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제왕의 투구는 찾았지만..
美박물관 수장고에 잠든 문화재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시리즈>
Newsroh=민지영기자 newsrohny@gmail.com
2013년 2월 12일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 수장고(收藏庫) 옆에 마련된 연구실에선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제왕의 투구 두 점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투구들은 양쪽 측면에 날개를 부착했던 걸개가 있고 5개의 용의 발톱, 이마가리개가 용이 새겨진 백옥으로 제작됐으며, 투구 머리 끝 장식이 백옥과 칠보로 장식된 화염문 형태로 제왕의 4대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희대의 보물(寶物)로 평가받았다.
투구만이 아니었다. 제왕의 갑옷도 처음 공개됐다. 양 어깨에 용모양의 견철(肩鐵)이 달린 용문두정갑옷으로 용이 3마디로 연결돼 왕권을 상징하는 의장용 갑옷으로 확인됐다. 특히 갑옷의 원단이 당시엔 흔치않은 벨벳이었고 안감은 비단으로 돼 있었다.
투구와 갑옷이 처음 세상에 공개된 것은 문화재환수전문가 혜문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의 끈질긴 추적과 김정광 미주한국불교문화원장 등 미주한인불자들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당시 투구 등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브루클린뮤지엄 소장 한국문화재’ 도록에 있는 용봉문두정투구(龍鳳紋豆釘甲) 2점과 용문두정갑옷(龍鳳紋豆釘胄)과는 다른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투구의 머리 장식은 이날 현장에서 발견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투구를 꺼내는 과정에서 구석 한켠에 머리장식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제왕의 투구를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어서 박물관측도 머리장식의 존재여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머리장식은 원형의 부조위에 옥을 감싸올린 형태로 정교함의 극치(極致)를 이룬 것이었다.
제왕의 갑옷은 안팎으로 황동광의 두정(頭釘)을 촘촘히 박았고 목과 등뒤로 택사(澤瀉)잎이 둥글게 장식됐다. 또 앞이 여며지지 않게 맞닿으며 옆트임과 뒤트임을 주는 형태였다.
혜문스님은 “이 갑옷은 이전에 공개된 용문 두정갑옷과 동일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제작시기는 150년을 넘지 않아 보인다. 고종이 착용한 물건으로 고증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발견된 투구와 갑옷은 제왕의 상징 문양과 장식을 완벽하게 갖춘 현존하는 유일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도 조선시대 제왕의 투구와 갑옷이 소장된 것으로 파악됐으나 박물관측이 공개를 거부해 지금까지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엔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이봉상 원수 투구’가 있는데 이마가리개에 원수(元帥)란 직책이 조각되고, 용 발톱도 4개로 제왕의 투구보다 하나가 적다.
같은해 8월 9일 워싱턴의 대표적인 박물관인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도 의미있는 발견이 있었다. '코리아 아트 소사이어티(KAS)'의 로버트 털리 회장은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NMNH) 수장고의 일본중국 무기고에서 조선 도(칼) 2자루를 발견했다.
<코리아 아트 소사이어티 제공>
이중 중국 무기고에 보관중인 짧은 도(刀)는 1908년 2월19일 미육군의 어헌 대위(Capt. Ahern)이 기부한 '중국 장군도(CHI GENERAL)'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이 칼들은 1941년 5월23일 매리 E. 맥스웰이 기증한 '일본 장군도(Japanese General)'로 분류돼 있었다.
한국 경인 미술관의 조선도검 전문가 이석재 관장은 뉴욕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 자루 모두 18세기 조선 후기의 우리 문화재라고 단언했다. 첫 번째 도는 전쟁터에서 실제 사용된 전투용 칼인 '흑칠황동장소환도'로 감별됐다. ▲ 검삼병(칼날이 손잡이 길이의 3배) 형태 ▲ 칼집의 저피(돼지가죽을 무두질한 것) ▲ 위 아래의 황동 장식 ▲ 곡률 없는 각진 칼날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도는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 고관들에게 하사 된 의전용 '주칠은장옥구보도'로 규격, 외형, 장식 모든 면에서 조선의 군기감에서 직접 제작한 의전용 관제보도의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옥으로 만든 코등이(칼자루와 칼날 사이를 구분하는 둥근 테)는 조선도검의 특징 중 하나다.
조선의 도검들이 중국과 일본의 칼로 막연히 분류되어 수장고에서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것이 미국에 있는 한국유물전문가의 예리한 눈매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털리 회장은 2008년 뉴욕에서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코리아 아트 소사이어티(KAS)'를 설립하고 매년 2~3차례 회원들과 함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을 탐방하며 한국 유물들을 돌아보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국보급 보물들이 좁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스미소니안 박물관만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에 정말 많은 한국 유물들이 있지만 제대로 공개가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2012년 7월에 해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조사 및 연구와 환수를 목적으로 산하 특수법인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하였다. 2014년 6월 현재 파악된 우리 문화재는 20개국 579개 기관 및 개인 소장품을 다 합쳐 15만6,203점이다.
그러나 이상의 사례에서 보듯 박물관측의 미공개품들과 오분류한 것들이 적지 않고, 또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소장한 유물들은 아예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문화재 환수에 앞서 필요한 것은 잠자고 있는 우리 유물들이 공개되도록 하는 것이다.
털리 회장은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 조선 검을 확인한 후 수장고에 있는 한국의 도검 등 무기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박물관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성사되지는 못했다.
브루클린 박물관 역시 조선제왕의 투구와 갑옷을 5년전 소수의 인사들에게만 특별열람 한 이후 다시 수장고에 들어가 버렸다. 브루클린 박물관은 1974년 미국 내 메이저 뮤지엄 사상 최초로 한국실을 설치했고 주요 한국 유물로는 14세기 아미타삼존도 장승업의 ‘거위와 갈대 그림’과 조선왕실의 활옷 등 660여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봄 전시실을 확대하는 행사도 가졌지만 소장한 유물의 10분의1도 전시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투구와 갑옷은 1920년에서 1930년 박물관이 입수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불법으로 반출됐다는 증거가 있지 않는 한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결국 방법은 박물관측을 설득하는 일이다. 민간이 나서 국내에는 한 점도 없는 조선제왕의 투구를 어렵게 찾아냈다면 최소한 정부는 박물관이 전시하도록 유도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증을 권유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게 아닐까.
끝으로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소개한다. 아이슬란드는 무려 600년에 걸쳐 덴마크의 통치를 받다가 1944년에 독립했다. 1971년에 고서적 ‘플라테이야르북’과 ‘레기우스 필사본’을 덴마크로부터 돌려받았는데 이 책들은 17세기 아이슬란드 역사가 아르니 마그누센이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에 기증한 것이었다.
피지배 받은 시절이었지만 외형적으로 기증을 했기 때문에 법적 환수는 불가능했다. 아이슬란드는 윤리적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협상에 들어갔고 20년 만에 필사본을 반환받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친김에 추가적인 협상과 설득으로 1,000여점을 환수한 것이다. 길은 있다.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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