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최초 평화의 소녀상 건립 주역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기획취재한 것입니다.
LA=Newsroh 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소녀상(少女像)’이라는 이름은 강력하다. 사람들은 소녀상에서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인권유린과 집단성범죄와 역사왜곡 등을 떠올린다,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2011년 12월 1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이었지만 이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것은 2013년 7월 30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앞 정원에 건립되면서부터였다.
서울의 소녀상은 소위 ‘위안부 이슈’를 한일간의 문제로 국한할 위험성이 있었지만 미국의 소녀상은 세계인들이 주목함으로써 이 문제가 여성의 인권을 전쟁의 도구로 착취한 최악의 흑역사를 세상에 드러내고 오늘날에도 세계 분쟁지역에서 계속되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환기(喚起)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글렌데일 소녀상의 공식 이름이 ‘평화의 소녀상(Statute of Peace)’이 된 것도 바로 이같은 역사적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은 여성인권운동을 하던 한인 활동가들이 풀뿌리단체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가주한미포럼(KAFC)의 탄생이었다. 가주한미포럼은 캘리포니아를 근거로 하지만 활동반경은 미 전역을 커버한다. 특히 실무책임자인 김현정 사무국장은 가주한미포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가주한미포럼의 ‘위안부 캠페인’은 과거 역사의 진실교육을 통해 오늘의 인권문제와 여성문제를 돌아보게 하고 미주류사회에서 한인커뮤니티의 이미지 개선과 위상강화의 순기능까지 돕고 있다.
그 주역인 김현정 국장은 2007년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될 때 역사적인 하원 청문회에 나온 이용수 할머니를 통역한 인연을 계기로 이용수할머니는 물론, 이옥선할머니, 강일출할머니등 한국에서 위안부피해자들이 올 때마다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한다.
뉴욕시청앞에서 이용수할머니와 함께 한 김현정 국장
일본의 위안부범죄역사를 잘 모르는 미국인들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을 때마다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끔찍한 범죄에 경악(驚愕)하고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보다 잘 전달하고 ‘위안부 이슈’가 왜 중요한지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주인공이 다름아닌 김현정 국장이다.
가주한미포럼은 일본계가 제기한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소송에서 3년여간의 풀뿌리 시민운동을 통해 승소했다. 또한 이용수할머니와 함께 2015년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기림비 건립안을 통과하는 개가(凱歌)를 올렸다. 미국의 대도시로는 최초이고, 중국 커뮤니티와 함께 기림비 건립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김현정 국장을 만나 가주한미포럼의 탄생배경과 평화의소녀상 건립 비화, 향후 과제 등을 상세히 들어보았다.
- 해외 최초의 소녀상이 2013년 글렌데일에 건립된 배경을 듣고 싶다
“2007년에 위안부결의안 통과이후 해결을 기대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진전되지 않으면서 지속적인 캠페인의 필요성을 느꼈다. 2010년 미동부 뉴저지에 최초의 위안부기림비가 세워지면서 자극을 받았다. 기왕이면 소녀상 형태로 세우는게 효과면에서 크다는 판단 아래 캘리포니아의 주요 대학과 여러 시에 기림비 건립의향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곳중 하나가 글렌데일이다. 당시 글렌데일엔 한인 커미셔너가 있었고 특히 아르메니아계 주민 많이 산다. 아르메니아는 100년전 ‘인종청소’를 당한 아픔이 있다. 가해주체인 터키는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안하고 있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과 시의원들은 역사왜곡과 반인륜범죄, 전쟁범죄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공감해주었다. 관계자들을 만나 위안부 기림비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고 피해할머니들도 모시고 만남도 갖고 강연회, 전시도 가지면서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됐다.”
