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인의 날 행사에서 눈길을 끈 참가자 그룹이 있었다. 뉴질랜드 젊은이들로 구성된 K-Pop 동아리였다. 리더 격으로 보이는 백인 여학생과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K-Pop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BTS(방탄소년단)라고 대답했다. 자신은 그들의 가사말을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자랑까지 덧붙였다. 무슨 보이스카웃 이름도 아닌 것이 글로벌한 시대에 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이라니….
한달여가 지난 후 그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한국 가요사의 혁명적 사건이라는 호들갑스러운 해설 기사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음악이야 세계 공통어이니까 그렇다 치 지만 한국어 가사에 어떻게 공감할 것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방탄소년단의 팬그룹 아미(Army)들이 자기 나라 말로 가사를 번역하여 SNS에 공유를 한다고 하니 대단한 팬덤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 아이돌그룹에 큰 관심은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나의 편력은 나름 뿌리가 깊다. 코흘리개 시절 삼촌 손에 이끌려 하춘화, 바니걸스 쇼 (당시에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사회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 분이 대한민국 국보 코미 디언 이주일 선생이었음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에 입문하여,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국민가왕 조용필선생을 거쳐 90년 대 초반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아이들’까지 제법 시대의 트렌드를 쫓아갔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나의 사춘기 감성을 가득 채워준 것은 역시 서구의 팝 음악이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별이 빛나는 밤에’의 라디오 디제이가 들려주는 영어노래를 뜻도 모른 채 한글로 적어 친구들과 함께 부르곤 했다. 아마도, 가난과 독재의 암울한 시대에 미국(영국)의 팝 음악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도피처요, 해방구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의 70-80년대에는 독재정권과 노동 인권탄압에 온 몸을 던지며 투쟁해 온 젊은이들 사이에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렇게 엄혹한 시대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론은 여전히 존재했었는데, 이것은 10년 넘게 지속된연 경제성장률 10%의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 기여한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청년실업률 10%를 넘나드는 냉혹한 현실속에서 자신의 기본 생존권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말고,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 싸우라고 독려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방탄소년단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 좌절, 상처 그리고 사회에 대한 냉소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 아픔을 넘어 따뜻한 위로의 메세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LOVE YOURSELF 轉 Tear’앨범에 수록된 Magic Shop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나의 눈길을 끈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
너의 모든 해답은 니가 찾아낸 이 곳에
너의 은하수에 너의 마음 속에
넌 찾아낼 거야 네 안에 있는 galaxy
이 곡에 영어로 쓴 댓글 하나를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무런 힘도 없이 무기력에 빠져 지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저도 내 안에 있는 은하수를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감사해요!’
절망의 늪에서 자포자기로 허우적거릴 때 내 안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찾을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 이것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Game Changer 방탄소년단 메세지의 힘이 아닐까. 사람과 함께 부대끼고, 아파하며, 공감 하는 방식. 이것이 뉴질랜드에 사는 50대 아재가 배우고 싶은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