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정체성 확립과 글로벌인재로 성장하는데 기초가 되는 풀뿌리 한글학교 지원에 노력할 터”
-고려인주말학교의 확산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고려인 주말학교의 확산을 위해 재단은 적극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중 알마티를 방문한 김봉섭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조규형) 교육지원부장은 기자에게 고려인 주말학교의 확산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봉섭부장은CIS 지역 고려인 한글교육을 위한 신규사업 개발, 한글학교 실태 파악, 한국어교사 연수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이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방문하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총영사관, 고려인협회, 고려극장, 한글학교 등을 둘러보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부장은 “뿌리의식을 느낄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고려인 동포들이 차세대육성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를 위해 재단이 신규 한국어 강사를 파견할 수도 있고, 또한 현지의 한글학교가 연합하여 문화캠프나 역사캠프를 진행한다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장은 “민족사업은 어느 누구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바로 앞만 보지 말고 먼 미래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과 현지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이면서 인터뷰 내내 한글학교의 확산과 글로벌인재 육성을 강조했다. 연해주에서 한글신문과 한글학교설립 운동을 통해 조국독립과 민족의 미래 청사진을 그렸던 계봉우 선생도 생전에 아마도 저렇게 열변을 토하지 않았을까?
아래는 김봉섭 부장과 일문일답이다.
ㅇ. 안녕하세요. 고려인 동포사회와 한국어교육 현장을 둘러보신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일본의 민단이 올해 70주년 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말이 안됩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차별과 동화정책에 맞설 수 있는 교육인프라 즉, 우리 학교가 태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때까지 체계적인 우리말교육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상 방치된 것이지요.
언어가 단절된 면에서 보면 고려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한 후, 우리말 교육이 중단되었죠. 사할린 동포의 경우는 56년부터 88년까지 입니다. 고려인들은 88올림픽 전까지 한국이라는 존재는 모르고 북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사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죠. 수교가 되면서 한국에 대한 눈은 떴지만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슈가 앞서다 보니까 체계적으로 우리말 교육이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우리말 교육에 대해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
강제이주의 아픔에다가 우리말교육이 소련의 교육체제 내에서 사라진 데다가 이제 우리에게 흔적처럼 남아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마저도 다 돌아가시고 이제 강제이주 1세대 몇 분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밥상교육도 안 되었고 무릎교육도 안 되었고 학교교육도 안 된 세대들이 지금 우리의 고려인들입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 우즈벡에서 만난 고려인학생들에게 말했어요. "한국말 못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라. 지금부터 배우면 된다.” 저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동포들이 제게 "내가 한국말을 배우면 이것을 어디에 써먹느냐? " 고 질문하는데 너무 실용적인 접근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본적인 한글 자모나 맞춤법, 초보적인 한국어 회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교육을 했어야 했는데 현지에서만 살다 보니 현지 교육체계의 틀 속에서 러시아말, 카자흐말 등 현실적인 생활어만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과거를 탓하거나 현재에 머물러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자기 뿌리를 확인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종합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재외동포재단은 올해 CIS지역에서 특별한 신규사업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말을 어떻게 하면 재미 있게 배울 수 있고, 또 자기 직업 선택과 진학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느냐? 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CIS지역에서 했던 것 중 잘못된 것이나 효과가 없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정리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입니다. 대신 적어도 1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고려인 한글학교의 대부분이 성인, 노인, 또는 현지인 중심인데, 학교라기보다는 모임성격이 강합니다. 학교라 함은 신입생이 있고 졸업식과 입학식 또는 개강식이나 종강식을 해야 합니다. 뭔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죠.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힘을 합치야 합니다. 재단은 이를 위해 새로운 유형의 고려인 한글학교를 세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ㅇ. 동포사회의 현실과 한글학교의 실태까지도 언급하셨는데, 그럼 재단이 말하는 한글학교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십시오 ?
“한마디로 우리말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자기 뿌리와 관련된 체험학습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정체성교육기관을 한글학교라고 봅니다. 이름이 한글학교라서 자꾸 오해하시는데 한글만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닙니다.
이런 한글학교를 건립할 의지가 있는 사람한테 재단은 적극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고려인 꼬마들이 10년 후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있을 것을 생각하면 벌써 흐뭇해집니다.
ㅇ. 저희 신문사에서도 2002년부터 고려인 어린이들에게 주말을 이용해서 우리말과 민족자부심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운동을 펼쳤는데, 매우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 사실, 중앙아시아 출장을 다니면서 한국어로 가르치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과정을 만들어 달라는 고려인 부모님들의 수요를 느낍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수요를 기존 한글학교의 틀 속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반성해 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기존의 한글학교는 유지 통합하되, 새로운 유형의 한글학교를 늘려나가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재외동포재단은 중국조선족동포를 위한 우리말교육 지원을 두 가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동북3성에 있는 조선족 정규학교의 민족교육역량 강화를 지원해오다가, 작년부터는 동북3성에서 한국으로 가거나 중국 연해지역 또는 대도시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족동포들이 우리말을 모르는 자녀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비정규 주말학교를 선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50만 고려인들도 하자 이겁니다. 즉, 유아반 초등반 등 한글학교를 만들기 시작하면 10년내로 100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100에서 매년 10명씩만 나와도 1000명이고, 이게 10년을 가면 만 명이 나옵니다. 그러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이 나오면 사업하기가 동포사업하기가 편해진다는 거죠. 서로 마음이 통하니까요.
