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후수배자 미주에서 사회운동가의 길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기획취재한 것입니다.
Newsroh=민지영기자 newsrohny@gmail.com
故 합수 윤한봉(1947-2007) 선생은 일평생 조국의 민주화, 통일 운동과 해외운동에 몸바친 운동가이다. ‘합수’는 ‘똥과 오줌이 섞인 거름물’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으로 한 없이 자신을 낮추고 사회운동의 거름이 되겠다는 선생의 다짐이 반영된 별칭(別稱)이다.
1947년 전남 강진에서 출생한 윤한봉 선생은 군복무를 마치고 1971년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재학 중 유신헌법 반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민청학련 사건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등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에 더욱 매진하는 한편 들불야학 건립을 지원하고 농민운동가들의 활동도 후원하며 전방위 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독재종식과 민주, 통일을 위한 운동의 지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윤한봉 선생에게 1980년 5.18 민중항쟁은 인생의 큰 격변(激變)을 초래했다. 5.18 항쟁이 일어나자마자 핵심 주동인물로 낙인찍혀 1년 간의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 연행되면 죽음이 명백한 상황에서 지인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1981년 미국으로 망명을 결행한다.
미국 도착이후 이른바 ‘5.18 최후의 수배자’로서 윤한봉 선생은 또 다른 운동가의 길을 개척했다. 미 전역을 순회하며 청년들을 비롯한 한인들과 만남을 갖고 조국의 현실과 역사를 알렸으며 해외운동 단체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1984년 ‘재미한국청년연합’이 결성되었고 뉴욕, 로스엔젤레스, 워싱턴 등 전국 10개 지역에 지부를 둔 미주 최초의 청년운동체를 일구었다. 재미한국청년연합과 자매 장년조직인 ‘재미한겨레동포연합’은 이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이 진전된 시기에 해체를 할 때까지 미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한편 윤한봉 선생은 미주 각 지역에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를 위한 교육, 봉사활동의 보금자리인 ‘마당집(커뮤니티 센터)’을 일구는데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의 헌신은 결실을 맺어 1983년 로스엔젤레스 ‘민족학교’ 건립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청년마당집’, 시카고 ‘한인교육문화마당집’, 토론토 ‘교육문화원’을 건립하고 1984년엔 뉴욕에서 민권센터의 전신인 ‘뉴욕청년교육봉사원(이후 청년학교로 개칭)’을 설립했다. 설립후 민권센터는 권익옹호, 정치력 신장, 사회봉사, 청소년과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한인과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커뮤니티 단체로 성장했다.
윤한봉 선생은 수배가 해제된 직후 1993년 영구 귀국해 ‘5.18 기념재단’의 창립을 주도하고 ‘민족미래연구소’ 설립, ‘들불열사기념사업회’ 결성 등 활동을 이어가다 지병(持病)이 악화되어 2007년 향년 60세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헌을 기려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윤한봉 선생은 평생에 걸친 활동이력뿐 아니라 생전에 몸소 실천한 운동가로서의 면모로 인해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과 활동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선생은 오직 참다운 운동가로서 명예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영혼과 몸을 던져 묵묵히 활동하였으며 망명생활을 종료했을땐 자서전의 제목대로 ‘운동화와 똥가방’만 달랑 소지한채 귀국했다. 선생의 이러한 가르침은 손수 지은 민권센터 모토인 ‘바르게 살자’ ‘뿌리를 알자’, ‘더불어 살자’에 오롯이 담겨있어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자료 민권센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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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신의 아호(雅號)를 ‘분뇨(糞尿)’로 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누구나 코를 움켜쥐고 배척하지만 그것이 섞이고 삭혀질 때 이 세상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이 된다. 이를 기꺼이 자신의 별칭으로 삼은데서 합수 선생의 겸허한 인품이 느껴진다.
합수(合水)는 여러 갈래의 물이 한데 모여 흐른다는 의미도 있다. 남북이 갈린 한반도가 언젠가는 통일이 되고 겨레와 민족이 통합되기를 염원하는 선생의 뜻도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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