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열릴 TED콘퍼런스를 하루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캐나다 밴쿠버컨벤션센터(VCEC). 이곳의 상징인 대형 지구 모형 옆에 `TED` 로고가 새겨져있다. [사진 TED]
캐나다 밴쿠버 콜하버의 밴쿠버컨벤션센터(VCEC) 서관. 밴쿠버의 랜드마크 중 한 곳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 때 국제방송센터가 설치됐던 곳이다. 이곳의 상징은 출입구 천장에 매달려 있는 5.5m 크기의 대형 지구 모형이다. 워낙 커서 건물 밖에서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14일(현지 시간) 오후 찾아간 VCEC의 모습은 달랐다. 전면 유리창을 장식한 커다란 붉은 원이 지구 모형을 가리고 있었다. 원안에는 흰 글씨로 딱 세자가 쓰여 있었다. ‘TED’.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세계인의 지식나눔 축제’ TED콘퍼런스(이하 TED)의 개막을 알리는 장식이었다.
TED는 기술(Technology)ㆍ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ㆍ디자인(Design)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이름 그대로 과학기술과 예술, 인물학을 넘나드는 명강연이 이어지는 행사다. 올해의 주제는 ‘꿈(Dream)’. 15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닷새간 총 70여 명이 무대에 오르고, 그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전 세계 58개국에서 1350명이 밴쿠버 컨벤션 센터에 모인다.
올해 TED 컨퍼런스의 주제는 ‘꿈(Dream)’이다. [사진 TED]
개막을 하루 앞두고 찾아가 본 행사장은 막마지 준비로 분주했다. 하루 일찍 찾아와 참가자 등록을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무대를 점검하는 스텝과 강연자들이 분주히 오갔다. 행사장 계단은 올해 주제인 ‘꿈’을 가리키는 대형 영문 글자(DREAM)로 장식돼 있었고, “그동안 배운 것은 다 잊어라, 꿈을 꾸라(you must try to forget all you have learned, you must begin to dream)” 같은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중앙일보는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6년 연속 TED에 초청을 받았다. 개막을 앞두고 올해 TED의 면면을 소개한다.
2016 TED 컨퍼런스가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컨벤션센터(VCEC). [사진 TED]
◇ 올해 TED 이슈는 '문샷(moonshot)ㆍ공유ㆍ증강현실'
TED 강연은 아무리 긴 것도 18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18분의 마법’이라고 불린다. 18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마법처럼 강렬한 감동을 준다는 의미다.
올해 ‘18분의 마법’을 선보일 강연자 중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첫날(15일) 무대에 오르는 아스트로 텔러(46)다. 그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기업 정신인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 달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처럼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사고)’을 실천하는 비밀연구소 엑스(X)의 수장이다.
올해 TED 컨퍼런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강연자 아스트로 텔러. `문샷싱킹`을 실천하는 구글의 비밀연구소 엑스(X)의 소장이다. [사진=아스트로 텔러 홈페이지]
문샷 싱킹은 ‘달에 대해 알려면 천체 망원경 성능을 개선하기 보다 달에 직접 탐사선을 보내는 게 낫다’는 발상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혹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엉뚱한 꿈에 도전하는 혁신적 사고를 가리킨다. 구글은 이런 ‘문샷 싱킹’을 통해 10%의 개선보다 10배의 혁신에 도전하고 있고, 그 최전선에 있는 연구조직이 바로 ‘엑스’다. 이름 자체가 그리스 숫자로 ‘10(X)’을 의미한다.
실제로 구글이 그간 ‘본업’인 인터넷 검색 관련 서비스 외에 세상에 선보인 혁식적인 프로젝트 전부가 다 엑스에서 나왔다. 운전자 없이 혼자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스마트안경 ‘구글 글라스’, 당뇨환자의 눈물을 모아 자동으로 혈당 검사를 하는 ‘구글 콘택트 렌즈’, 아프리카에 풍선을 띄워 무료로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룬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엑스를 이끌고 있는 텔러는 명함에 자신의 직함을 ‘문샷 대장(captain of moonshot)’이라고 새기고 다닌다. 구글의 ‘꿈의 공장(moonshot factory)’ 공장장인 그가 TED 무대에서 또 어떤 새로운 꿈을 공개할지 주목된다.
15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막하는 TED콘퍼런스를 앞두고 행사장에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 TED]
텔러가 ‘미래의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16일 강연자 두 사람은 이미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들이다. 숙소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공동창업자 조 게비아,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이 그들이다.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말 255억 달러(약 30조 6000억 원)로 평가됐다. 세계 최대 호텔체인 힐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다. 우버는 한 술 더 뜬다. 같은 기간 기업가치 680억 달러(약 81조6000억 원)를 기록해, 자동차업계의 ’공룡‘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혼다를 앞질렀다. 각각 호텔 방 한 칸, 자동차 한 대 없이 이룬 실적이다. 수많은 개인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집과 차를 공유할 수 있도록 열어해 주었을 뿐이다. 게비아와 칼라닉은 이런 ‘꿈의 기업’을 일군 이야기, 공유경제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 TED 2016 주요 강연자 >
◇15일(현지시간)
아스트로 텔러 = 자율 주행차 등 개발하는 구글 연구소 X 책임자
◇16일
아담 새비지=디스커버리 채널 '호기실해결(Mythbuster)' 진행자
조 게비아=숙소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차량공유서비스 '우버' 창업자
사라 파캑=2016 TED상 수상자, 우주 고고학자
◇17일
리누스 토발즈=공개OS 프로그램 '리눅스' 개발자
메론 그리베츠=증강현실 기업 '메타' CEO
앤드류 윤=아프리카 사회사업가(한국계)
앨 고어=기후변화 운동가, 전 미국 부통령
◇18일
알렉스 키프만=마이크로소프트(MS) '홀로렌즈' 개발자
◇19일
체링 톱게=부탄 총리
TED는 혁신적인 ‘꿈의 기술’이 첫 선을 보이는 무대로도 유명하다. 애플의 첫 매킨토시 컴퓨터, 소니의 콤팩트디스크(CD)가 과거 TED 무대를 통해 세상에 데뷔했다. 올해 TED에는 혁신적인 가상현실(VR)ㆍ증강현실(AR) 장비들이 대거 선 보일 예정이다.
