그가 들려주는 동방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하여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 세상에 나왔다. 출판되자마자 이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쿠빌라이가 제위에 있던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메르브는 마리와 이웃한 도시이다. 이곳은 11~12세기 셀주크투르크의 수도였을 때 가장 전성기였지만 1221년 이곳에 침입한 칭기즈 칸에 의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에는 화려한 역사를 뒤로하고 공허한 폐허로 남게 되었다. 칭기즈 칸은 가장 잔인하게 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내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자가 혜초였다. 그가 내게 “인과 연에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므로 일체는 공(空)하다.”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법은 곧 우주에 가득 찬 진리 그 자체이다. 만유의 생명력이고 자비력인 까닭에 광명과 다르지 않다.”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유라시아에 가면 세상 모든 미녀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뻥을 친자는 마르코 폴로였다. 평생 후회하지 않을 진기한 것으로 가득 찼다고 나를 유혹한 자도 그였다. 칭기즈 칸은 내게 유라시아를 가슴으로 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자신이 핏빛으로 물들였던 곳에 평화의 불빛으로 가득 채워주길 참회하며 갈구하였다.
나는 이들과 이 모래바람 휘날리는 황량한 카라쿰 사막 한복판에서 만나 유라시아 광역생활권에 대하여 가슴을 맞대고 대화를 하려 땀을 뻘뻘 흘리며 신들린 듯이 달리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침에 유라시아 특급열차를 타고 달려서 점심은 이곳 마리나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쯤에서 먹고 저녁은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려다보며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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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영기 아심정 (天地靈氣 我心定)
마리를 지나고 바이라말리를 지나니 이제 거대한 사막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오직 모래와 죽은 듯 살아있는 관목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살 것 같지 않은 이 저주받은 땅에도 바람 속에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생명들이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 이 광활한 벌판에서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거센 바람맞으며 치열하게 달리는 나그네의 발걸음도 그런 생명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작고 초라하다.
나는 사막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아진 나는 대자연에 녹아들기 더없이 좋아진다. 이곳에서는 번뇌 망상과, 탐욕, 노여움이 일어나지 않으니 자연 마음의 수양이 된다. 그러다 ‘도인이 뭐 별건가!’하는 자만심이 드니 그것마저도 금방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바람 같이, 바람에 날리는 모래먼지 같이, 하늘 아래 끝없이 퍼지는 야생화 향기처럼 발걸음도 그저 바람에 얹어 본다.
나는 하늘과 땅, 모래와 관목, 바람과 침묵, 소와 양, 낙타와 이름 모를 새들. 도마뱀과 개미 등 이 대자연의 모든 정령들과 하나가 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천지영기 아심정 (天地靈氣 我心定)/ 만사여의 아심통 (萬事如意 我心通)/ 천지여아 동일체 (天地與我 同一體)/ 아여천지 동심정 (我與天地 同心正) 천기기운 나의기운 마음으로 하나 되어/ 세상만사 여의롭게 내 마음에 통한다네./ 천지는 나, 나도 천지 한 몸으로 감응되어/ 내 마음이 천지마음 하나 되어 바른 마음.’ 원불교의 주문인데 이 카라쿰 사막에서 대자연과 하나 되고 고통을 이겨내며 달리기에 딱 좋은 주문이어서 나는 끝없이 이 주문을 외우며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대를 이어가며 더위와 추위 거센 바람을 이기며 살아가는 이곳의 생령들과 하나가 되는 의식을 치르노라면 나도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연간 강수량이 고작 백 미리 정도 내리는 척박한 땅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시작하여 사막 한가운데서 사라지는 강들이 있다. 이런 곳에 오아시스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운하를 만들고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마을을 중심으로 낙타와 양, 소를 방목하고 지하에는 축복의 선물인 석유와 천연가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매장되어 있다. 가난과 핍박은 완고한 것이어서 이 축복의 선물도 사람들을 가난에서 건져주지는 못한다. 가난과 핍박의 질곡이 아무리 깊어도 산 자는 산다. 살아서 사랑하고 번식한다.
목동들은 이른 아침부터 가축들을 몰고 들판으로 나간다. 어린 아이는 학교를 가는 대신 아버지를 따라 회초리를 들고 가축을 능수능란하고 몰려 들판으로 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저 앞에 한 목동이 양과 염소, 당나귀를 몰고 가는데 당나귀란 놈이 대오를 이탈해서 남의 밀밭으로 뛰어 들어갔다. 개와 목동이 당나귀를 뒤쫓아 뛰어가지만 역부족이다. 목동은 발만 동동 구르고 당나귀는 신나게 별식을 포식한다. 당나귀란 놈 오늘 저녁 치도곤을 당할 생각을 하니 내가 다 등에서 땀이 난다.
