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아트필름페스티벌에서
NEWSROH=클레어 함 칼럼니스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곧 세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라며, 한국 영화의 장점을 할리우드를 모방하지 않는 한국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라고 아낌없이 칭찬하는 홍콩의 주목받는 신인 감독, 황진 (黃進, Chun Wong)의 신작 또한 어느 홍콩 영화와는 달리 그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다. 우연히 그를 슬로바키아 아트필름페스티벌 (Art Film Fest)에서 만났다. 작년, 홍콩영화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그의 첫 데뷔작, <Mad world(원제: 일념무명, 一念無明)>는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아트필름페스트는 슬로바키아내 최대 영화제로, 코시체(Košice)라는 동부의 도시에서 열린다. 코시체는 공식적으로는 자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거주인구는 25만명에 불과하고, 모든 영화관과 중앙역을 도보로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아담하다.
지인의 초청으로 이 아기자기한 영화제를 찾은 나는 새로운 슬로바키아 영화를 발견하게될 설레임에 들떠서 아시아 영화쪽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제가 후원하는 어느 선술집에서 만난 중년의 현지인이 이 영화를 보고 무척 맘에 들었다며 '완벽한' 영화라고 극찬을 했다. 처음엔, 그가 다른 성인 남자들과 비슷하게 그저 홍콩 액션영화 팬이겠거니 했다. 다음날, 알 수없는 호기심에 상영관을 찾은 나는, 이 신선한 홍콩 영화의 충격에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미친 세상>이라고도 직역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말그대로 정신병이 있는 주식 브로커가 주인공이다.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채 몸을 가뉘지 못하는 병든 모친을 보살피던중 사고로 그녀가 죽자, 과실치사(過失致死) 혐의를 받는다. 정신병원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후 퇴원하지만, 이미 오래전 관계를 단절한 아버지와 약혼녀와의 화해는 쉽지 않다. 또한, 기숙사보다 비좁은 다세대 가구에서 같이 사는 이웃들의 편견으로 재적응해야하는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나도 모르게 영화속에 깊이 빠져 들었고, 영화 상영후 가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젊은 영화인들의 순수한 인간애에 큰 감동을 느꼈다. 나는 영화 상영이 끝나고, 서둘로 다음날 그들과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황진 감독은 2016년 대만 금마장시상식(金馬奬, Golden Horse Awards)과 홍콩금상장시상식 (Hongkong Film Awards)에서 이미 최고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핫한 감독이었다. 모친역을 맡아 열연한 대만의 톱스타, 금연령(金燕玲, Elaine Jin)도 이미 이 작품으로 금마장시상식과 금상장시상식에서 모두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무간도 (無間道 Infernal Affairs)>에서 빛났던 여문락 (余文樂, Shawn Yue)과 증지위 (曾志偉, Eric Tsang)도 이미 대만과 홍콩에서 최우수 주연및 조연상 후보로 지명되거나 수상을 했다. 영화제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아직 이런 훌륭한 영화가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황진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Florence Chan은 홍콩에서도 잘 알려진 연인이다. 몇년에 걸친 영화작업을 마치고, 한 달간 유럽여행을 떠나온 그들은 슬로바키아의 소도시, 코시체로 그들의 여행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아쉽게도, 플로렌스 작가는 몸이 아파서 인터뷰에 같이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홍콩의 서민들이 처한 사회 현실과 아울러, 그가 보는 홍콩 영화계의 현재와 제 삼자로서 바라보는 한국 영화의 매력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photo credit: Max Chan Wang
- 이 작품은 어떤 계기로 제작하였는지 과정을 소개해달라.
