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가을정취가 묻어나던 지난 9월 문화유산의 날에 루이 14세의 궁전 근처, 아담한 정원이 딸린 주택가를 방문하러 베르사이유를 향했다. 28년 전 홀트를 통해 프랑스에 입양된 비비안 엘리스톤(29세, Vivien Elliston, velli@hotmail.fr)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비비안은 작년 7월부터 1년에 걸쳐 세계문화 체험여행에 나섰는데, 그 일정에 일산 홀트장애인타운3개월 봉사활동도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 체험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가난한 한국의 실정에 쫓겨 아기는 누군가의 품에 안긴 채 파리행 비행기를 타야했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일산 홀트를 시작으로 세계도전여행에 나선 것이다. 파리지엔느 엄마와 영국인 아빠 밑에서 불어와 영어는 유창하지만, 아직 한국말은 못하는 부산태생 비비안의 1년 체험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 주요경력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2008년 파리근교 IUT 소(Sceaux) 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IUT 뮐루즈전문대학에서 관리행정경영학 학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학사과정 중에 프랑스텔레컴 전산관리부에서 실습을 거쳤습니다. 2006년부터 베르사이유 궁전의 기념품판매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여러 기업체에서 실습과 경력을 쌓은 후에 2011년 독일 함부르크 에어버스사에 입사, 2015년 5월까지 근무했습니다.
▶ 세계체험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동기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현실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전환점도 찾고 싶었고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멀리 1년을 떠난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 1년 동안의 여정은?
2015년 7월부터 9월은 일산 홀트복지센터를 시작으로 서울, 경주, 부산, 파주, 제주, 광주, 전주, 담양 등을 방문했습니다. 일산에 도착하여 6주간 봉사활동을 한 후, 부모님이 저와 합류하셔서 3주 동안 함께 한국을 순회했습니다.
10월, 11월, 12월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며 브리즈번, 시드니, 뉴캐슬, 멜버른, 필립 섬, 블루마운틴스 등을 돌았습니다. 이후 2016년 3월경까지 오클랜드, 해밀턴, 퀸스타운 등 뉴질랜드를 일주했습니다. 이어서 동남아로 행선지를 돌려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올해 4월 말경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7월말까지 머물며 일산 홀트 5주간 봉사활동을 재기로, 안동, 대구, 통영, 함평,설악산, 진주, 순천, 목포를 답사했습니다.
▶ 자신만의 어떤 여행스타일이 있다면?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여행하기보다는 시공간 개념에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저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던 편입니다. 물론 다른 여행자들처럼 각 방문지의 주요 유적지를 찾아갔습니다. 가령 캄보디아에 가서 유명한 앙코르와트 사원은 빼놓을 수 없지요.
주로 여행지에서 만난 이방인들과의 대화, 현지주민들의 조언에 따라 차기 행선지를 정하곤 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여행객들을 따라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대중교통편으로 버스를 이용했는데, 전날이나 당일치기로 행선지를 정해 버스표를 구입했습니다.
많이 걸었습니다.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즐겼던 편이지요. 때로는 길을 잃고 배회하다가 뜻밖에 발견하는 특유 지방색이나 풍경, 만남 등에 흠뻑 빠져드는 일이 좋았습니다. 한 방문지에서 보통 3, 4일을 머물렀는데,현지주민의 일상과 지방색을 체험하고 카페에서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이지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체류기간을 단축하거나 더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 다양한 여행체험담들도 많을 듯 한데…
오스트레일리아 불루마운틴스에서 3주간 머물 때 숙식제공 조건으로 하루 4시간 페인트칠, 정원 가꾸기,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남은 여가시간과 주말에는 산행을 즐겼고요. 이곳에서 브리즈번이나 다른 여행지에서 만났던 길동무들과 우연히 재회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멜버른에서는 여자 친구네 집에 오래 머물렀는데, 친구의 현지인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현지생활에도 적응할 수 있었던 기회였지요. 동남아로 떠나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 특별히 선호했던 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각 고장마다 특유의 분위기와 모습, 냄새, 소음, 음식, 관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는 대자연의 품에 그냥 몸담고 있는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입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이국정서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 냄새, 소음 등에 저의 오감이 이끌렸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유난히 행복했던 순간은 높은 산에 올라가 등에는 따뜻한 햇볕을, 코끝으로 신선한 미풍을 느끼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먼 바다를 바라볼 때였습니다. 정신적 평온함을 느꼈던 순간이지요. 뉴질랜드의 산 로이즈 피크와 경남 통영의 미륵산이 유난히 좋았습니다.
▶ 한국이 첫 행선지이자 마지막 행선지가 되는데…
한국은 제가 태어난 나라이고, 당연히 저의 뿌리입니다. 2002년에 부모님을 따라 세 동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 동생 펠릭스(한국입양, 27세), 플로라(베트남입양, 23세), 오스카(베트남입양, 21세).
