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희귀자료 130년만의 환수
알렌 후손 황실문화재단에 100여점 기증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시리즈>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명성황후 국장 후 찍은 고종황제의 어진 <한국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13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뜻깊은 만남이었다. 2017년 11월 16일 오하이오 톨레도의 한 가정집. 중년의 미국인부부 등 가족들과 일단의 한국인들이 마주 했다.
호레이스 알렌(1858-1932). 격동의 한국 근세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오하이오 델라웨어 출신인 그는 1884년 한국 최초의 서양선교사이자 의사로 들어왔다. 그는 갑신정변(甲申政變)에서 중상을 입은 당대의 권력자 민영익을 치료해준 덕분에 대한제국 황실의 주치의가 되었고 고종의 측근으로 구한말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날 톨레도 가정집에 모인 미국인들은 알렌의 5대손 등 후손들이었고 한국인 일행은 고종의 증손인 이원 황사손(57 대한황실문화재단 총재)을 비롯, 한국문화유산회복재단의 이상근 이사장, 미주한국불교문화원 김정광 원장, 김영관 대한황실문화원 문화재환수위 연구위원 등이었다.
최근 국회 재단법인으로 등록된 한국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미국과 독일, 일본, 중국 등에 지부를 두고 해외 유출 문화재와 유물을 조사하고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비영리 법인이다.
알렌의 후손들은 이날 소중히 간직했던 고종황제의 흉배와 명성황후의 은접시 하사품 등 많은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공개된 고종의 상복차림 어진(御眞)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문화재였다.
김영관 연구위원은 “어진 속의 고종은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이었고 향후 주도하게 될 대한제국 선포의 포부와 국가개혁의 열망의지가 또렷이 목격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30여년전 열강의 틈바구니에 있던 비운의 대한제국 황제와 주치의이자 고문 역할을 한 미국인의 후손들은 이렇게 뜻깊은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이원 황사손 등은 알렌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 한국 환수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이원 황사손
그는 “역사적인 사료 가치가 매우 높은 알렌박사의 편지들이나 기록 자료들을 대한황실이 기증을 받는다면 먼 한국 땅으로 가져오는 것 보다는 곧 개관되는 워싱턴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에 ‘알렌컬렉션 역사관’을 설치하여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계 홍보 그리고 미국현지 동포자녀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김정광 미주한국불교문화원장과 이해경 여사
이원 황사손과 이상근 이사장, 김정광 원장 등은 방문 직후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알려진 이해경 여사와 함께 ‘대한제국 그리고 잃어버린 황실문화재’라는 제하의 세미나를 열었고 뉴욕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에 소장된 ‘알렌 컬렉션’과 관련된 기록물들을 열람(閱覽)하기도 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의 기획취재물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를 찾아서'가 시작된 8월 중순 낭보가 전해졌다. 알렌 후손 가족이 알렌 컬렉션의 문화재급 자료들에 대한 기증의사를 비추며 만나자는 전갈이 온 것이다. 이상근 이사장과 김정광 원장은 오하이오의 알렌 후손 자택을 서둘러 찾아갔다.
지난해 1차 방문이후 한국문화유산회복재단은 김정광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서울시의 예산 지원 등을 받아 '대한황실문화원 국외소재문화실태조사단' 이름으로 전문 감정사들을 대동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 근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알렌의 편지와 일기장, 사진, 편지 등 100여점의 문화재급 가치가 확인되었고 대한황실문화원에 기증 받기로 합의했다. 기증품 중에는 고종황제의 어진과 명성황후가 알렌의 부인에게 선물했던 상아로 부채살을 만든 '화조도편선' 등 희귀품 등도 포함돼 있다.
이상근 이사장은 “이번 반환품 중 특히 고종황제가 촬영된 사진 등은 일본 왕실박물관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대단히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해 관심을 끌었다. 김정광 원장도 “고종황제의 주치의이자 외교관, 세브란스병원의 오늘을 있게 한 의료선교사 알렌의 귀중한 자료들이 130년여만에 환수(還收) 할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반 알렌 후손의 문화재급 자료 기증은 지금까지의 환수와는 다른 경로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 종전엔 미국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된 유물이나 경매 등에 나온 문화재 중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증거를 힘들게 확보하고 오랜 기간 지난한 협상과정을 통해 반환되거나 돈을 주고 되사는 방식으로 환수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알렌 후손의 문화재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무관한 개인 소장품으로 있어 전혀 그 존재가 파악되지 않은 유물들이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124개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약 4만4000여 점의 한국 문화재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아직 미공개로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과 개인 소장품 등을 합할 경우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상근 이사장은 “맥아더 장군이 갖고 들어온 한국 미술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맥아더재단 콜렉션 등 그 동안 전혀 공개되지 않거나 개인이 갖고 있는 것들이 아직 상당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근 이사장
이상근 이사장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가치에 대해 “일본에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1조원을 줘도 안판다고 말한다. 우리 성화, 종교 그림만해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 고려불화는 고려청자 나전칠기와 함께 고려 3대 유산인데 전 세계에 잇는 130점 중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약탈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화재 환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최근들어 돌아오는 문화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환수된 문화재는 2012년이후 23건 125점으로 집계됐다.
숨어 있는 문화재 환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미주동포들을 활용한 네트워킹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국내 주요 옥션의 경매 자료들을 입수, 분석하고 감정 및 매수절차의 노력과 순회임대전시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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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후손들과 함께 한 이원 황사손과 김정광 미주한국불교문화원장 등 관계자들
<꼬리뉴스>
호레이스 알렌 누구인가
호레이스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오하이오 델라웨어 출신으로 26세였던 1884년 9월 의료선교사 겸 공사로 조선에 부임했다.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그는 당시 주한미국대사 루시어스 푸트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조선 땅에서 선교사 신분을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 '미국공사관부 무급의사(Physician to the Legation with No pay)'의 신분으로 입국하게 됐다.
그해 겨울 갑신정변에서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해 목숨을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왕실 의사 겸 고종황제의 정치 고문이 되었다. 안련(安連)이라는 한국 이름도 갖게 된 그는 연세대의 일부 전신인 광혜원(제중원)을 처음 운영하는 등 현대 외과 의학을 조선에 도입한 주인공이다. 1905년 6월 47세 때 한국을 떠나 오하이오 톨레도에 살다가 1932년 12월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로비스트 활동에 더 치중하는 면모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왕실의 고문이자 외교관, 사업가로서 운산 금광 채굴권을 비롯, 경인선 철도 부설권, 서울 시내 전등·전차 부설권 등 각종 이권이 그를 통해 미국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1887년 참찬관에 임명되어 주미 전권 공사 박정양의 고문으로 미국에 가서 청나라의 간섭을 규명하고 독립국 사신의 체면을 유지하게 하는 등 독립국으로서의 조선의 처지를 국무성에 밝혔다. 1890년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되어 외교 활동을 했고, 총영사·대리 공사 등을 지냈다.
1892년부터 ‘코리안 레포지토리’를 간행하고, 1900년 영국 왕립 아시아 협회 조선 지부를 결성하여 회보를 발행하는 등 문화 발전에 공로를 세웠다. 1902년부터 ‘한국 위보’를 간행했다. 1904년 고종으로부터 훈 1등과 태극 대수장을 받았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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