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난 태극기를 들었을까. 촛불을 들었을까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지난 주말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0도가 될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어 나는 오후에 집뜰에 나가 나무들을 관리했다. 과연 햇빛은 강렬했다.

나는 과실나무 밑에 심어 놓은 3포기의 고추나무 밑 가지를 쳐주고 잡풀을 제거해 주었다. 세 포기만 잘 키우면 두 늙은이 풋고추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눈을 들어 보니 감나무와 대추나무에도 어느덧 잎이 솟았고 아보카도 나무에는 수많은 콩알 만한 사이즈의 열매가 맺혔다. 그동안 단내 나는 꽃향기를 선사했던 오렌지나무에는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 것이 보였다. 나는 이런 땅에서 산 지가 내 80평생에서 반이 훌쩍 넘었다.

나무에서 난 과실들은 동네사람들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으로 15년 넘게 산 백인 부부에게는 우리집 과일을 돌리지 않는다. 할멈은 자신이 직장생활 할 때 너무나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웃집 부부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할멈인지라 새로 들어선 '잘난' 트럼프 정부에도 관심이 가는가 보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새 정부의 복지 정책에는 사람들이 불만이 없느냐고 묻더니 미국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보조해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하고 자문한다.

나는 할멈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 이민와서 초기에 최저임금으로 일곱식구가 아둥바둥 살면서 너무나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려웠으면 정부의 보조나 더 나아가 아이들 무료 점심까지 신청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름 자존심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멈의 고생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미국이 그럴 만한 나라인 탓이다. 우리가 땀흘려 노력한 만큼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그런 나라 말이다.

뒷뜰에 심은 과실수들을 가꾸고 열매 맺히는 것을 평화롭게 바랄 볼 수 있는 땅에서 살다보니 본국의 상황이 절로 떠오른다. 이곳에서 땀의 열매를 흡족하게 먹고 있는 나에게는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 따위가 딴 세상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이 말하기 좋아 하는 '잇츠 낫 유어 비즈니스'(너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이 어떤 땅인가. "젊은 시절에 정비공으로 태평양을 건너왔지만 내 그림자는 아직도 대한민국 땅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결코 떼어낼 수도 자를 수도 없는 나에게 있어 대한민국은 나의 그림자입니다" 라고 나의 자서전 격인 '기름때 묻은 원숭이의 미국 이야기' 에 적은 것 처럼 한국은 나의 고국이다. 지금도 할멈은 미국 텔레비전에서 한국에 관한 뉴스만 나오면 '빨리 오라'고 고함을 친다.

내가 고국을 떠난 것은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는 도저히 살지 못했던 유별난 결벽증탓이었다. 내 평생에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 먹은 것은 삶은 감자 두개 달걀 한개이다.

전라도 어느 산골에서 최일선에 있는 자식을 면회간다는 어느 노부부는 내가 군대생활하면서 야간대학에 간다고 하자, 기차안에서 내 손을 잡고 자기 자식 까막눈만 면하고 제대시켜 달라고 부탁하며 감자와 달걀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들은 군인이면 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줄 알고 그같은 청탁(?)을 한 것이었다.

어쨋든 고국을 떠나 이곳에 있지만 만약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나는 태극기를 들었을까, 촛불을 들었을까. 아마도 나는 태극기도 들고 촛불도 들지 않았을까. 나도 살면서 분노가 오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평생 데모 한 번 못해보고 저 세상으로 갈 것 같다.

  • |
  1. song.jpg (File Size:32.0KB/Download:26)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3590 미국 뉴저지 한국계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 도전 성공하나 file 코리아위클리.. 24.03.31.
3589 미국 국회의원 선거 재외투표, '29일~31일' 올랜도 우성식품서 file 코리아위클리.. 24.03.23.
3588 미국 "은혜는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하는 것" file 코리아위클리.. 24.03.05.
3587 미국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투표소, 미 동남부 4곳 확정 코리아위클리.. 24.03.05.
3586 미국 월남전 참전 유공자회 플로리다지회, 신년 상견례 file 코리아위클리.. 24.03.05.
3585 미국 애틀랜타 한인회, 제105주년 삼일절 기념식 거행 file 뉴스앤포스트 24.03.04.
3584 미국 어번대 코리아센터-세종학당 봄맞이 행사 줄줄이 개최 file 뉴스앤포스트 24.03.03.
3583 미국 올랜도한인회 홍금남 회장 취임 “합심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 file 코리아위클리.. 24.01.27.
3582 미국 올랜도 한인회장에 한의사 홍금남씨 단독 입후보 file 코리아위클리.. 24.01.02.
3581 미국 북부플로리다한인회, 회장 이취임식 및 송년잔치 열어 file 코리아위클리.. 23.12.26.
3580 미국 성탄절의 참된 의미에 집중한 올랜도 성탄연합예배 file 코리아위클리.. 23.12.26.
3579 캐나다 캐나다 10대, ' 유대인 겨냥 테러 계획' 혐의 체포 라이프프라자 23.12.19.
3578 미국 올랜도한국축제, 플로리다 한국문화 전파 기지로 자리잡았다 file 코리아위클리.. 23.11.22.
3577 미국 오래 기다린 탬파 롯데플라자 마켓, 드디어 테이프 끊었다 file 코리아위클리.. 23.11.22.
3576 미국 장익군 회장 "어려워진 한인회 입지, 이젠 실질적인 사업에 역점" file 코리아위클리.. 23.11.22.
3575 미국 플로리다연합체육대회, 데이토나팀 종합우승 file 코리아위클리.. 23.11.22.
3574 캐나다 2023년 월드옥타 몬트리올지회 “소규모 지회활성화워크샵” 성료 file Hancatimes 23.10.11.
3573 캐나다 2023년 월드옥타 몬트리올지회 소규모지회활성화 회의 초청인사 인터뷰(4) - 연아마틴 캐나다 상원의원 file Hancatimes 23.10.11.
3572 캐나다 2023년 월드옥타 몬트리올지회 소규모지회활성화 회의 초청인사 인터뷰(3) - 임정숙 월드옥타 통상담당 부회장 file Hancatimes 23.10.11.
3571 캐나다 2023년 월드옥타 몬트리올지회 소규모지회활성화 회의 초청인사 인터뷰(2) - 박종범 오스트리아 비엔나지회 명예회장 file Hancatimes 2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