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 파리15구청 광장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안 페스티발은 한인사회 역사에 획을 긋는 성공적인 행사였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좋았지만, 특히 K-POP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날 K-POP의 춤과 안무를 맡았던 사람은 안무가 박장훈(86년생) 씨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며 살고 있다는 그는 춤 출 때의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 천상 춤꾼이다. 자유와 열정이 넘치는 안무가 박장훈 씨를 만나본다.
파리에는 언제 오셨나요?
1997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첼로유학 오는 형을 따라 어머니와 함께 왔어요. 파리에 처음 왔을 때 언어의 어려움을 제외하고 적응하는 데 별 어려움 없었죠. 축구, 테니스 등 스포츠를 즐기며 활발하게 보냈어요.
안무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역사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어요. 그 때 선생님이 나중에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시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아침 7시에 일어나 저녁 6시까지, 은퇴할 때까지 일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가슴 속에 별이 들어오듯 제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질문을 하게 되었죠.
제 마음 속의 지도, 별자리가 된 것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 자유이고 행복이란 것을요.
선생님과 면담 이후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할까?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항상 움직여만 하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재능은 없고, 생각한 것이 춤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고, 춤이라면 즐기면서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나요?
네.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댄스 스튜디오에 등록을 하고는 힙합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춤이 힙합댄스였거든요. 그곳에서 처음 1년은 돈을 내고 강습을 받았고 다음 해부터는 어시스턴스로 일을 했어요. 9년 동안 같은 선생님한테 배우며 선생님 보조로 일도 하면서 춤을 배운 거죠. 보조로 일할 때부터는 무료로 배웠고요.
직업으로 춤을 춘다는데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어머니께서 처음에는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꾸준히 하는 저를 보고는 프로가 되려면 춤의 기본인 발레와 현대무용도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발레와 현대무용도 배웠죠.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와 성악을 좋아하셨는데, 할아버지의 반대로 못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교사가 되셨고, 미련이 남으셨나봐요. 그래서 제가 춤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주셨죠.
제가 8대학에 다닐 때 프랑스 댄스페스티발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동영상을 다운 받아 보여주시며 자랑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행복했어요.
제가 춤과 가까웠던 것은 저희 집안 분위기 덕분이기도 해요. 어머니는 피아노, 아버지는 바이올린과 성악, 형은 첼로 연주를 해 음악을 늘 가까이 하면서 지냈거든요.
파리 8대학에서는 무슨 공부를 하셨나요?
무대 연출 전공으로 연극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과제로 공연을 해야 할 때는 저는 대사보다 춤추는 역이 더 많았어요.연극을 통해 호흡, 발성, 몸동작, 무대, 연출, 음악 등을 다양하게 배웠던 시간입니다.
힙합댄스를 배우다가 K-POP 안무는 언제부터 하게 된 것인가요?
K-POP 안무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그렇게 되었어요. 프랑스에서 K-POP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한 것처럼 제가 K-POP 춤을 추는 것으로 알고 일이 들어오는 거예요.
사실 K-POP은 음악이지 춤이 아니예요. 춤을 추는 사람으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출 줄 알고, 안무할 줄 알고, 춤을 좋아해 한국에서 가수들이 오면 통역도 하면서 일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별 어려움 없었습니다. 지금은 영국, 독일, 스페인 등에서 해마다 워크샵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K-POP의 인기가 꽤 높은 가봐요?
K-POP을 아느냐고 물으면 10명 중 2명이 알아요. 영국, 독일 스페인 같은 나라는 K-POP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이 있죠.
프랑스는 한 때의 유행, 멋처럼 청소년들이 좋아해요. K-POP을 좋아하던 청소년이 청년이 되어서도 K-POP을 듣는 매니아로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공연장을 찾는 층도 청소년층이 주를 이루죠. 잠시 한 때 10대들이 음악보다 커버댄스라고 아이돌 가수들의 춤을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을 좋아해요. 잠시 이렇게 가까워졌다, 대학생이 되면 멀어지는 것이죠.
때문에 제가 음악에 맞추어 직접 안무한 춤보다는 가수들이 춘 춤을 그대로 배우고 싶어해요. 어느 가수처럼 춤을 출줄 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거죠.
안무가로서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공연이 들어오면 공연을 하고, 게임회사와도 일을 합니다. 게임회사는 게임에 들어갈 춤 동작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일 년에 몇 번 해외 워크샵을 하고요. 워크샵은 개인적으로 의뢰받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수, 금, 토요일에 스튜디오에서 힙합댄스를 가르치고, 7~10살 반, 청소년 어른 반을 가르치는데 배우는 연령층이 다양해요.
춤을 배우는 데는 나이가 필요 없어요. 모든 사람은 춤을 출 수 있습니다. 하나, 둘 걷는 동작이 춤이거든요. 걷는다는 것이 하나, 둘,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는 기본동작과 같아요. 몸치는 박자는 아는데 음악에 맞추어 몸이 안 따라 가는 것으로, 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 연습을 하면 누구나 돼요.
춤은 어디서나 출 수 있습니다. 음악 없이도 출 수 있구요. 춤을 출 때는 현실, 일상, 나, 세상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혼자만의 세계에 있을 수 있어요. 이 세계에서 저는 자유를 느끼죠. 매일 두 시간 씩 춤을 추고 그 외의 시간에도 추고 싶으면 춥니다.
유럽 미국은 동작은 같지만 각자 자신만의 표현을 해요. 안무는 같지만, 춤을 추는 사람들의 각자의 고유성, 개성이 표현되어 다른 것이죠. 그림은 똑같지만 보이는 게 달라지죠, 나만의 해석이 들어가는 자기화 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늘 연습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요.
안무를 할 때, 혹은 춤을 출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만의 춤을 추는 거예요. 내가 누구보다 잘 추고, 못 추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무를 할 때는 음악의 분위기에 맞추어 작업하고요.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출 수 있고 춤으로 대화 할 수 있지만, 음악이 있을 때는 음악의 분위기에 맞추어 작업을 하고 추어요. 공연장의 성격, 공연의 주제도 고려해서 안무를 짜고요. 지난 코리언 페스티발 때는 축제의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음악을 고르고 동작을 생각했습니다.
안무가로 사는데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돈 버는 일이요. 그런데 돈 버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전 다행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기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며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춤을 출 때 나를 잊고, 자유만이 있는 그 상태 몰입의 시간, 그 때의 기쁨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거든요.
앞으로 계획하시는 일이 있나요?
지금 당장은 못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프랑스에 댄스학교를 세워서 프랑스와 한국을 춤으로 교류하고 싶어요. 한국에 프랑스의 춤을, 프랑스에 한국 안무가가 와서 가르치고, 공연도 하고 워크샵도 하면서 문화교류를 하고 싶은 거죠.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