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닦는 시지프스
전영주 후보의 추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
[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 editor@inewsnet.net
한 남자가 있다. 신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그에게 형벌이 주어졌다.
거대한 돌을 산 꼭대기까지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이다. 힘겹게 정상에 오르면 돌은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진 돌을 다시 산 정상으로 올려야 한다. 이 과정은 끝없이 계속 된다.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목표와 끝나지 않는 형벌을 되풀이 해야 하는 남자의 이름은 시지프스다. 그리스 신화 ‘시지프스의 돌’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알베르트 까뮈는 시지프스가 받은 고통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라 말했다. 고통스런 반복행동 끝에 성취는 없다. 힘겨운 과정 속에 보람은 없다.
무한 반복되는 현대인의 일상이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이민자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혼신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하루의 삶과 처절한 투쟁을 벌이지만, 정상에 닿으면 다시 출발점으로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처럼 눈을 뜨면 언제나 똑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원위치로 돌아가는 시지프스의 형벌은 철저하게 버려진 삶의 의미를 상징한다.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미 없는 일’을 ‘자신의 의지’로 지속해야 하는 정신적 고뇌는 삶을 ‘의미’로 채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잔인한 고통이다.
가족과 미래를 위한다는 미명 하에 낯선 땅에서 낯선 일로 채워진 하루를 무한 반복하는 이민자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그러나 우리는 시지프스가 아니다. 눈 앞에 놓은 커다란 돌은, 이민자의 삶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관성처럼 굴려올려야 하는 형벌이 아니다.
노력과 땀방울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돌을 굴리는 건 언젠가 그 돌을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마침내 돌을 올려놓은 순간, 수없이 실패를 반복한 그 길은 험한 돌부리도 뾰족한 가시덤불도 사라진 매끈하고 단단한 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길을 열고 싶었다.”
지난 6월 16일(토) 코펠 시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전영주 후보는 말했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어 말했다.
“내가 힘들게 걸은 만큼 다른 사람에겐 편한 길이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길을 통해 개척하고 만들어 왔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그 길을 따라 누군가 걸어왔을 것이며, 그 흔적을 쫓아 또 다른 사람들의 걸음이 더해졌을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오솔길이 큰길이 되고 기차길이 되고 자동차길이 되었을 것이다.
이민역사를 시지프스의 돌처럼 끝없는 반복 속에 가둬두지 않기 위해서는 돌을 옮기고 길을 내야 한다.
“길을 내기 위해 정치를 결심했다”는 전영주 후보의 추후 행보가 사뭇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