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고토리의 별’ 기려
뉴스로=임지환기자 newsroh@gmail.com
‘고토리의 별’ 아시나요.
세계 전쟁사에서 2대 겨울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전투(長津湖戰鬪)를 기리는 기념비가 2년만에 준공됐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17일간 영하 30-40도의 혹한 속에서 미 제 해병 1사단 1만5천여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명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성공적으로 철수한 전투를 말한다. 당시 병력엔 카투사 800여명과 영국 해병 특수부대 200여명도 포함됐다.
당시 전투에서 미군은 4,500여명이 전사하고 7,500여명이 부상을 입어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이지만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군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겨울전투로 꼽힌다. 장진호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흥남까지 퇴로가 만들어졌고 피란민 10만여명을 포함, 총 20만여명의 흥남철수도 가능했다.
12월 8일 개마고원과 가까운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에서 해병1사단은 영하 30도의 흐린 날씨에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밤 매복한 중공군에 완전 포위되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그런데 돌연 하늘이 밝하지며 큰 별이 빛나면서 이를 하늘의 응답으로 여긴 해병대원들은 용기백배하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미 해병대는 이때 떠오른 별을 ‘고도리의 별(Star of Kodori)’로 명명하고 참전 용사들은 장진호 ‘고토리의 별’ 장식을 배지로 달고 다니며 그날의 감격을 기리고 있다.
버지니아 콴티코의 해병대 박물관에 들어서는 장진호 전투비는 국가보훈처에서 15만달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15만달러,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와 한인들이 5천달러를 기부했고 8각 모양에 2미터 높이로 꼭대기에는 ‘고토리의 별’로 장식됐다.
다음달 4일 열리는 준공식엔 박승춘 보훈처장, 표세우 국방무관, 황원균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장, 이병희 워싱턴안보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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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장진호전투로 흥남철수 가능했다
장진호 전투(長津湖戰鬪)는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겨울, 미해병1사단이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임시 수도인 강계를 점령하려다 오히려 장진호 근처의 산 속 곳곳에 숨어있는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 12만 명 규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를 겪었다가, 성공한 후퇴 작전이다.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진행되었다. 본 전투의 이름의 장진(長津)은 영어로는 일본어 독음을 따서 Chosin(ちょうしん)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한국어 지도가 없고 일본어 지도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의 전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으며, 생존자가 몇 안 된다 하여 영어로 그들을 가리켜 "The Chosin Few"라 하였는데 "The Chosen Few" (선택 받은 소수)를 빗대고 있다. 미 해병1사단은 10배에 달하는 중공군 12만 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7개 사단이 궤멸적(潰滅的) 타격을 입었고 함흥 지역 진출이 2주간 지연됐다. 이에 따라 한국군과 유엔군, 피란민 등 20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고, 서부전선의 미 8군이 중공군을 방어할 수 있었다.
흥남 철수는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킨 작전으로 바로 1.4 후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