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 활짝 핀 들녘…일상(日常)이 살아 있었다
뉴질랜드 한인 청년 이송민 씨가 NGO 일을 보고 배우기 위해 최근 북한을 다녀왔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가깝지만 먼 두 나라 한국과 북한, 이 두 나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뉴질랜드에 20년가량 살았지만 떠나지 않고 늘 내 마음에 가득했다. 대학교에서 정치외교를 공부했다. 서구 문화에서 바라보는 한반도는 통일이 불가능한 곳이었고, 북한은 늘 나쁜 국가였다. 미디어와 책을 통해 수 없이 접했던 북한이라는 곳에 대한 이미지가 내 안에 있었고, 그건 희망적이기보단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들어가 보지 못했기에 그저 들은 얘기들로 내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었다. 뉴질랜드 안에서도 북한하면 인권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왔고, 과연 그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에겐 행복이란 없는걸까 궁금했다.
중국 통해 들어가야 하는 현실 안타까워
얼마 전 기회가 되어 북한의 라진이라는 지역을 다른 친구와 함께 다녀왔다. 해외동포비자를 받아 그 안에서 일하는 엔지오(NGO) 단체의 일들을 보고 배우러 다녀왔다. 뉴질랜드의 엔지오와 똑같이 사회 안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함께 돕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본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중국 세관을 지나 북한 세관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에서만 보던 군인들과 마주했고, 떨리기도 하고 긴장되었던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중국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을 먹먹하게 하기도 했다. 한국을 통해서도 언젠간 북한을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 명의 북한 지도원과 인사를 한 뒤 그 땅을 밟는 순간 뭉클한 마음이 들었고, 차를 타고 풍경을 바라보면서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푸른 하늘과 드넓은 논밭, 그리고 가는 내내 코스모스가 길에 즐비했다. 높은 건물이 없어 탁 트인 느낌이 들었고, 9월의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꾸며진 어떤 모습만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어떤 시스템 아래 로봇처럼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본 풍경은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그 가운데 웃음과 행복, 그리고 삶의 치열함이 있었다.
두 명의 지도원과 함께 계속해서 동행했다. 그분들은 해외에서 오는 방문자들을 인솔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유머 감각도 뛰어났고, 영어도 할 수 있었으며, 서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사친은 많겠지요?” 농담에 친근감 느껴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한국의 시골을 연상하게 해주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한 지도원이 우리에게 “동무들은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물어보면서, 남자친구 없으면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은 많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남사친’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도원들과 동행하는 시간들 속 그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를 얘기하며 왜 우린 이토록 가까우면서도 멀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너무 궁금한 마음에 “조국 사람들도 통일을 원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남조선 사람들도, 해외동포들도 다 원하는 통일 아니겠습니까. 통일은 되어야 합니다”였다.
그 대답에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과연 우린 정말 통일을 원하는 걸까? 그렇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꽤 오랜 세월 남과 북은 분단되어 있었고, 그 동안 공유하지 못한 각자의 문화가 있다. 과연 통일이 된다면 우린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여러 생각과 마음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악한 나라, 굶어 죽는 나라’라는 그곳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사라진 채 어느새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곳엔 코스모스가 즐비한 아름다운 자연과 일상의 모습들이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지 않았다면 난 그 땅을 불행만 가득한 곳으로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느 나라와 다를 것 없이 일상이 있었고, 일상의 행복이 있었다.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냉면
중국과 맞닿아 있는 북한 모습.
이런 얘길 하면 누군가는 ‘그저 꾸며진 모습만 보고 와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오가는 차량 속에서 내가 본 일상의 풍경에서는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어느 한쪽 편에서는 누군가가 죽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누군가의 인권은 짓밟히고 있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폐쇄적이고 접근하기 힘든 곳이어서 더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부분 또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그 나라를 향한 이미지가 그 나라를 더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 또한 든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체계들에 대해서 부정하는 게 아니다. 분명 잘못된 부분들도 있지만, 잘못된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고, 편견이 아닌 중심이 잡힌 진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그곳의 음식은 우리가 먹는 한식이랑 똑같다. 사실 너무 맛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냉면이었다. 평양이 아니었는데도 냉면은 매우 맛있었다. 머문 지역의 두부와 콩나물도 너무 맛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입맛에 너무 잘 맞는 음식들로 살을 찌워왔다.
머무는 동안 두렵거나 불안했던 적이 없다. 세관에서 나와 북한 땅을 밟은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뭉클함과 편안함 가운데 여행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 살며 북한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에 정말 고맙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가깝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데, 해외동포에게 주어진 특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또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원에게 네 잎 클로버 선물로 받아
마지막에 지도원들과 굿바이 인사를 할 때 눈시울이 붉혀졌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 새 정들어 버린 마음으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 순간 한 지도원이 우리에게 네 잎 클로버를 주면서 선물이라고 하셨다. 한참을 풀밭 위에 서서 서성이는 모습을 봤는데 우리를 위해 무엇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느껴져 먹먹했다. 이토록 서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우린 왜 이렇게 먼 곳에 있는 걸까.
뉴질랜드에서도 영주권이나 시민권자는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 이미 다른 나라의 해외동포들과 외국인들은 북한을 많이 방문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뉴질랜드에서도 북한을 방문했으면 좋겠다.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과 아닌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저 허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 허상의 이미지가 편견이 되고 선입견을 품게 만든다. 다녀와서 그 이미지가 더 굳혀지든, 깨어지든 직접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오랜 세월 다른 정치 체계와 문화 가운데 살아왔지만, 만났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있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우린 한민족이다. 같은 언어와 같은 역사를 지닌 같은 민족이기 때문일까, 짧은 기간 다녀왔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그립고,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통일이 되면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작은 통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재외 동포들은 북한을 들어갈 수 있기에 우리의 역할이 통일 문제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 또한 보게 된다. 뉴질랜드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좋겠다.
다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회의 땅인 그곳을 이용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통일을 기원하며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북한에 가고, 북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단체를 하면서도 늘 내가 생각하는 게 있다. 내가 뭔가 우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게 아닌, 그저 그 사람들과 함께 서로 힘이 되어주며 살아가기 위해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것이다.
북한을 향한 마음도 똑같다. 그곳은 나쁜(evil) 곳이기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고 싶기에 계속 방문하고 싶다. 무엇보다 우린 같은 민족이지 않은가.
글_이송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