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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 참관기] 20대 대선 플로리다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만난 사람들
25일 오전 미주 지역 애틀랜타총영사관 올랜도재외투표소(우성식품 다목적실) 앞에서 한국 유학생 김재원(25)씨가 친구에게 투표 독려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씨는 함께 차를 몰고 오기로 한 친구들이 전화도 받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2시간 거리 투표소까지 혼자 왔다고 했다. 25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플로리다 지역 20대 대선 재외투표는 코로나 여파로 19대 대선 때보다 등록선거인이 줄기는 했지만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화씨 90도(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1-4시간 거리를 달려왔다. 겉으로는 순조롭고 평온했으나 속은 끓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대체 얼마나 박빙인가! 이번 선거는 초박빙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국 정치의 '쇼케이스'라 불리는 플로리다 주의 여론은 어떨지 궁금해 30여 명의 투표자를 무작위로 인터뷰했다. 양적 조사(quantitative research) 도구인 통계치로만 잡히는 '민심'은 이미 나와 있으니, 질적 조사(qualitative research) 방법 가운데 하나인 인터뷰를 통해 '바닥 민심'을 전하고자 한다. 질적 조사에서는 응답 내용(언어)뿐 아니라 응답자의 제스처, 말 더듬, 미소, 한숨, 찌푸림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nonverbal) 요소가 풀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었나' 또는 '후보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나'와 더불어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얻었나' 등을 동시에 물었다. 답변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회피성 응답은 제외했다. 인터뷰는 25일~27일 사흘 간 오전 오후 각각 두 시간씩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투표하고 나오는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니 25일 오전 8시 반 문을 열자마자 투표장을 찾은 올랜도 거주 최모(62)씨가 "5년 재임한 정권에 대해 심판하러왔다"라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분 쯤 지나 올랜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상준 대표(65)가 부인과 함께 왔다. 먼 발치에서부터 기자를 알아본 그는 투표장 앞에서 하소연 하듯 속사포 처럼,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 경제, 남북문제 등 너무 준비가 안 된 엉뚱한 후보가 나왔다.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 등 나라 망칠 듯하여 투표하러 왔다. 그렇게 인물이 없나?" 뒤를 이어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고르며 가방을 든 채 급히 투표장에 들어가는 남성을 발견했다. 금방 나온 그는 마이애미에서 여행 가이드를 한다는 양상근(61)씨였다. "오는 내내 중앙선관위 대선토론 들으면서 3시간 반을 안 쉬고 달려왔다. 초박빙 상황이라 꼭 투표하러 왔다. 막말하는 OOO후보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라는 큰 배를 이끌 역량이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10시께가 되면서 주로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거리의 대학교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이 밀려 들어왔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생기발랄했고 유쾌한 표정들이었다. 질문에도 흔쾌히 임했고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올랜도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에 다닌다는 이상인(19)씨는 "첫 투표라서 설ㅤㄹㅔㅆ다. 청렴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을 뽑으러 왔다"고 했고, 두 시간 거리 플로리다대학(UF) 유학생 차모(33)씨는 "선거초반에 결정했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후보를 택했다"라고 했다. 센트럴플로리다대학(UCF)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는 유학생 김한빛(30)씨는 "꼭 ‘이 사람이다’는 후보가 없었다. 정책을 보고 차악의 후보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엠브리 리들 항공학교 교관 이준세(27)씨는 “후보 자체 보다는 젊은이가 대표로 있는 당의 청년정책을 보고 뽑았다”라고 했고, 최왕(49)씨는 “정쟁으로 소모적인 양당제 없어져야 한다. 참신한 이미지의 새정당 인물을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유학생들과 달리 이민온지 오래된 동포들은 자유민주주의-친미 후보를 지지하는 층, 그리고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를 계승할 후보를 지지하는 층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일부 투표자들 가운데는 ‘참신한 제3의 후보’를 선호하는 측도 있었다. 이하 지지 계층에 따라 투표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특이한 점은, 기자가 ‘특정 지지후보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인터뷰 초입에 부탁했는데도 후보 이름을 굳이 밝히는 투표자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답변 속에 ‘이재명’은 드러났고, ‘윤석열’은 숨었다.
