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뉴질랜드 아리아(New Zealand Aria)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동포 음악인이 있다. 한국에서 음악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결혼과 함께 뉴질랜드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음악인으로 다시 시작 한다는 것은 정말 큰 도전이었지만 작년 뉴질랜드 아리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큰 자신감을 찾았다. 뉴질랜드에서 음악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악가, 소프라노 장문영씨가 걸어온 음악 인생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서울에서 태어나 3남매 중 장녀로 어릴 적부터 관중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교내 동요 대회를 시작으로 서울시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전교를 대표하여 각종 동요 콩쿨을 경험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성당 성가대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대 교구 마니피캇 어린이 합창단(Magnificat children’s choir)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하며 지방 순회연주 및 크고 작은 해외연주를 하며 음악과 함께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합창단을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에 열중하면서 방송인을 꿈꾸며 어학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무게를 두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시점에서 본인의 적성과 미래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수능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성악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결정했다. 하지만 수능을 마치고 보니 일반전형의 4년제 음악 대학의 정시 전형이 모두 마감되었고, 가까스로 명지 전문대 성악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스스로 이탈리아 가곡을 준비하고 반주자가 없어 대학교 학과 사무실에 연락하여 당시 피아노과 학생과 이틀 전 반주를 맞춘 후 시험을 치루었다. 그렇게 정신 없게 치룬 시험이었지만 운 좋게 예비 14번으로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빠르게 일반 편입을 준비하여, 3학년이 되던 해에 국민대학교 성악과에 편입을 하였다. 신입생 오디션에서 그 당시 주임교수에게 발탁되어 클래스 제자가 되었고, 그 후 빠르게 성장하여 졸업생 중 여자1등으로 졸업하였다.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음악인으로 도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마친 후 과천시립여성 합창단 소프라노 단원으로 활동 하며, 국내의 음악교육 신문사 콩쿠르, 한음 음악 콩쿠르, 성 음악 콩쿠르 그리고 오사카 국제 콩쿨에서 입상하였다. 또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대학오페라 축제에서 주역인 라우레타 역으로 오페라 쟌니스키키를 공연하였고, 포레의 레퀴엠, 모짜르트의 미사곡 등 많은 연주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결혼 후 음악활동은 잠시 중단되었고 출산과 함께 육아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에도 음악에 대한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차근히 준비하여 작년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뉴질랜드 아리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음악활동을 다시 시작 하였다.
교민 사회를 위해 2018 신년음악회 참가
오클랜드 신포니에타에서 주최한 음악회로 뉴질랜드 아리아 콩쿨의 우승자인 JAVIS, 그리고 한국의 소프라노 김민지, 뉴질랜드 신예 성악가 소프라노 Christina McDonald, 말레이시안 테너 Peter Chung과 중국합창단 MMA와 함께 한 음악회로 타카푸나 Tindall Auditorium에서 열렸다. 오페라 아리아와뮤지컬 그리고 귀에 익숙하고 무겁지 않은 현대 곡을 연주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음악회였다. 신년음악회의 특징에 맞게 새해를 알리며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본인 음색에 어울리는 곡을 선정하려고 노력하였다.
음악을 알려준 부모님에게 감사
아버지가 클래식을 많이 좋아해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당히 많은 음악을 듣고 자랐다. 한국 집에는 현재도 아버지가 아끼며 수집하신 클래식 LP들이 수 백장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하이든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 바흐 등 기상시간과 특별한 순간, 혹은 대청소의 날에는 항상 정해 둔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무작위로 곡을 선정하여 곡 이름과 작곡가를 맞추면 용돈을 주었던 추억들이 생생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클래식을 많이 접하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왠지 긴장 되었다. 5살이 되던 해에 연두색 전자피아노로 티비에 나오는 음악을 똑같이 연주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신기해 했지만 특별한 재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가족들 모두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기에, 특별하기 보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동시에 피아노를 시작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성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 하면서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시작 하였다.
대학원 이후, 전문 음악인으로 결정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방송인을 꿈꾸며 나름 준비를 많이 했었다. 음악은 특별한 재능 보다는 생활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차츰 연주자의 길로 들어섰고, 내가 연주를 할 때 긴장을 안하고 오히려 즐긴다는 것을 꽤 늦게 알게 되었다. 때문에 전문적인 음악인으로의 결정을 대학원 이후에 하였고, 그때의 상황은 항상 음악회와 연주회가 즐비했고, 주위에 유학하는 친구,선배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계셨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뉴질랜드 아리아 최종무대, 가장 기억 남는 순간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는 최근에 뉴질랜드 아리아 최종 무대 그리고 대학원 리사이틀 무대로 기억난다. 작년 뉴질랜드 아리아 대회는 오랜 기간동안 성악을 쉬면서 음악을 다시 시작한 무대로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대회였다. 이민 후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상황과 주부가 되어 다시 도전한다는 내 모습에 스스로 용기를 얻었고, 옆에서 늘 지지해주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이 함께해서 더욱 더 행복한 연주였다. 또 하나의 연주는 한국에서 대학원 리사이틀 무대였다. 1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온전히 본인의 음악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는 음악이 성숙할 수 없고, 나아가 발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공부하는 모든 후배 분들, 특히 성악을 전공하는 많은 성악인들에게 감히 한마디 한다면 미학, 철학에 대하여 음악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권장한다. 테크닉적으로 연주 기술만 연마하지 말고 가슴이 따뜻하고 머리는 차가운 음악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인 역시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현재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 있다. 모든 것을 음악과 함께 모든 것을 균형 있게 행복한 음악생활을 해 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꿈을 이루는데 불필요한 핑계가 되지 않게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부하며, 늘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노래로 진실한 마음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악가 되고 싶다. 또한 새로운 국제 음악대회를 위해 다시 한번의 도전을 준비 하고 있다. 교민들에 많은 응원을 부탁 드린다.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