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시계제로의 잿빛으로 물든 밴쿠버국제공항 대한항공 탑승대 앞 모습(표영태 기자)
중복되는 서류와 질문을 거쳐야 하는 입국절차
국가공인서류 무시, 입국자 잠재적 사기꾼으로
전문성 떨어진 군인들 차출, 책임자 없이 방관
4개의 서류와 어느 기관인지도 알 수 없는 심문
(사)세계한인언론인협회(이하 협회) 주최로 매년 한국에서 봄 가을로 재외동포 언론인 국제심포지엄과 재외동포기자대회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COVID-19)로 인해 올해 무산되었다. 그러나 올해 협회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공동으로 2020년 재외동포언론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 방문기획 취재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여기에 밴쿠버 중앙일보가 선정되어 본 기자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 취재에 초대를 받은 언론사는 전 세계의 한인언론사 중 5개언론사에 불과했지만,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정부와 각 정당의 재외동포정책, 재외동포 언론의 역할과 모국 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코로나19 관련 재외동포 문제 등의 중요한 사안들을 다루게 된다.
이번 행사가 750만 재외동포를 대표한 재외 한인언론사의 매년 있었던 대규모 행사와 일맥상통하는 기획취재 일정이지만, 자가격리 면제 대상인 중요한 사업, 학술·공익적 목적 등은 국내기업·단체 등이 신청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기관에 자가격리면제 신청을 냈지만 결국은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초청을 받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바로 한국 방문을 위해 캐나다 시민권자로 비자를 받는 일이다. 정부의 예산이 들어간 사업이기에 비자를 받는 일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자가격리 등에 대한 한국 관계 기관의 결정이 빨리 나오지 않아 비자 신청을 이번 기획취재 일정에 빠듯하게 남겨두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단기 비자(C-3), 취재비자(C-1)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사증발급신청서 1부(3.5cm x 4.5cm 사진 1매 포함),. 캐나다 여권 원본 및 사본, 캐나다 시민권 증서 원본 및 사본, 국적상실 증빙서류, 코로나19 관련 병원 진단서 (원본), 건강상태확인서, 그리고 격리동의서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입국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소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단기비자를 받더라도 단기비자 소지 외국 국적자에 대해 시설격리가 기본 원칙이지만 주어진 예산과 일정으로 인해 자가격리를 하면서 비대면으로 기획 취재에 관한 논의 등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 내 직계존비속이나 3촌 이내 친인척이 있는 경우, 시설격리 대신 자가격리를 할 수 있어, 이에 필요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아 출국 준비를 맞추었다.
15일 한국 도착을 위해 14일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밴쿠버 국제공항의 하늘은 미국 워싱턴주와 오리곤주의 산불로 일주일 넘게 잿빛이 아닌 진짜 미세 재가루로 뿌옇게 뒤덮혀 있어 안개가 심한 날 하늘처럼 가시거리가 좋지 못했다.
공항은 세계 모든 나라들이 불필요한 입국을 금지하면서 국제선 항공기 이용객이 거의 없어 한산해 보였다. 예전에 길게 줄을 서서 장시간 기다려야 했던 탑승 수속대도 보안검사대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비행편도 많이 줄어 적막해 보이는 탑승구 대기장에는 탑승객이 별로 없어 모두 여유롭게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예상보다 늦게 탑승 수속이 시작됐지만, 더 빠르게 모두 탑승을 할 수 있었다. 비행기 탑승률도 너무 낮아 기내에서 거의 모든 승객들은 창가의 2인석이나 중간 4인석을 혼자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항공사들이 안전거리 유지를 위해 좌석 배정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한 열마다 한 명씩 앉기에도 너무나 적은 탑승객 수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은 바로 11시간 가까운 운행시간 동안 식사나 음료수를 마실 때를 제외하면 항상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공항에 들어서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기에 실제 시간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마침내 기내에서 승무원들이 한국 입국을 위해 각종 서류를 나누어주는데 외국 국적자는 4개의 종이를 받아야 했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종이가 특히 중복되는 내용들을 적어야 하는 양식이 입국절차를 밟을 때 얼마나 불필요한 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 잘 몰랐다. 기존에 작성하던 세관신고서 이외에 '특별검역 신고서', '건강상태 질문지' 등을 추가로 더 적어야 했다.
항상 내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에 입국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입국 거부나 시설 등에 갇히리라는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번 입국 절차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법무부의 출입국 관리 직원이나, 세관원만 만났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내리자 마자 군부대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입국자 모두를 코로나19 확진자나 격리조치를 무시하는 범법자 취급을 하듯 의심의 눈초리로 무뚝뚝하게 서류 확인과 한국 내 연락처 격리 주소지를 묻는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4장의 서류와 같이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질문을 전혀 어디 기관을 대표하는 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심문을 받아야 했다.
4번의 심문 내용은 모두 코로나19 증상이 있느냐, 한국 내 연락전화번호는 무엇이냐, 누가 한국 내 보호자이냐, 어디서 격리를 할 것이냐를 반복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항은 한국 내에서 시설격리가 아닌 자가격리를 받기 위해서는 직계존비속이나 배우자가 한국 내 거주하고 있다는 서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직계존비속이나 배우자와 전화로 확인을 해야 한다. 그 어디에도 문서화 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전문성이 결여된 군인 사병들을 지원 받아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까 기존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관련 서류 제출 절차를 무시하고 직접 존비속이나 배우자와 통화를 하는 방식을 지시하고 있다.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워진 이유에 대해 일선 담당자들은 한국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행정안전부 관할 기관인 중대본이 불신하고, 모든 입국자를 가족관계 증명서의 가족관계를 속이는 자들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직계존비속이 없는 경우 형제자매나 3촌 이내 친척이 직접 공항에 나와 각서에 서명을 해야한다. 코로나19로 오히려 격리를 유도하면서 결국 가까운 친인척이 나와 전염 위험에 노출되도록 조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밴쿠버 중앙일보 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