투표장에서 두 시간 거리의 플로리다대학(UF) 한인학생회장인 황보 승우(34)씨는 "인물보다는 당을 보고 투표했다. (국회의) 밸런스가 문제다. 정권교체와 변화를 원한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올랜도 거주 한모씨(44)는 “누가 돼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제에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했다.”라고 했다. KBS ‘정치합시다’와 네이버 메인뉴스를 주로 보았다는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FIU)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김모(30대 후반)씨와 김은영(20대 후반)씨도 경제정책을 보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를 뽑으러 왔다’고 실토한 투표자들 가운데는 성남이나 경기도에서 살다 이민온 분들의 실토가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인터뷰 중에 스스로 지지후보를 밝혔다. 버지니아에서 탬파로 아들(18)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민모(51)씨의 부인(44)은 “이민오기 전 성남에서 애들 셋 데리고 어렵게 살았는데, OOO시장 시절 혜택을 크게 입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민씨 부인은 “혜택을 크게 입었다”라는 말을 하며 옆에 장승처럼 서 있던 아들을 힐끗 올려봤다. 도시공학을 전공한다는 유학생 권모(40대 후반)씨는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개인적 역량을 봤다. 주택정책, 실질적 행정, 피부로 느낄 만한 정책 추진력을 보여줬다. 행정사무감사 당시 주의깊게 지켜보았는데 행정력이 뛰어났고 폭넓은 지식도 맘에 들었다"라고 구체적인 지지 이유를 밝혔다. 2020년 6월부터 마이애미 병원에서 내과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는 박모(30대 중반)씨는 "OOO후보가 의료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보았는데 급진적인 면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으나, 결국 인물과 살아온 것, 해온 것에 마음이 끌렸다”라고 말했다.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가치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한 교민들도 눈에 띄었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USF) 약학대학 연구원 김종월(57)씨와 부인(48)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 꽃 피워낼 사람, 검찰개혁, 언론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실히 다질 후보가 답이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날 오후 투표장을 찾은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FIU) 장호욱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후보 자질을 주로 고려했다. 현 문재인 정부를 이어갈 분을 쉽게 택했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한겨레, 경향 등을 주로 본다는 센트럴플로리다대학(UCF) 조형진 기계공학과 교수(55)는 긴 숨을 내쉬며 "1980년대 민주항쟁, 최근의 촛불혁명 등으로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엉뚱한 사람에 의해 무너질 지도 모른다"라면서 "경험, 미래 비전, 정책 수행능력 보고 뽑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마이애미에서 온 임OO(39)씨 부부는 "고민 많이 했다. 다른 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지도자를 원한다"라고 했고, 진성호TV, 김동길 교수, 김영호 교수의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 김진아 할머니(75)는 "자유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미와 중국에 가까운 정책을 추진하는 후보는 반대다"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올랜도 남부에 사는 조모(78) 할머니는 "한국이 너무 좌파로 바뀐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어떤 나라냐! 기독교를 전해주고 6.25 전쟁 때 우리를 살린 나라다. 영육간에 은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안 오던 투표장 찾은 목회자들 이번 대선의 재외투표에서 매우 특이하게 나타난 현상이 하나 있다. ‘종교적’ 이유로 투표장에 나타난 목회자들이다. 기자가 인터뷰 도중 '우연히' 만난 개신교 목사는 다섯명이다. 지난 19대 대선 취재때도 여러 시간 투표장을 지켰으나 한 분의 목사를 만난 게 고작이었다. 올랜도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한인교회 박모(53) 목사는 "지난 15년 동안 한번도 투표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투표하기로 마음 먹었다"라면서 "신앙이 바른 기독교인이라면 정치 이념이 신앙보다 앞설 수 없다. 신천지와 관련 있고 무속에 빠진 사람에게 투표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두 시간 거리의 탬파 새믿음교회 김춘식(56) 목사는 "캘리포니아 풀러신학교의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교수가 '3월 9일은 기독교인들이 신앙 고백하는 날'이라고 하더라. 어떻게 무속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구글로 검색해 보니 “3월 9일은 기독교인들이 신앙고백 하는 날이다”라는 제하의 김세윤 교수의 유튜브 동영상이 떠다니고 있었다.
