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빠지고 “강의 노트 보내달라”…추천서 불이익 받을 수도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요즘 미국의 대학가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이메일 ‘공격’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메일을 통해 성적에 대한 불만을 쏟아 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에 빠지고 강의 노트를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는 주말파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월요일 수업에 늦었다고 변명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학생도 있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의 수학교수는 신입생으로부터 바인더나 노트 등을 어디에서 구입해야 하는지를 문의하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이메일로 인해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때로는 이 같은 경향이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유지되었던 바람직한 거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예전에는 교수들이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단지 전문지식을 ‘소비자’ 학생에게 판매하는 서비스 제공자로 여겨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메일로 교수를 24시간 내내 괴롭히고 있으며 때로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무례한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조지타운 대학의 한 신학교수는 “지금 당장 알고 싶으니 바로 답장바람”이라는 이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교수 평가에 발목잡힌 신임교수들
그러나 신임교수들은 학생들의 이메일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신임교수가 종신교수직을 얻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강의평가 항목 중 ‘강사에 대한 접근성’이라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학생들은 웹사이트에 강의평가를 올리거나 블로그에 교수에 대한 인상을 올리기도 한다. 작년 가을, 시라큐스 대학의 한 학생이 웹사이트를 개설한 후 특정강사에 대한 비방을 하다가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일도 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이메일 피드백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교수들도 있다. 암허스트 칼리지의 한 교수는 “강의나 토론 후 학생들이 이메일로 질문한 내용을 보면 "내가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못해서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이메일이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학습효과를 높여준다고 말한다. 한 학생은 “교수와의 대화 통로가 연구실을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면 '과연 이 질문이 교수를 찾아갈 만큼 의미 있는 질문인가'를 자문하며 망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MIT의 한 경제학 교수는 한 학생으로부터 자신이 게이임을 최근 알게되어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후, 카운셀러와 상담하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그는 “이메일이 없었더라면 이와 같은 도움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모리 대학의 한 법학교수는 학생들의 이메일이 너무 심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학생으로부터 “당신은 진도가 너무 빠르고 숙제가 너무 많다. 강의가 끝나기 직전에 강의내용을 요약해 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가끔씩 이메일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당신은 바보같은 학생에게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지 말고 우리처럼 똑똑한 학생들에게 더욱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같이 무분별한 이메일이 극성을 부리자 교수들 가운데는 언제까지 이메일에 대해 답장해 줄 수 있는지, 어떤 내용의 이메일에 답장해 주는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든 후 학생들에게 미리 알려주거나 ‘예의’를 가르쳐 주는 측도 있다.
학생들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은 그들이 보낸 이메일로 인해 자질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교수에게 심어줄 수 있으며 그 결과 직장을 구할 때 좋지 않은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