이런 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유목민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오아시스 도시는 징검다리처럼 연결이 되어있다. 그 징검다리의 도움으로 카라반들은 거친 파도를 해치듯이 사막을 헤쳐 나간다. 뿐만 아니라 유목민들과 카라반에 의해서 농경사회가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기도 했다. 수천 년 동안 이들은 낙타 등 위에 실린 진귀한 물건들의 긴 행렬을 보면서 아련한 꿈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보통 대상들의 행력은 낙타가 1000 마리에서 5000 마리가 움직였다고 하고 기록에 남은 최고는 만 마리의 낙타 행렬이 이어졌다고 하니 상상하는 것으로도 장관이었을 것이다.
붉은 비단이 융단처럼 대지에 펼쳐지고 그 위에 수가 놓이듯이 장신된 관목들, 해가 뜨고 아침 이슬을 말려내면 태양은 금방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그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불굴의 발걸음, 낙타의 목에 걸린 은방울소리, 하늘하늘하고 화려한 비단을 싣고 모래먼지 날리며 광야를 가로지르는 낙타의 발자국소리. 고향과 가족을 향한 지독한 향수는 어렵사리 찾은 오아시스로도 위안을 삼을 수 없다.
삼장법사로 알려진 현장과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낙타 등에서 단조로운 풍광에 지루해서 졸거나 피곤에 졸면, 깜빡 대열에서 낙오된 자신을 발견한다. 완전한 적막과 이정표도 없고 발자국도 금방 바람에 지워지는 길 위에서 환청으로 들리는 “여기야, 이리와!”라는 동료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 사막 한가운데서 헤매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막의 해골로 여기저기 뒹굴 게 된다.
낙타와 말은 원래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만3천여 년 전 소빙하기 때 지금의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의 동부지역이 육로로 연결되었다. 이때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넘어갔고 낙타와 말이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낙타와 말은 아메리카에서는 멸종을 하고 유라시아로 넘어 온 것들이 살아서 진화를 했다고 한다.
몽골의 스텝지역의 추운날씨에도 견디는 낙타는 쌍봉낙타이고 중앙아시아의 더운 사막에서 사는 낙타는 단봉낙타이다. 단봉낙타는 젓을 이용하기도 하고 걸음이 빨라서 전투용으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북아메리카에서 멸종된 낙타는 아시아에 들어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했다. 이들은 다른 포식동물들이 생존하기 열악한 환경인 사막 속에 뛰어들어서 그 속에서 살아남는데 성공한 것이다. 낙타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생활환경이 쾌적한 대신 늘 포식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두려움과 공포로 살아가는 대신 먹을 것과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선택을 했다.
낙타의 환경 적응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더위와 추위와 물과 먹을 것이 부족한 열악한 조건에서도 잘 견뎌낸다. 그런 끈기와 인내로 그들은 사막에서 자유를 얻었다. 그들은 말이나 마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길과 늪지와 모래밭이나 거친 자갈밭까지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 낙타의 등에 있는 것은 지방덩어리이다. 낙타는 사막의 가시 박힌 식물도 잘 먹고 소화를 시키며, 신장 기능이 뛰어나 소금물까지도 마실 수 있으며 100리터의 물을 한 번에 마실 수도 있다. 낙타의 눈썹은 모래바람이 불어도 견디기 좋게 잘 발달되어 있다. 낙타는 기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문명과 문명을 연결해주는 사막의 특급열차 역할을 오랫동안 충실하게 해주었다.
유목민들도 생존을 위해서 낙타와 비슷한 선택을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정주민들은 땅을 가진 영주 밑에서 대부분은 농노와 같은 생활을 했었다. 유목민들은 모두 프리랜서이다. 철저한 신분제도의 피라미드 구조 하에 하층민으로 살아가느니 다소 거친 음식과 거친 잠자리에서 잠을 자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이들이 이런 삶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유목민들은 농업 국가들의 농경민에 비해서 훨씬 쉽게 먹거리를 구했고, 훨씬 편하게, 훨씬 오래 살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동쪽 유목지역으로 유출되는 인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도 주위의 훈족이나 다른 유목민족으로 넘어갔을 때 고향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남은 낙타를 실크로드의 사막과 초원지대를 이동할 때 짐꾼으로 이용하였다. 낙타는 자신의 등에 실린 짐이 누구 것인지, 왜 짊어져야 하는지 모른 채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 와서 느낀 것인 이곳의 사람들이 매우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원에서 그렇게 낙타처럼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이 정주마을을 이루고 모여서 경직된 정권의 여러 가지 제약 속에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자기의 등에 실린 무거운 짐이 누구의 짐인지도 모르고 뚜벅뚜벅 걷는 낙타들의 행렬 같은 삶이다.
이들의 고단한 삶을 뒤로한 채 대자연의 정령들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천지영기 아심정 (天地靈氣 我心定)/ 만사여의 아심통 (萬事如意 我心通)/ 천지여아 동일체 (天地與我 同一體)/ 아여천지 동심정 (我與天地 同心正)’을 읊조리며 옮기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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