탬파에 거주하며 달라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에서 교회음악을 가르치는 강민희(50대) 교수는 "한국을 오가며 젊은 사람들이 희망,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현 정부는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에 실패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후보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올랜도 제일장로교회 김문수 목사는 "기본적으로 신앙 문제는 선택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종교인이기는 했지만 정치를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라고 했고, 한국에 거주하다 잠시 귀국하여 투표장을 찾은 김석원(77) 목사는 "무속논란은 여당의 프레임으로 본다.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결 다른 ‘민주주의’의 대결? 늘 그렇듯 플로리다 대선 재외투표 인터뷰에서 도출된 핵심 키워드는 ‘교체’냐 ‘유지’냐 였다. 젊은층과 올드 타이머들은 대체로 정권교체를 통한 변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분명하게 감지됐다. 반대로 50대 또는 한국에서 민주화 과정에 직접 참여했거나 경험한 측은 ‘집권 연장’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의 결실을 요구하며 집권연장을 기대했다. 경제.사회문제나 대외정책 등 보다는 이념을 선택의 우선순위로 투표한 분들도 상당수 였고 목소리는 컸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의 퇴보를 우려해' 특정 후보들 선택한 분들로,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된 이민 올드타이머 그룹이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히틀러'니 '빨갱이'니 공공연하게 외치고도 끄떡없는 한국사회를 들어 '자유민주주의의 퇴보'란 주장이 타당하냐는 질문을 받은 한 투표자는 격분한 어조로 "반미, 친북, 친중 정책을 펴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증거"라고 주장했다. 평화와 선린 우호, 국익 중심의 전략적 등거리 외교를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두고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시아 1위, 세계 16위(2021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의 민주주의 평가)로 인정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수 있는 '언론 자유도'에서도 한국은 아시아 1위(국경없는기자회 평가)에 올라 있다. 투표장이 닫히는 것을 보고 귀가하며 든 생각. 이번 대선은 친미 '자유민주주의'와 촛불시민의 '참여 민주주의'의 대결인가?
한편 올랜도 투표소를 포함하여 애틀랜타총영사관 관할 4개 투표소의 총 투표자 현황을 보면, 등록 유권자 5527명 가운데 3748명이 투표해 67.81%의 투표율을 보였다. 지난 19대 대선 투표자 4276명(70.5%)에 비하면 528명(2.7%)이 줄었다. 투표소별로는 애틀랜타 2610명, 몽고메리 416명, 올랜도 391명, 랄리 331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애틀랜타 관할 4개 투표소와 중남미 8개 공관 투표소의 기표함은 3월 2일 대한항공편 외교행랑을 통해 본국으로 이송된다. 이번 대선에서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투표를 하러 온 유권자들도 있었다. 기자가 투표장 입구에서 만난 미등록 유권자도 5명이나 되었는데, 추후 선거에서 등록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승완 선거영사는 이에 대해 "신고신청 홍보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겠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면서 "재외국민들이 선거에 좀더 관심을 갖고 신고 신청기간, 방법, 투표소 방문시 지참물 등과 관련하여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하기 보다는 확실한 정보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모습도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강 영사에 따르면 투표일을 이틀 앞둔 23일 애틀랜타 지역 보수단체가 투표안내를 빙자하여 보수 투표자 결집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선거법 위반행위가 발생했다. 이 단체는 모 일간지 23일치 신문에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불법 광고를 게재해 경고를 받았다. 이 단체와 더불어 경고를 받은 언론사 측은 '광고비가 부족해서 그랬다'는 해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올랜도 우성식품 다목적실에서 실시한 플로리다 지역 대선 재외투표는 애틀랜타총영사관 조 경찰영사와 정유정 사무보조원을 비롯하여 미리 모집한 6명의 현지 도우미 청년들의 관리아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투표자들은 투표장 입장에 앞서 빠짐없이 발열 체크를 하고 마스트를 착용한 채 입장했다. 중앙플로리다한인회(회장 이재화)는 우성식품 앞에 안내 데스크를 별도로 운용, 투표자들을 안내했다. 이재화 회장은 마스크, 소독제, 음료, 스낵 등을 사재로 구입해 투표자들에게 제공했다. 박석임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도 수시로 투표장을 방문해 안내하고 투표과정을 지켜봤다. 장익군 전 평통협의회장과 김온직 전 탬파한인회장도 투표장을 방문해 한인회와 투표 관리팀을 격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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