“홍콩 시립대의 교수가 우리에게 First Film Fund라는 정부의 펀드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이 펀드는 당시 첫해였는데,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자 기획되어 전액을 정부에서 지원한다. 우리는 대본을 제출하고 피칭을 하는 여러 단계를 거쳐 경쟁을 하였는데, 결국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는 정부의 펀드에 대해 알게되면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펀드를 받게 되더라도, 미화(美貨) 256,000불로 정해진 예산으로 모든 지출을 해결해야했고, 다른 추가 투자는 허용되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이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며, 대본을 예산에 맞추며 써내려갔다. 물론, 이 점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빠듯한 예산때문에 촬영 장소와 등장 인물들, 심지어 카메라 위치조차 제한적으로 조절해야 했다. 모든 것을 최소한의 방식으로 하려 노력하다보니, 미니멀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불리한 현실적 여건들이 스타일이 되어버리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대본은 아트하우스 영화를 목적으로 썼지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단지 영화 평론가나 시네필들 이외에도, 많은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한 배우들도 작업에 같이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그들이 호응했다. 우리의 시나리오를 무척이나 맘에 들어했다. 상업영화의 대본에 익숙했던 스타, 여문락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런 인디영화의 시나리오가 흥미롭게 여겨졌던 것 같다.“
- 시나리오의 골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대본을 쓴 플로렌스는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한 뉴스를 읽게 되었다. 실수로 부친을 살해하게된 젊은 청년이 과실치사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검색을 해봤지만, 그 전후의 상황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호기심이 생긴 플로렌스는 유사한 상황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경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뉴스를 그냥 읽고 잊기보다는, 이 사례로부터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본 내용들과 우리가 최근 관찰한 홍콩에 대한 느낌들을 시나리오에 포함시켰다. 펀드에 제출할때만 해도 독립영화 대본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있어 중요했던 점은 이 프로젝트가 전액 정부지원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박스오피스의 결과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이번이야말로 투자자들의 압력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여겨서 최대한 인디영화, 아트하우스 영화로 유지하고 싶었다.“
photo credit: Max Chan Wang
- 영화를 통해서 본 홍콩 사회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살및 어린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많은 듯 하다. 현실은 얼마나 심각한가?
“홍콩과 한국의 현실은 비슷하다. 성인들은 저임금에 근로시간이 길고, 학생들은 많은 압박에 시달리는 등,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적 구조를 안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학생들의 자살률이 증가했다. 2010-14년에는 매년 25명씩 자살했다. 올해는 한 달에 5명의 학생들이 자살했다고 한다.
아마 너무 경쟁적인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이 경쟁시대에 준비하도록 강요한다. 두 세살이 되면 벌써 프리스쿨로 보내 영어, 수학, 음악 과목의 각종 증명서를 얻으려고 한다. 더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증명서를 모으려고 한다. 그리곤, 그들은 방과후에도 많은 수업과 활동을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에 동의하지 않는 부모들도 막연히 남들처럼 따라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뒤처지거나 부당한 일을 당할까 두려워 이런 현상에 동조하게 된다. 자식이 더 좋은 기회를 얻도록 기회를 보장하려고 말이다.
대학의 경우엔 정부의 융자지원으로 학비가 그다지 비싸지는 않다. 홍콩에는 대학 졸업자들이 넘쳐나서 대학 졸업장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대학졸업후, 재학중 정부로부터 받은 융자금을 거의 반평생 갚아야 하지만, 낮은 월급으로 감당할 재간이 없다.
주택난도 홍콩에선 큰 문제다. 아파트 임대나 구입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종류의 엄청난 지출을 고려하면, (일반 서민들은) 적은 월급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만이라도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자녀들을 강제로 경쟁사회로 일찍 진입시킨다. 너무 시기상조인지라, 다수의 어린 학생들은 학창시절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들은 부모들을 만족시키기위해 억지로 공부하고 산수를 하고 피아노를 친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런 부모들은 물론 악마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더 좋은 미래를 갖게 되길 소망할 뿐이다. 그들은 이런 현실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뒤쳐지면, 그들이 더 불행한 삶의 악순환을 겪을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
- 장편으로서는 첫번째 작품인데, 금연령(金燕玲, Elaine Jin), 여문락 (余文樂 Shawn Yue)과 증지위 (曾志偉 Eric Tsang) 같은 대스타들과의 작업이 어렵지는 않았나? 이들이 무보수로 참여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그들은 이 영화의 펀딩및 제작방식을 알고 나서는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들 각자의 급여는 우리 예산의 3배가 넘는다. 대신,우리는 흥행 수익을 나눠갖는 형태로 타협했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리라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듀서, 감독, 아트디렉터, 주연 배우들을 제외한 스탭들 (below-the-line)의 경우는 모두 정식 급여를 제공했다. 그들이 우리 영화에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을 맞추다보니 16일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촬영을 끝내야했다.
초저예산으로 촬영해야 하는 여건때문에 촬영순서를 두서없이 진행했다. 이런 이유로 배우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촬영이었다. 하루에, 감정이 격하고 강렬한 신이 3-4번이나 있는데, 다양한 무드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으니 배우들에겐 힘든 일이었다.