그때 저는 어렸고 한국여행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입맛에 맞지 않았던 김치와 한국인들의 염색한 금발머리만이 기억에 남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한국음식과 문화, 한국인들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친부모를 찾아 만나보겠다는 희망도 지녔습니다. 사실 2014년 말엽부터 저의 입양서류열람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봉사활동도 탐색했습니다. 한국과 한국인, 현지생활을 제대로 파악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여겼지요. 우리 부모님에게 저를 입양시킨 홀트센터에 봉사활동 지원신청을 했고, 2015년 초경에 일산 홀트 장애인복지센타로부터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산 홀트로 시작하여 일산 홀트로 끝나는 1년 여행계획이 세워진 것입니다.
▶ 일산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일산의 홀트 장애인복지센터는 어린이부터 노인층까지 남녀노소 신체장애자들의 기숙사가 마련되어 있고, 휠체어용 미끄럼틀, 시소놀이터, 카페, 작업실, 부엌, 교회, 학교와 운동장 등이 갖춰있습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5시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차적응과 무더위까지 겹쳐 힘들었지요. 처음 1주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몸짓이 아니면 영어로 소통했는데, 일단 의사소통이 안 되니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난감했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결국 저의 주된 임무는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상가로 나들이를 나섰는데, 한 소년이 에스컬레이터 타는 것만을 좋아했던 지라 다른 일정은 취소하고 계단승강기를 타고 연신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1시간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근처 이마트로 시장가는 날입니다. 장애인들과 옷가게, 장난감가게, 화장실 등을 동반했습니다. 그네나 미끄럼틀 놀이를 함께 즐기고, 축구, 농구놀이, 퍼즐게임, 데생, 독서, 음악감상, 소품제작을 거들어줬습니다.근무시간 이외에도 장애인들과 극장이나 식당으로 함께 외출하거나 영어공부를 도와줬습니다.
▶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홀트에서 봉사활동은 저로서는 챌린지이자 영광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일산 홀트복지센터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좀 거만하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장애인들을 정상인과 똑같이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는 장애인들을 만나면 어떤 눈길로 그들을 바라봐야할지 난감했거든요. 나의 눈길이 그들을 당혹스럽게 하지 않을까 노파심도 생겨났고요. 이번 기회를 통해 장애인도 우리 정상인처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피부로 절감했습니다.
시내외출 시에 장애인들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워하는데, 행인들은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힐끔거리거나, 무심한 척 하면서도 마치 못 볼 것을 본 표정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이들을 향하여, ‘우리는 다 똑같은 인간이야!’ 하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 어떤 문화적 충돌이나 공감이 있었는지?
한국유적지, 궁전, 불교사원, 전통한옥마을 등 많은 곳을 방문했습니다. 서양에서 자란 저의 눈에는 얼마가 지나자,거의 모든 고장들이 비슷해보였고 좀 권태로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산행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산들이 많아 즐거웠습니다. 최신유행으로 몸을 싼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란한 색깔의 등산복, 모자, 선글라스, 지팡이, 술과 음식이 담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등산객들과 저의 헐거운 차림을 비교하자면 너무나 대조적이었거든요. 게다가 등산객들 대부분이 노년층이었는데도 저보다 훨씬 빨리 걸어 놀랐습니다.
산행으로 땀에 젖고 녹초가 되었을 때 막걸리나 맥주 한잔 마시는 일은 참 좋았습니다. 한번은 등산길에서 퇴직한 전 심리학과 교수님을 만나 함께 한잔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고, 다음 행선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산꼭대기에서 허겁지겁 뛰어내려왔던 적도 있습니다.
한국음식도 많이 맛보았습니다. 요리 이름이 다 떠오르지 않지만, 식탁 한가운데 반찬들을 모두 올려놓고 함께 나눠먹는 음식문화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훨씬 화기애연한 분위기가 나거든요. 그대신 술좌석에서 건배하려고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다가 일제히 한꺼번에 술을 들이키거나, 자기 잔으로 주량대로 천천히 마시지 않는 음주풍습에는 좀 난처했습니다.
▶ 특별한 만남들도 많았을 텐데…
물론 한국체류 중에 잊지 못할 특별한 만남도 많았습니다. 특히 일산 홀트에는 ‘할머니’(☞ 한국발음으로 지칭)라고 부르고 싶은 전 소아과 의사이신 조병국 박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과 함께 3개월을 보내며 한국음식, 문화, 센터기숙생들에 관해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 분은 늘 유머감각을 갖고 재미있는 일화나 경험담을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다시 만날 때는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대화하기를 바란다고 그 분에게 말했습니다. 지속적으로 ‘할머니’와 연락을 취하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교류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언제고 프랑스에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일산에서 만난 다른 해외입양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7월 말 제가 프랑스에 귀국한 이래, 한국에서 온 친구 두 명에게 베르사이유 관광을 안내했습니다.
이제는 김치, 삼겹살, 소맥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작년에 1년 세계일주 용 항공티켓을 구입하며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여행계획을 세웠을 당시에도, 이 피날레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을 다시 방문하면 또 다른 새로운 만남과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금 당장의 계획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 열심히 일해 다음의 세계체험여행 자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