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극복 48년, 52년 올림픽 첫 연속 금
뉴욕=민병옥기자 newsroh@gmail.com
아시안 최초의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가 향년(享年) 96세로 별세했다. USC대학은 지난 3일 리 박사는 2일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5피트(157cm)의 단신인 리 박사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 3m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그는 만 32세였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출전, 10m플랫폼에서 또다시 정상에 올라 올림픽 다이빙 사상 최초의 연속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과 64년 동경올림픽에서 미국수영대표팀을 지도했고 1984년 LA올림픽과 1988 서울올림픽의 영웅 팻 맥코믹과 그렉 루가니스 등을 양성(養成)한 주인공이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자의 후손인 리 박사는 1920년 8월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백인에게만 자유 개방된 수영장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어렵게 수영을 배웠다.
수영을 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늦추지 않은 그는 USC 의대를 졸업하고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됐다. 그는 1953년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모국에서 3년간 미군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는 새미 리 스퀘어 명명식이 열렸고 2013년엔 초등학교 한곳이 닥터 새미리 메디컬 앤 헬스사이언스 마그넷 스쿨로 명명되기도 했다.
고인은 아내 로즈 여사와 두명의 자녀 파멜라와 새미 주니어, 세명의 손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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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관 시절의 새미 리 박사 <이상 사진 www.ko.wikipedia.org>
<꼬리뉴스>
새미리 올림픽 수영복 독립기념관 기증
새미 리 박사는 1920년 8월 1일 캘리포니아 주 프레즈노에서 한국에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은퇴후인 1953년~1955년 미8군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이필중, 조창제, 송재웅 등 다이빙 선수를 지도했고,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도 한국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미주 한인들은 물론, 아시아계 전체를 빛낸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그는 여러 차례 대한민국 대표팀을 격려했고 평창의 2010년과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0년엔 독립기념관에 올림픽 출전당시 착용한 수영복과 수영모를 기증(寄贈)했다. 그의 기증품은 2012년 8월 13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01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체육발전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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