물론, 신인 감독인 내게도 이런 상황이 어려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상황이 잘 풀렸던 것 같아 행운이라고 느낀다.
주연 Shawn은 타이트한 스케줄로 힘들어했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어떨때는, 장면을 컷하고 다른 장면을 준비 해야하는 상황에 극중 캐릭터의 무드가 촬영현장에서도 유지된 적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프로였다.
Eric은 조금 더 여유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십년이 넘도록 이렇게 많이 울고 감정이 격한 심각한 작품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훌륭히 배역을 소화해냈다. 그는 또한 감독의 역활을 이해하는 분이어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를 가르치거나 내 결정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감독으로서 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이해하고, 존중해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맙다.
Elaine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배우다. 우리는 하루 12시간내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만 했다. 그녀의 장면은 모두 같은 방에서 벌어지고, 하루를 추가로 더 촬영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시나리오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촬영을 했는데, 그녀는 리허설이 전혀 필요없이 정확히 배역을 소화했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그녀는 부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직접 간병한 개인적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애증의 관계를 잘 이해했다. 그녀의 부친은 실제로 영화의 대사와 같은 말을 전했다고도 한다. 그 당시, 그녀의 결혼생활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인지 이 영화에 그녀의 개인적인 느낌도 많이 표현된 듯 하다.“
photo credit: Max Chan Wang
- 최근, 홍콩과 대만에서는 많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Elaine은 대만 출신이나 홍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Shawn은 대만의 TV 시리즈, <내일 Tomorrow>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들었다.
“가끔이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두 배우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른데, Shawn은 처음 홍콩에서 모델및 배우로 활동하다가, 팬층을 더 확보하기위해 대만 TV 시리즈에 참여했다. 그 후, 커리어를 위해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Elaine은 이미 대만에서 잘 알려진 배우였는데, 본인이 홍콩을 좋아해서 지난 십여년간 여기서 주로 활동했다.
대만과 홍콩은 물론 서로 의사소통은 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홍콩에서는 광동어 (Cantonese)로 영화를 만들고, 대만에서는 중국 표준어 (Mandarin)를 사용한다. 이런 언어장벽이 있기 때문에 공동작업이 그다지 흔하진 않다. 하지만, 중국 본토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된후 이런 협력이 더 늘고 있다.
홍콩과 중국 본토 사이에는 2004년부터 발효된 CEPA (Closer Economic Partner Agreement 경제무역관계강화협정)라는 협정이 있는데, 홍콩 영화를 본토에 배급하려면 일정 분량의 본토 배우나 스탭등을 고용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홍콩 액션 영화나 로맨스 영화에 3:1정도로 본토 배우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배급시장을 고려해 대만 배우보다는 본토 배우를 고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 홍콩 박스오피스에서는 선전을 했는지.
“홍콩에서는 두 달간 개봉했는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경쟁했는데도 가끔 상위권 3위에 들기도 하는등 성적이 좋았다. 대만과 중국 본토에서는 평균 수준이었다. 본토에서는 자막이 있어서 그런건지, 주제가 흥미롭지 않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본토인들은 할리우드 영화는 자막과 함께 보면서도, 중국인이 배우로 나오는 영화인 경우에는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
- 앞으로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공동제작할 의향이 있는지.
“중국본토에 배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흥행수입을 홍콩 박스오피스에 의존해야 하므로, 제작예산이 상당이 제한되는 것이 홍콩 영화계의 현실이다. 대만의 영화 시장은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과 협력하게 된다. 물론, 중국과 작업하게 되면 당국의 검열과 아울러, 중국 영화인들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런 점이 싫은 감독과 제작자들은 어쩔수없이 저예산으로 일해야한다.
중국 본토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화교들이 많은 싱가포르나 말레이지아로 향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과 공동작업은 글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동제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영어로 영화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아마 언어장벽으로 힘들지 않을까 싶다. 중국과 대만만 해도 문화 차이가 심하니 문화차이도 난관이 될 수 있겠고. 유럽은 언어와 문화가 서로 비슷하고, EU 체제하에 공동제작이 상대적으로 쉬운 듯 하다.“
photo credit Art Film Fest Kosice
- 최근의 한국과 홍콩 영화계를 비교해본다면?
