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가전유통업계 1인자, 김 에두아르드 테크노돔 대표
"한국 대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
- 지난 14일, 창립 11주년 기념행사 가져 -
- 20명으로 시작하여 225배
성장시켜 -
이번 인터뷰는
고려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로 기획되었으나 때마침 중앙일보에서 준비중인 재외동포 특집 시리즈
중 ‘성공한 고려인’의 기획의도가 합치하는 부분이 있어 정원엽
중앙일보 기자와 함께 합동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편집자 주>
"한국 대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
카자흐스탄 가전유통업계 1위를 차지한 '테크노 돔'의
김 에두아르드(48) 대표는 지난 14일, 창립 11주년을 맞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회장은 "당시 직원 20명으로 시작한 것이 현재 4,500여명이 일하고 있다"며 회사가 급성장하였음을 '과시'했다. 또 그는 사업과 관련,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기존 회사는 이제 온라인 판매회사와 은행을 가진 종합유통그룹으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사업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어떤 지에 대해선 "회사가 너무 갑자기 성장했기 때문에 직원 채용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행복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관리자들에 대한 교육에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한국기업의 노하우를 배움으로써 극복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과거 업무상 관계를 가졌던 분들이 한국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후, 당시의
인연을 잊지 않고 도움을 주시고 계시다”면서 한국과의 네트워크를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김
에두아르드 회장은 1965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다. 김 회장 가족의 이주 역사는 할아버지 때 시작됐다. 190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부는 1935년 우수리스크에서 김 회장의 아버지를 낳았다. 그러나 2년 후인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이 시작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조부는 당시 세 살배기였던 김 회장의 아버지를
품에 안고 낯선 땅,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카프카스지역의 체첸에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김 회장의 어머니 역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온
고려인이었다.
김 회장은 어릴 적부터 타지키스탄, 카프카스 지역, 알마티 등을 떠돌아야 했다. 김 회장 스스로 “그동안 노마드(Nomad·유목민)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기억할 정도다.
김 회장은 1987년 알마티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국립과학원이 첫 직장이었지만, 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라는 정치 급변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90년 직장을 그만둔 그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집을 팔아 마련한 2만 달러로 터키에서 수입한 초콜릿을
팔았지만 극심한 인플레로 큰 손해만 보고 사업을 접었다. 할 수 없이 카자흐스탄 양대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손꼽히는 술팍이란 회사에 들어가 판매원 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근면과 성실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
회장은 2001년 테크노돔을 설립하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처음
직원 20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2년 만에 22개 도시에 50여 개 점포,
4500명 직원을 보유한 카자흐스탄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우뚝 섰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20%가 개인 능력이라면 80%는 고려인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LG·대우
등 한국기업들이 카자흐스탄에 대거 진출하면서 고려인인 나와 인연을 맺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회사의 이런 신장세에
맞춰 사회봉사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고 그는 강조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은 물론 고아들을 돕고 있으며, 태권도 협회 등
스포츠계도 후원하고 카자흐 고려인협회를 통해서는 가난한 고려인들도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 러시아말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근면성이 오늘의 ‘테크노돔’이 있게 했다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