지금 제일 안 되는 게 고려인입니다. 고려인은 자기 주장도 못하고 그러니까 한국하고는 멀고 거리도 먼데.... 마음으로도 멀고 정치적으로도 멀고….. 한국인들과의 접점이 거의 없습니다. 지원 요청도 무용소품, 장구 지원, 이벤트성 행사 지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ㅇ. 김 부장님의 계획은 굉장히 큰 그림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이 사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동포언론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확산시키는 것, 즉, 한글학교가 많이 세워질 수 있도록 주변에 말하고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1년에 한 10개씩만 세워나가자는 운동 같은 거죠. 이렇게 하면 10년 후에는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니까요. 훌륭한 지도자를 길러야 된다는 인재상을 확립하고, 비록 처음에는 초보적인 한글교육을 하지만 나중에는 진로지도, 취업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현재의 한글학교가 이 부분을 커버하지 못하니까 정체되어 있어요. 이러면 미래가 없고 한글교육의 미래도 없습니다. 학교는 학교다워야 한다고 하면 반발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일본처럼 솔직하게 한글학교란 말을 안 쓰고 ‘한글교실’, ‘토요한글교실’이라고 하면 돼요. 이제는 진짜 한글학교 즉, 애들을 가르치되 우리 정서가 살아 있는 쓸모 있는 인재로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한글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포를 우선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동포가 목표인 학교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현지인이 오는 것 즉, 일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포가 10%이고 현지인이 90%인 것은 재단이 말하는 한글학교는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지원받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어 수업과 진짜 한글학교를 분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ㅇ. 이를 위한 재단의 역할은?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것,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끊어져 있으니까요. 여름방학 때는 한글학교들끼리 모여서 재미 있게 집중캠프도 하고, 고국에 와서 또 캠프도 하고. 번갈아 가면서요. 한글학교를 다니면 한국엘 간다. 갈 수 있다는 걸 심어줘야 애들이 따라옵니다. 애들 스스로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답이 없습니다. 이들이 커야 중등반도 생기고 고등반도 생기고 유학 가겠다는 학생도 생기는데, 지금 그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겁니다. 방과 후 프로그램도 잘 하면 좋아요. 한글학교는 동포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재단은 여기에다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거죠. 교사의 경우도 한글학교 교사는 그냥 말만 배워서 잘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고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를 고민하고 고려인들끼리 뭉치자. 화합하자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적합합니다. 재단은 내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보고 고려인 전체를 보고 꼬마들을 보고 미래를 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와 고려인 전체와 미래를 결합시키는 한글학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ㅇ. 그럼, 지금까지 한글학교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이유는 뭔지요?
“CIS지역 한글교육은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동포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뿌리를 확인하고 현지에서의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우리말교육을 실시했어야 합니다. 고려인들이 기존의 현지 한국어교육기관에서 배우기 싫어하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동포사업은 동포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지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느 일방이 끌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상호간에 파트너십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하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협력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ㅇ. 그럼, 미국동포사회는 어떠한지요?
“미국동포 자녀들이 한국말을 배우면 취업이 잘 된다고 소문이 막 나고 또 미국기업들이 넌 한국사람인데 왜 한국말 못해? 라면서 채용면접에서 탈락시키니까 하버드대학을 나와도 아무 소용없게 되는 거죠. 미국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말을 잘 해야 한국으로 파견을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는 부모들 사이에 ‘한국말’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학교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도 한 순간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미국기업 내에서 능력이 없으면 못 버티는 거죠. 동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한글을 통해서 동아시아 지역전문가가 되고 유라시아 전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건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동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동포들은 한국을 앎으로써 아시아를 정확히 볼 수 있고 나아가 유라시아를 조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와서 상사에도 취업하는 그런 인재가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카자흐스탄 내에서 한국전문가로 성장하는 겁니다.
ㅇ. 인재상, 교육목표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 민족사업. 특히 동포사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카자흐스탄과 한국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드는데 한글학교 교육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인재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러시아. CIS지역에 있는 한글학교 200여 개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순 없겠지만 미래를 생각하는 의식 있는 한글학교들부터 서서히 변화해 나간다면 고려인동포자녀의 우리말 구사, 한국이해, 현지경쟁력 등은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한글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애들과 대화를 나눠보는데 그때 들은 얘기 하나 할까요? 애들은 "재미없어요. 선생님의 나이가 너무 많아요. 선생님이 너무 강압적이에요. 우리와 놀아주지 않아요.". 차세대 교사 육성이 그래서 너무 중요합니다. 이번 CIS 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차세대들 스스로가 뿌리의식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유능한 차세대 교사발굴입니다.”
ㅇ.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필요하다면 한글학교에서 카자흐어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말에는 한글을 가르치고 고려인이주사 외에 중앙아시아 역사,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관계사, 지역학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ㅇ. 머리 속에 온통 한글학교 밖에 없는 것 같군요.
“고려인 이주의 역사를 배우고 미래의 역사를 배우면서 미래는 너희들이 담당하라고 해야 어린 학생들의 가슴이 뛰고 정체성이 생기지 않겠어요? 뿌리는 안 보이잖아요. 언어와 문화교육을 통해 뿌리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너는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또는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더라도 부모의 나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나라 잊지 마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바탕 위에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21세기 새로운 고려인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고려인 한글교육에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ㅇ.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 정리 : 김상욱 본지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