“최근 한국의 영화들은 할리우드나 성공 케이스를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지며 아시아및 전세계 영화계에 훌륭한 모델로 우뚝 섰다.
홍콩 영화계도 물론 1980-90년대 쿵푸및 액션 블로버스터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현재로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만 하더라도, 현재, 인도, 대만, 일본, 중국 본토등 많은 선택의 여지가 존재한다. 물론, 이런 다양성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훌륭한 영화를 다른 스타일과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만족스럽다.
나는 한국 영화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 영화는 명확히 구별된다. 캐릭터도 강하고, 성숙한 영화 시스템이 자리잡은 듯 하다.
예를 들어, 작년의 성공작인 <부산행>을 보더라도 드라마와 상업성을 훌륭히 결부시켰다. 좀비영화는 결코 새로운 장르가 아님에도 <워킹데드 Walking Dead>같은 미국 영화를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나는 이런 한국 영화들의 장점들을 존경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곧 세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Sometimes, going local, is actually going International). 본인이 잘 하는 것을 개발하거나, 또는 자신의 전통적인 문화를 소중히 여긴다면, 다른 이들도 거기에 관심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계속해서 남의 것을 모방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홍콩 영화계의 실책 중 하나는, 과거에 계속해서 할리우드를 모방했던 것이다. '할리우드가 이것에 성공했다면 아마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성공한 예를 계속 따르기 시작하면서 홍콩은 우리만의 정체성을 잃었다.
내 생각에는, 홍콩 영화인들이 현재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갖는 약세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와 트렌크에 발맞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지난 70-90년대로부터 배운 훌륭한 전통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으니, 우리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감독들이 있다면?
“3명을 꼽는다면, 봉준호, 박찬욱, 정병길 감독이 있겠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학생들이 반드시 알어야 할 시네마 마스터이고, 봉준호 감독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 머물지않고, 상업적인 패키지에 통찰력있는 메세지도 함께 전하는 훌륭한 연출력이 소유한다.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는 정말 멋지다. 스타가 된 미남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만, 자신만의 책도 출간하고 자신의 팬도 많은 스타가 된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 현실에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나는 관객들이 이런 소재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특이한 드라마. 한국 영화 특색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이 많고, 잘 다듬어졌지만, (다른 많은 한국 영화들처럼) 통찰력있는 메세지 또한 잊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들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잘 손질되어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에 내용물이 없다. 인상깊은 메시지가 없다. 흥미를 유발하지만, 일년이 지나서 그 내용을 잘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영화에서 오래도록 남는 것은 시간의 경과후에도 머리속에 남는 질문들이나, 불편하게 느끼게 했던 것들, 비슷한 것을 볼때마다 연상되는 것들이 아닐까. 한국 영화의 강점이 이것이다. 물론, 항상 유쾌한 방식은 아니다. 어떨땐,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너무 폭력적이지만 내게 큰 영향을 끼친다. 홍콩 영화와는 달리, 한국 영화는 이런 종류의 폭력을 잘 구사한다.
홍콩 영화들은 시각적으로만 폭력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않다. 주로, 스턴트나 쿵후무술이고, 피 흘리는 것도 자주 볼 수는 없다. 단지, 쿵후나 액션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할 뿐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홍콩처럼 보기좋게 싸우지는 않을지 몰라도, 시각적인 폭력보다 더 유력한 심층적인 잠재적폭력 (undercurrent violence)이 많고 이런 장면은 5년내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계속 기억속에 각인되어있다. 정말 훌륭하다.“
- 차기 프로젝트도 이런 사회적 주제의 영화를 만들 계획인지.
“아마도 <일념무명 Mad World> 과는 많이 다른 장르영화, 탐정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플로렌스가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겉포장은 더 멋지게 하여, 주류사회 관객들의 관심을 더 끌고 더 쉽게 접근하려고 한다. 외양으로는 상업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찰력있는 메세지를 담은 인디영화를 만들고 싶다. 주류 상업영화에서 보기 힘든 그런 류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영화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영화산업을 접해본 우리는 영화계에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대부분의 영화인들을 둘 중의 하나에만 적응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두 카테고리에 잘 혼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양면성을 잘 살리고 있는 <Mad World>처럼 앞으로도 이런 전략을 세울 계획이다.“
글 = 클레어 함 칼럼니스트/ 프로듀서/ 인권활동가
*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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