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에 접어들어 제 일생을 돌이켜보니 제 자신이 굉장히 축복받은 존재구나! 하고 느낍니다. 은퇴 후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가 적절히 섞인 달라스에 와서, 음악과 풍성한 문화를 즐기고,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의 여유와 관조를 느끼며 제 인생의 마지막 4악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은 승리와 즐거움을 표현한다.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은 그의 삶 자체인 음악과 같이 인생의 부침에서 나오는 깊은 철학으로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돌아보면 가슴 벅찬 순간과 조금은 아쉬운 후회의 순간이 있지만,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은 인생의 각각의 단계를 충실히 인정하고, 이제 새로운 열정과 즐거움으로 4악장을 펼쳐들었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주와 가르침. 오늘도 한동일 선생은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에게 주어진 두가지의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
◎ 한국에서 온 천재 피아니스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팀파니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한 선생은 한국 전쟁통에 월남했고, 10살 때 미군 위문 공연 무대의 휴식시간에 연주한 피아노로 그의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천재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으며 그의 정신적인 아버지인 제5공군 사령관인 새뮤얼 E 앤더슨 중장의 후원 가운데 미공군 기지들을 돌며 스스로 연주해 모은 5천 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54년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고, 뉴욕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마담 로지나 레빈 선생에게 사사받았다. 그녀에게 받은 인간적인 가르침은 평생 한 선생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현재도 그녀에게 배운 풍성한 감성 그대로 어린 제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1956년 4월 카네기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고, 1965년 레벤트리트 국제 콩쿨에 우승하면서 한국의 음악사에 최초 콩쿨 입상자로 기록됐다. 이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며 끝없은 연주여행 속에서 생활하며, 극도의 스토레스와 함께 영감이 고갈되어 갔고, 그는 스스로를 장사꾼처럼 느끼며 외로움에 텅 비어 버렸다.
그리고 그때 기적처럼 그에게 주어진 것이 인디애나 대학으로부터의 교수직이었다. 연주가로서의 인생에서 가르침을 주는 교수라는 소명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학생 한 명을 지도할 때마다 외로움이 사라지고 진정한 가족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28세로 시작한 교편생활은 인디애나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북텍사스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등으로 이어졌고, 30여년의 세월이 넘어갔다.
미국에 온 지 50년을 기념하는 연주회에서 미국에서 처음 봤던 뉴욕 필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재현해 91살의 부친과 함께 연주했던 그는 돌연 모국에 기여해야겠다며 유학할 수 없는 형편의 한국 지방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 2012년까지 그는 울산대학교, 순천대학교에서 음대학장과 석좌교수를 엮임했고, 일본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악 대학교 초청 교수로 활약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냈고 한국의 클래식계에 기여했다.
◎ 새롭게 발견한 인생 4악장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그는 화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부인과 함께 애리조나 투산의 아름다운 자연 앞에 삶의 여정을 새롭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광의 여유로운 삶에도 불구하고 한 선생의 가슴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어린 제자를 키우고자 하는 마음의 열정은 더해만 갔다.
결국 부부는 한인문화와 미국 문화를 적절히 갖춰 익숙한 미국 속에 독특한 한국 문화도 누릴 수 있는 달라스로 이주하기로 결심하고, 지난 달 드디어 달라스에 입성했다.
“달라스가 이렇게 문화적으로 풍부한지 모르고 있었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있고, 음악이 있어 저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활기 차고 젊습니다. 음악은 우리의 삶이고 근본이죠.”
그의 스승인 마담 로지나 레빈 선생이 90세의 나이에도 심플한 모짜르트 소나타를 어린 제자에게 레슨했듯이 한동일 선생은 손자를 옆에 두고, 인생에 대해 논하는 할아버지처럼 어린 제자를 만나 그들의 재능을 인도할 부푼 꿈에 젖여 있다.
한 선생은 극도의 경쟁 속에 승리를 쟁취하고 전세계 연주 여행을 했던 최고의 연주가로서의 과거나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열정적으로 제자를 키워냈던 교수로서의 모습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삶의 평화와 기쁨 속에서 제자와 함께하는 인생의 4악장을 맞이하는 행복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가이자 가르치는 선생이 제 삶의 정체성이죠. 저는 학생 자체를 보고 그 한 영혼을 위해 지도하고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순수한 열정과 즐거운 에너지로 삶 가운데 교향곡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레슨 문의 한동일 선생 520-288-4001)
켈리 윤 기자 press2@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