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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에 열린 대금 연주자 이아람 공연 2부에서 즉흥 마임을 하는 김원을 만났다. 파리에서 마임을 본 것이 처음이었고, 한국 사람이라 더 반가웠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임리스트 유진규의 공연을 보기 위해 춘천 마임축제로 달려가던 오래 전 나의 청춘과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지천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몽환적인 세계로 춘천을 바꿀 때, 유진규는 우리가 말로 표현하던 것을 몸짓표현만으로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무심코 하는 우리의 동작을 낱낱이 분해하듯 풀어 느리게 혹은 빠르게 몸짓과 얼굴표정에서 그의 감정과 철학이 고스란히 공감을 일으킬 때의 감흥은 말의 언어를 넘어서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 김원이 보여주었던 즉흥연주에 맞춘 즉흥마임은 또 다른 맛을 보여주었다. 즉석에서 관객이 던져주는 단어에 맞추어 순발력과 재치로 숙련된 마임을 통해 멋지게 표현해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 즉흥 연주에 맞추어 즉흥 마임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마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마임은 어느 장르와 만나도 다양하게 해석해 낼 수 있어요. 몸으로만 하는 것으로 시, 공간에서 자유롭죠. 음악에서도요. 

마임은 그리스어의 미모스(mimos)에서 유래한 것으로 ‘흉내’를 뜻하는데 마임을 하는 사람으로 마임은 흉내나 단순한 몸짓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극대화시키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객관화시켜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임에서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정지, 느림, 빠름을 표현하는 동작들은 리듬으로, 호흡을 통해서 나온다고 보면 돼요. 리듬과 호흡의 일치가 따라야 하는 거죠.

 

* 마임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4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기 시작해 그곳에서 대학까지 공부했어요. 전공은 철학이었고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철학을 공부해서 직장을 잡을 수 있겠냐며 회계학을 공부하라고 권유하셨죠. 그래 회계학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을 했죠.  첫 직장으로 LA 대우자동차 마케팅 팀으로 들어가 경험을 쌓았습니다. 부모님이 권유해서 한 회계학 공부 덕분이었죠. 경력도 쌓이고, 안정적 조건으로 삼성으로 옮겨 일을 할 때부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던가?’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하는 시간이 찾아온 거죠. 질문을 한다는 것이 철학의 시작인데, 회계학으로 안정적 직장을 생활을 하니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철학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행복의 가치와 질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그러다보니 예술에 대해서 마음이 열렸죠.

같은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브라질 여자친구가 마임을 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관심이 가지 않던 마임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니 예술에 관심이 생겨난 것이죠. 그녀를 통해 마임에 가까워졌고, 마임이 예술로 보이기 시작해 저도 마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의 마임 스승이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고, 그녀도 프랑스 마임을 해보고 싶어 스승을 따라 가게 되었어요. 저 역시 여자친구를 따라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오게 되었죠. 그녀를 따라 마임을 1년 배우다 보니 더 하고 싶어져 계속 파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30살을 갓 넘긴 나이로 제 2의 인생의 시작이었죠.

 

* 좋은 직장을 다니다 갑자기 마임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반대가 아주 심했죠. 한국에서의 딴따라라는 개념으로 마임을 보신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던거죠. 부모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해요. 그분들은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을 가져오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셨고, 저는 가난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으니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죠.  부모와 자식은 어느 관계보다 깊은 관계이다 보니 그만큼 기대가 크고, 기대가 크니 서운함 마음이 크고, 그 만큼 서로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란 것을 절실하게 느낀 시간들이었어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 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가난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거죠.  

 

* 4세 때부터 사셨다면 미국문화에 익숙하셨을 텐데, 파리에서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아니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정도로 제게는 파리가 훨씬 편하고 좋아요. 부모님이 미국 이민 1세대로 저는 한인타운의 변천사를 다 보고 자랐죠. 한인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자리 잡아서인지 아주 좁아요. 미국에 살기 위해서는 한인사회에 들어가야 편할 정도예요. 그렇다 보니 서로 눈치 보며 산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작은 한국사회죠.

그러나 프랑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살 수가 있어서 프랑스 국적도 취득하고 여기서 프랑스 여자를 만나 아이도 낳고 살다가 결혼도 했어요. 예술가의 마인드로 사는데 편하고, 유지하고 살기 좋은 도시같아요. 

두 나라 간에는 사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죠. 미국문화는 개척주의가 자본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면, 프랑스는 철학이 예술,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 맞는 거죠.

뉴욕은 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다면, 파리는 속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어요.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 콘서트, 공연 등 볼 거리가 365일 풍성해요.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도시,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파리에 오셔서 본인이 직접 마임을 하면서 파리에 아주 눌러 사시게 된 것인데, 처음에 자리 잡으실 때는 어땠나요?

 

일단 체류증을 위해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마임을 배우고, 공연까지 하는 마임리스트가 되었죠. 이때가 참 행복했어요. 공부하고, 일하고, 축제와 공연 보러 다니고 매일 마임연습을 하며 신명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 모든 것이 재미있었어요.  

생계를 위해서는 작은 아파트를 세내어 방 하나를 사용하며 다른 방을 세를 놓았어요. 그러면서 미국에서 자라 공부한 덕에 영어에 문제가 없고,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것이 아주 유용해서 MBA 과정의 마케팅 수업을 가르쳤어요. 일주일에 좋은 보수를 받으며 6시간을 강사로 일을 했죠. 미국이 학비가 비싼데 비해 여기는 거의 무료라서 가능한 것이기도 해요. 

 

*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마임이 새롭게 보였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마임도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철학이 들어간 예술이예요. 춤을 아무리 잘 추어도 철학이 없으면 기술만이 있는 것이고, 또 테크닉이 없으면 표현을 잘 할 수가 없죠. 

마임은 리듬으로 말하는 것, 표현하는 것입니다.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논리적인 것이 성립되어 있어야 해요. 그 안에 진심이 있고 그 진심에 관객들은 반응하고 공감해요. 그래서 형식과 내용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은 모든 예술 장르의 공통점으로, 철학이 필요한 이유예요. 철학과 예술은 그래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늘 병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마임은 호흡으로 힘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다시 말하면 기를 잘 조절해야 하는 것이고, 좋은 기운, 좋은 에너지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요. 

 

* 끝으로 올 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딸이 태어나면서 삶의 패턴이 많이 달라져 결혼식도 했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해 또 다른 사는 즐거움을 맛보는 중이예요. 그러다보니 가족 중심으로 시간을 할애하게 되어 전에는 공연과 축제에 많이 참가했지만 지금은 즉흥 연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비를 위해 마케팅 수업을 더 늘렸는데, 가르치는 재미가 마임만큼 커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두 가지를 병행할지 마임만을 하게 될지요. 지금처럼 지내다 보면 어느 때 마임이냐 가르치는 일이냐,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지는 날이 오겠죠. 그 때 선택하면 돼요. 마임은 나이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거든요. 

지금은 마임 연습을 꾸준히 하고, 공연은 한 달에 한번 즉흥공연을 위주로 하는 중입니다. 작품을 올려 만들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즉흥 마임이 주는 매력이 좋아서요. 한 해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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