- 당시 일본의 방해공작은 어땠나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면서 본격화됐다. 2년전에 글렌데일시에서 ‘위안부의 날’을 선포했다. 그때 일본총영사가 시의회에 ‘일본은 위안부역사의 모든 법적 절차를 마쳤다’는 편지를 보내고 시의원도 만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또 일본계 주민들을 동원해 ‘위안부 문제는 해결됐다’ ‘위안부는 매춘부다’라는 이메일 수백통을 LA타임스에 보내는 등 방해공작이 여러 형태로 전개됐다. 하지만 글렌데일 시의회는 꿋꿋했다. 아르메니아의 비극 등 동병상린도 있었고 한마디로 역사인식과 교육수준, 사회인식이 아주 뛰어났다. 당시 글렌데일 시의회에서 공청회때 5대2 정도로 우리 편이 적어서 걱정됐다. 글렌데일 시의원들이 소녀상 의지가 높다 해도 반대파가 너무 많아서 흔들리지 않을까 했는데 나중에 반대파 의견들을 모든 청취하고 차례로 나와서 발언하는데 ‘당신들은 역사를 부인하고 왜곡한다’며 야단을 치더라.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 시의원 입장에선 유권자인 일본계 주민들 눈치를 볼 수도 있는데, 숫적 열세에도 그런 모습을 보인게 놀랍다
“특히나 위안부 이슈를 한일간 문제로 안보고 인류보편적인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 시의원은 일본계 주민들 보고 ”어떻게 열네살짜리가 매춘부(賣春婦)로 자발적으로 가냐? 당신들이 역사를 모르는 것 당신 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거다“라고 따끔하게 얘기하더라. 그런데 거기에 함정이 잇었다. 다른 시들도 글렌데일 시의원들과 같은 수준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웃음)”
- 지난 2월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세워지기로 한 소녀상이 일본의 강력한 로비로 철회된걸 보면서 글렌데일이 그만큼 보석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의 대도시로는 최초로 위안부 기림비를 건립하기로 확정됐는데.
“글렌데일에서 소녀상이 세워지고 이듬해 철거소송이 들어오면서 위안부기림비를 비롯한 위안부 문제들이 미국 언론에 많이 나갔다. 그러면서 샌프란시스코 등 타 지역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특히 중국계가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선 적극적으로 우리도 기림비를 세우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에릭 마 시의원이 발의한 기림비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반대로비에 부딛쳤다. 시경계 카운티 경계가 같아서 시의원을 슈퍼바이저라고 부른다 초기엔 12명의 시의원 중 9명이 지지를 표명했는데 일본의 맹렬한 반대로비가 들어왔다. 일본은 ‘기림비 건립은 일본계주민을 차별하는 것이고 커뮤니티 분열을 가져온다. 다 해결된 문제를 자꾸 들먹이면 일본계 주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이런 논리로 시의원들을 설득하고 뒤로는 후원금이나 커뮤니티 지원금을 철회한다든지 다각도로 공략하니까 흔들리는 시의원들도 나왔다. 그때 한 시의원이 우리한테 도와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이용수할머니를 초청하여 모시고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시의회에서 할머니에게 ‘인권상’을 증정(贈呈)했는데 당시 증언장엔 500여명이 모였다. 한인과 중국계, 유태계와 일부 일본계 등 다국적의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일본이 버스로 실어날은 반대파도 상당수였다. 그 자리에서 이용수할머니의 용기있고 가슴 울리는 증언에 시의원들을 비롯한 많은 청중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소녀상 철거소송을 제기한 고이치 미라가 와서 할머니가 ‘거짓말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시의원들이 그를 향햐 ”부끄러운줄 알아라(SHAME ON YOU)를 세 번이나 하더라. 결국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기림비 국제공모와 장소 선정, 디자인 작업 등을 지난 2년간 해왔다. 올 가을 제막식이 열리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이용수할머니와 김현정국장 등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 대도시로는 처음 건립되는 기림비라 아직 필요한게 많을 것 같은데 재정 등 펀드레이징은 어떤 상황인가.
“샌프란시스코는 워낙 크고 유명한 도시라 기증이나 선물을 더 이상 받지 않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사실을 처음에 몰랐다. 각종 기념물 제안이 전 세계에서 너무 많이 들어와서 다 수용할수도 없고 유지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나가서 일체의 기념물 건립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위안부 기림비는 시민들이 커뮤니티 차원에서 추진했고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관리 예산도 충분히 갖춰놓아야 한다. 중국 커뮤니티가 시작 단계부터 25만 달러를 모아놓는 등 모금은 많이 했지만 아직도 더 모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커뮤니티는 기금을 정말 아낌없이 내놓고 있다. 한인커뮤니티에선 10만 달러를 모았고 지금도 계속 모금은 계속되고 있다. 기금을 보내줄 분들은 가주한미포럼으로 연락(kafcinfo@gmail.com)을 부탁드린다.
- 이용수할머니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처음 뵌게 2007년이다. 연방하원 결의안 캠페인때 일본의 반대로비가 굉장히 거셌다. 로비 법률회사를 2개나 고용해 워싱턴 정치인들에 사람 보내서 찬성하지 못하도록 조직적 로비를 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풀뿌리식으로 훑고 다녔다. 할머니를 모시고 LA부터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등 계속 캠페인에 다녔고, 2011년 뉴저지 팰팍 기림비 홀로코스트 단체들과 만남 가졌을 때도 2016년 보스턴 뉴욕 등 항상 동행했고 이옥선 할머니 강일출 할머니도 오시면 가능한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할머니들의 말씀을 어떤 때는 잘 알아들어야 하고 잘 해석하고 전달하는게 중요해서 제가 많이 신경쓴다. 할머니들을 통역하며 같이 생활하다보니 어떤 사명감이 생기는 등 제 인생의 변화가 오는 계기가 됐다.”