보이드(Void)사는 5D 가상현실(VR)장비를 착용하고 고대 사원을 탐험하는 ‘가상현실 테마파크’ 게임, 메타(Meta)사는 증강현실(AR) 디스플레이와 동작인식 기술을 접목해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처럼 허공에 뜬 홀로그램을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AR안경을 TED 참석자에게 공개한다.
15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막하는 TED콘퍼런스를 앞두고 행사장에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 TED]
16일과 17일엔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메론 그리베츠, 마이크로소프트(MS)의 AR안경 홀로렌즈(HoloLens) 개발자인 알랙스 키프만의 강연도 예정돼 있다. MS가 올해 상반기 개발자용으로 시판할 예정인 홀로렌즈는 구글 글라스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AR기능을 가진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한국계 강연자도 무대에 선다. 17일 강연하는 앤드류 윤은 가난한 아프리카 농부들에게 농사 자금을 저리에 대출해 주고 농사 기술을 가르쳐 자활을 돕는 ‘원 에이커 펀드(One Acre Fund)’를 이끌고 있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교포 2세다. 명문 예일대를 우등(magna cum laude)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잘나가는’ 경영 컨설턴트였다. 하지만 학창시절 방문했던 아프리카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하고 2006년 아프리카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윤씨는 자선사업에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해 공짜 원조 대신 농부들이 시장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대출금 상환율 85%를 넘기며 ‘아프리카의 악몽’을 ‘희망의 꿈’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2016 TED 컨퍼런스의 주제는 `꿈(Dream)`이다. [사진 TED]
◇ 처음에는 단발성 행사였던 TED의 변신
TED는 1984년 정보통신(IT) 전문가인 리처드 솔 위먼과 방송 디자이너 해리 마크스가 단발성 행사로 처음 기획했다. 지금처럼 연례 행사가 된 건 90년부터다. 하지만 ‘오늘의 TED’가 탄생한 건 2001년 현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이 인수한 뒤부터다.
앤더슨은 영국 출신의 미디어 기업가로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TED를 인수한 뒤 소수 엘리트들의 사교모임이었던 TED를 전 세계인의 지식나눔 축제로 탈바꿈시켰다. “사람들의 태도와 삶,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의 힘을 믿는다”(TED 강령)며 ‘널리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모토로 삼았다.
물론 닷새 간 열리는 본 콘퍼런스를 구경하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다. 참가비가 8500달러(약 1022만 원)나 되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고 다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막 1년 전 시작되는 예매는 대개 몇 주 만에 다 마감된다.
대신 TED는 ‘8500달러짜리’ 강연 동영상을 시차를 두고 하나씩 홈페이지(TED.com)에 무료로 공개한다. 현재까지 올린 동영상만 2100개가 넘는다.
15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막하는 TED콘퍼런스를 앞두고 행사장에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 TED]
강연자는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같은 기업가는 물론, 정치(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ㆍ과학(인공지능(AI)의 아버지 마빈 민스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ㆍ연예(그룹 U2의 리드싱어 보노,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 등 각계 유명 인사가 총망라돼 있다. TED 측애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일 약 300만 명이 이 동영상을 본다. 역대 총 누적 시청횟수는 39억 회를 기록 중이다.
강연은 영어로 돼 있지만 TED는 2만3000여 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110개 이상 언어로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 자막 동영상도 2000개 가까이 된다. 이 때문에 일부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 중에는 TED 동영상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는 사람도 많다.
무료 동영상을 통해 TED 강연이 인기를 끌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TED식’ 강연 이벤트가 많이 생겼다. 이런 ‘아류’에 대해 TED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2014년 개최지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옮겼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5일 개막 세션을 미국과 캐나다, 유럽과 호주 극장에서 중계한다. 유료지만 기존 요금들보다는 싸고, 인터넷에 동영상에 공개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TED의 문턱을 낮추는 또 다른 시도인 셈이다.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4월에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3월까지 우기가 이어지는 밴쿠버 날씨에 맞춘 일정이다. 주제도 기존의 ‘거대 담론’ 대신 개인들의 자기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미래의 당신(The Future You)’을 주제로 ‘내게 영향을 준 기술 혁신’ ‘내가 알아야 할 의학적 발견’ 등에 대한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밴쿠버(캐나다)=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 2016 TED 강연자들의 '말말말'
"실패한 사람들에게 보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뻔한 아이디에만 매달릴 것이다. 그것은 시간 낭비고 조직의 정신을 해친다"
- 아스트로 텔러 (구글 X 책임자)
"실패는 항상 옵션이다"
- 아담 새비지 (디스커버리채널 '호기심해결(Mythbusters)' 진행자
"꿈을 꾼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노력이다"
- 숀다 라임스 (PD,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작가)
"아이디어는 '잠재적 에너지'다"
- 마에 제미슨(첫 흑인 여성 우주비행사)
"누가 '일반적인 것'을 정의하나? 누가 누가 거기에 맞는다고 결정하나?"
- 완다 디아즈 머시드 (천체물리학자, 시각장애인)
"내 역할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라파엘로 디 안드레아 (자율시스템 선구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
- 앤드류 윤(아프리카 사회사업가, 한국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