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 이육사 베델 김마리아 김좌진 방정환의 꿈 아시나요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com
“3초만 투자해서 100년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전세계에 알려주세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독립운동가 강우규, 이육사, 베델, 김마리아, 김좌진, 방정환의 꿈을 세계에 알리는 영상(映像)을 제작해 유튜브(https://youtu.be/RD39UN6JVXU) 에 올리고 이를 SNS로 홍보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11일 뉴스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제작한 10분 분량의 영상은 반크가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펼치는 21세기 독립운동가 양성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작되었다”고 소개했다.
영상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 강우규, 이육사, 베델, 김마리아, 김좌진, 방정환의 꿈을 소개하고 있다.
박기태 단장은 젊은이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꿈에 100년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더해주세요! 100년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계승하는 여러분이 바로 21세기 글로벌 독립운동가입니다!”
반크가 제작한 동영상은 강우규와 이육사, 베델, 김마리아, 김좌진, 방정환 등 6인의 독립운동가들의 조국을 위한 꿈을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이어 21세기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자는 취지다.
박기태 단장은 “이 영상에 곧 영어 자막(字幕)도 만들어 전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알려나갈 예정이다”라며 동영상을 많이 공유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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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독립운동가들의 꿈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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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3일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 앞
태극기를 들고 계단에 선
독립운동가들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꿈꾼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나요?
100년 전 독립운동가가 꿈꾼
대한민국을 기억해주세요!
백발의 독립운동가 강우규의 꿈
1855.7.14 ~ 1920.11.29
“젊은이들이여! 전국 방방곳곳에서
쾌활하고 용감하게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라“
1919년 9월 2일 서울역 광장
일본 경찰관 1명 사망, 37명 부상
이 거사는 해외 외신을 통해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으며
한국 젊은이들의 독립을 향한 꿈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우규는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조선이 강제 식민지화되자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강우규는 왜 식민지 조선의 최고 지도자인
일본인 총독을 처단하고자 했을까요?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꿔
독립의지를 서서히 낮추고
한국인 친일파를 적극적으로 키워
한국인들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이에 강우규는 조선에 새로 부임하는
일본인 총독을 처단해
한국인을 일제의 정신적 노예로 만드는
문화정책 실행을 막고자 결심했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마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한국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 강우규가 죽기 전 조선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 중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강우규가 되어
쾌활하고 용감하게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
시인 이육사 (본명 이원록)
1904.4.4 ~ 1944.1.16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항일 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가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그는 독립운동으로 인해 수감되었을 당시
자신의 수인번호 ‘264’를 따
'육사‘를 자신의 호로 정할 만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위대한 용기를 지닌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육사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더 이상 총으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해
서른 살이 넘어 총 대신 펜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 길을 선택
한국인에게 좌절 속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조국을 향한 마지막 꿈이 담긴 시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가 감옥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기다리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1945년 광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찾아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육사가 되어
그가 기다렸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언론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1872.11.3~1909.5.1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내 말 백 마디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한국인들을 더 격동시킨다“
-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를 두렵게 할 만큼
당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신문을 발행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으로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에 격분하여
“대한매일신보”와
영자신문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한
영국출신 언론인 베델입니다
그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증거하는 고종 밀서 및
일제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을 기사로 소개해
한국인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일본의 모함으로 여러 재판을 받으며
건강이 악화된 베델은 1909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베델의 유언 중
그의 장례식에 수천 명이 모일만큼
한국인은 베델의 주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는 2000만 한민족의 의기를 고무하며
일제에 목숨과 운명을 걸고 싸우기를 여섯 해나 하다가
마침내 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공의 공다운 점이고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공을 위해 이 비를 세우는 까닭이로다
드높도다 그 기개여, 귀하도다 그 마음씨여
아! 이 조각돌은 후세를 비추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새겨진 베델의 묘비문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베델이 되어
언론인 베델이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교육가 김마리아의 꿈
1892.6.18.~1944.3.13
“리더십을 키우며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성취해나가라!“
“왜 조선 독립을 선언하는 2·8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청년 대표 중 여성은 없을까?“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
재일 유학생의 독립선언에 참가한 한 여성은
2·8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낍니다
이 여성은
자신은 대한 독립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독립운동에 힘쓴
김마리아입니다
그녀는 2·8 독립선언 참가 후 귀국해
전국 여성들의 3·1 운동 참여를 독려하다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출옥 후 전국 15개 지부
2000여 명의 여성 회원이 활동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 지도자로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며
192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1928년 미국 유학 중인 여학생들과
‘재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
미국에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고발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진정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 김마리아의 연설 중
1933년 귀국해 신사참배 거부를 주도
청년 대상 독립운동과 교육활동에 전념
조국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녀는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리더십을 키우며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성취하라!“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마리아가 되어
교육가 김마리아가 꿈꾸었던
위대한 대한민국을 완성해주세요!
군인 김좌진
1889.11.24~1930.1.24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너무 한스럽다“
여러분은 한국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청산리 대첩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김좌진 북로정서군과 홍범도의 연합부대가
일본 정예부대와 10여 차례 벌인 전투에서
대승한 위대한 한국의 독립운동입니다
그렇다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의
최고 지도자 김좌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신분 차별 없는 조국의 미래를 꿈꾸고
이를 실천한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910년 조선이 일제에 식민지가 되자
김좌진은 독립군 사관생도 양성을 위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돼 투옥되었습니다
출옥 후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600명 규모의 독립군을 훈련시키며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대항하는
다양한 전투를 수행했습니다
1930년 1월 24일 40세의 김좌진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말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니 그게 한스러워서…….“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좌진이 되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
아동문학가 방정환
1899.11.9~1931.7.23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투자하라!“
여러분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날이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나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억압하던 제국주의 시절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선생은
가장 취약하고 천대받는 존재였던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민족말살 정책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역사, 문화, 언어, 종교 등을 파괴해
일본인의 노예로 양성
그는 일제의 노예가 아닌
장차 독립된 조국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을 계몽하고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아동 운동을 펼쳐
일제에 대항했습니다
당시 아동을 비하하는 호칭에
안타까움을 느낀 방정환은
아동을 어른과 같은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
‘어린이’라는 존칭어를 만들고
이를 딴 한국 최초의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
동화 <사랑의 선물> 등을 집필하는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합니다
1922년 5월 1일 세계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며
<어린이 인권 선언>을 통해
어린이들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조국 미래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길 바랐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투자하라!“
그가 꿈꿨던 독립된 조국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방정환이 되어,
그가 꿈꿨던 대한민국의 꿈을 완성해주세요!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꿈에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더해주세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이어
21세기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한국 청년들을 찾습니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꿈을 계승하는
여러분이 바로 21세기 글로벌 독립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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