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로빈 칼럼니스트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 90년 10월이다. 통일축구는 같은해 9월 북경아시안게임 기간중 전격 합의됐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는대로 축구대표팀과 취재기자들이 북경에서 평양으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현지에 있던 나는 잠시 흥분감이 일었다. 축구대표팀을 따라 평양에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때문이었다. 언론사는 1사1인이 동행할 수 있었고 나는 우리 신문사의 유일한 축구담당기자였으니 가는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고작 입사 3년차였던지라 욕심낼 입장이 아니었고 결국 최고참 선배(전직 축구담당)선배가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오랫동안 축구를 담당한 대선배였으니 나한테 기회가 주어졌다해도 양보(讓步)했을 것이다. 다만 말이라도 담당기자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선배를 보내는 윗선의 결정구조가 불만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후에도 한차례 평양 취재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엔 ‘당연히’ 축구담당 1진선배가 갔다. 통일축구가 계속됐다면 내게도 한번쯤 기회가 왔겠지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梗塞)으로 더 이상 추진되지는 않았다.
통일축구에 이어 통일농구가 평양에서 열린 것은 1999년 9월이었다. 공교롭게 나는 농구담당이었고 5명의 농구기자들을 이끄는 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취재할 수가 없었다. 당국에 의해 소수의 ‘풀 기자’만 동행하도록 허락됐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스포츠기자로서 역사적 이벤트를 취재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았던 것 같다.
4일과 5일 평양에서 통일농구대회가 열린다. 월드컵 열기에 가려 주목도는 떨어졌지만 2003년 10월 이후 15년만의 대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다. 남북간 스포츠 교류의 역사가 30년 가까운데 교류는 왜 축구 아니면 농구인가 말이다.
일단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통일축구는 과거 일제하 ‘경평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평전은 1929년 시작된 경평축구대항전(京平蹴球對抗戰)을 줄인 것으로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단합과 극일의 저항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양대 도시 서울과 평양의 대표팀이 정기적으로 교류전을 가진 것처럼 남북의 통일축구는 잊혀진 경평전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었다.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축구는 우리 민족에게 ‘국기(國技)’였고 일제치하에선 압제에 대한 분노와 자부심을 표출한 것이기도 했다. ‘다른건 몰라도 축구에선 일본에 지면 안된다’라는 의식이 오랜 세월 지배한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90년대들어 일본의 J리그 출범 후 격차가 좁혀졌고 지금은 행정과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고 축구수준도 일본이 앞서가는 형국이니 축구인들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필요하다.
각설하고 , 그럼 농구는 어떻게 축구에 이어 남북교류의 혜택을 보게 되었을까. 그것은 현대그룹 창업주 故 정주영 회장의 남다른 농구사랑 덕분이다.
현대 그룹이 많은 스포츠들을 육성했지만 특히 농구는 정주영 회장이 가장 큰 애착을 가진 종목이었다. 과거 현대남자팀의 간판스타인 이충희나 현대 여자팀의 전주원같은 스타들은 물론이거니와 농구관계자들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왕회장의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니다.
이북의 실향민 정주영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북에 올라가기도 했다시피 현대가는 대북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기울였다. 남북스포츠교류 얘기가 나왔을 때 축구에 이어 농구가 거론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북한엔 235cm의 세계 최장신 리명훈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다. 한때 NBA 진출도 거론되는 등 리명훈의 존재는 북한으로서도 자랑이었고 충분히 통일농구의 상품성이 있었다.
사진은 99년 서울서 열린 통일농구대회
이번 판문점선언이후 남북간 훈풍이 불면서 스포츠교류 1호로 거론된건 축구로 알려졌다. 하지만 농구애호가로 유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견이 반영돼 농구가 운좋게 남북스포츠교류재개의 테이프를 끊게 되었다.
덕분에 농구가 조명을 받게 되었는데 솔직히 프로출범이후 되레 수준과 열기가 떨어진 농구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수억원씩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선수들이지만 아시아에서도 중상위권에 불과한 실력이 면구스럽기만 하다. 통일농구 역시 남북은 물론, 지구촌 한민족과 세계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품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농구 말고도 남북이 교류할 수 있는 스포츠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것처럼 북한에도 다양한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는가.
북한의 수준이 높은 구기종목으로 세계 정상급인 탁구를 비롯, 배구도 있고 핸드볼도 있고 하키도 있다. 배드민턴을 비롯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하는 종목의 선수와 지도자들이 가서 훈련도 하고 지도도 하고 시범경기를 하는 교류는 어떨까. 아니면 씨름처럼 전통 스포츠로 한민족의 후예로서 동질성을 더욱 추구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전국체전이 한민족체전으로 확대 발전하여 남과 북에서 번갈아 열리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 통일농구가 모쪼록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말고 남북 스포츠가 전면적으로 정기 교류하는 계기가 되고 한겨레로서 우의를 다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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