-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
“1990년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왔다. 이민자들은 오게 되면 누구나 정체성을 고민한다. 한인들은 이미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이뤄진 후에 와서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할까, 이민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게 많은데 미국사회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우리 한인들은 소수중 소수이다. 그러다보니 커뮤니티 활동을 하게 되었고 평화 문제 여성 문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이크 혼다 연방의원의 위안부 결의안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 동부의 시민참여센터가 서부에서도 해야 한다고 연락해줘서 힘을 합치게 되었다.
- 얼마전 일본에서 열린 위안부박물관 컨퍼런스에 가주한미포럼이 참여했는데
“일본에서 최초로 위안부박물관 컨퍼런스가 열렸다. 위안부박물관은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에 있고 필리핀엔 자료역사관이 있다. 위안부 문제 갖고 활동하는 단체 관계자들이 모여서 각 나라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 정보 교류하고 발표하는 기회였다. 미국엔 아직 위안부박물관이 없지만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시민활동을 궁금해 해서 가게 되었다. 앞으로 미국에도 박물관을 세워야하는 만큼 각 나라 사례를 청취하고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일본에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이 의미있었다. 하지만 최근 극우단체들이 위협적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없었나?
“일본의 위안부 관련 단체를 이끄는 분들은 평균 15년 이상 활동하는 분들이다. 피해 할머니들과도 잘 알고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행사장 앞에서 극우단체들이 모여서 떠들고 시끄러운 상황 만들었지만 그 역시 일본의 현실 아니겠는가.”
- 지난 봄에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는데
“이곳 글렌데일과 버뱅크 파사데나 헐리우드 등을 지역구로 하는 연방하원의원 아담 쉬프 민주당 의원은 글렌데일 소녀상을 참배하는 등 인권문제에 대해 굉장히 목소리를 내는 분이다. 해마다 여성단체들에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는데 영광스럽게 받게 되었다.”
-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가 이뤄졌을 때 당혹스럽고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소녀상을 철거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건 역사를 지우겠다는 의도다. 인류보편적으로 볼때도 너무나 말이 안되는 합의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이슈를 제기하고 싸워서 계속 살아있는 이슈가 된 것 같다. 미국에서 한일정부가 합의했다는 소식 듣고 화가 많이 났는데, 어이없는건 바로 일본 언론이 연락와서 ‘글렌데일 소녀상을 언제 철거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한심한 얘기하지마라. 소녀상은 미국 시민들이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거다. 한일합의와는 아무런 관련 없다’고 쏘아부쳤다. 이 합의 때문에 이후에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등 위안부기림비를 세우려고 노력한 여러 시들이 굉장히 애를 먹었다.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들먹이며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며 반대로비의 근거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최근 한 연구에선 위안부 피해국이 12개국이 아니라 26개국이나 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직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고, 타국 피해자는 전혀 거론도 안됐는데 한일 두나라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를 한다는 건 한마디로 무식한 소리다 한일간 합의 자체가 말이 안되는거다. 오히려 더 문제를 제대로 파고들어야 한다.”
- 일본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릴텐데 앞으로 위안부 문제의 운동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 많은 고통을 당한 할머니들이 사죄와 배상을 외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웅적 활동이다. 특히 여성으로서 성노예 아픔을 극복하고 활동하는 사례 정말 드문 모범사례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인류보편적 가치와 세계 기준에 맞추야 한다는 점에서 계속 압박해야 한다. 할머니들은 합의안이 나온뒤에도 계속 목소리 내고 투쟁해 왔고 한국에서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윈도우(창)가 열렸다 이번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겠다. 한일 양국의 합의로 해결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모든 피해자들과 피해국들이 원하는대로, 한국이 정말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 이젠 한국정부가 우왕좌왕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꼬이는 일이 없어야겠다. 9월 샌프란시스코 위안부기림비 제막식 행사에 이용수할머니가 오시나?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결의안 통과에 결적적 역할을 하신 이용수할머니는 당연히 모셔야 하고 많은 분들 축하차 한자리에 모일 것이다.”
- 할머니들은 세계 최고령 인권운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너무나 큰 자격을 갖추고 계신 분들이다. 할머니들이 만일 사과 받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했을거다. 정말 의식이 대단한 분들이다. 할머니들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유사피해를 끝장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신다. 그래서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시는 것 같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 이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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