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대사, 90세 생일잔치서 특별강연
“남북이 ‘모라토리움’ 선포하고, 북미간 직접 대화해야” 주장
“미국은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 90년대 서울 불바다설이 나돌던 시절,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을 만나게 했던 핵심인물인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8일(화) 이렇게 말했다.
90세 생일을 맞아 한인사회가 마련한 졸수연 축하잔치에서 강단에 오른 레이니 전 대사는 정정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한반도의 안보현실이 매우 위태롭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팬은 아니지만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한 뒤 “한반도의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단언했다.
레이니 전 대사는 “미국은 간단하게 북한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결국 수백만의 사상자만 내는 비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서울을 방어(defense)할 수는 있어도 보호(protect)할 수는 없다”면서 사드를 비롯한 무기체제가 100%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의 행동을 참지 않겠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긴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실수할 가능성은 엄청나게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한반도 안보불안을 해소할 방안에 대해 레이니 대사는 “이 상황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반도에 ‘모라토리움’(휴지기)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모든 미사일과 핵관련 활동을 중단하고, 남한 역시 군사훈련 활동 중단을 포함하는 일체의 전쟁관련 행위 중단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니 전 대사는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 휴식 상태를 갖게 될 것이고, 나는 북한의 특사와 은퇴한 군 장교 및 외교관들이 가끔씩 오슬로, 제네바, 모스크바, 뉴욕 등지에서 돌파구를 찾아갈 회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은 북한을 인정하거나 조건부항복을 받아내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며 “중요한 점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책임질 일을 저지르는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나도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과거 연변 핵시설을 동결했던 것을 풀었던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직후였다”고 꼬집었다.
북한이 그 이후로 실험한 모든 핵폭탄이 플루토늄 폭탄이라는 점이 그 반증이라는 것.
스스로를 코리아 러버(Korea Lover)로 칭하는 레이니 전 대사는 “제2의 한국전쟁은 바보짓”이라며 “한반도를 한 번 더 파괴하는 것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그가 북한에 대해 확고하고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호전적인 행동을 제거하고, 분노나 복수심을 선동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의 자제에 대해 진정 감사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단체들에 이것이 필요하다”며 “평화와 지혜, 그리고 이해의 감각,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뤄지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감리교 목사이기도 한 그는 강연 마지막에 참석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주문하고, “자신의 아들인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과 같은 지혜와 참을성을 기도하며 겸허히 기다리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강연 이후 레이니 전 대사는 뉴스앤포스트와 만나 북한과의 대화 채널에 대해 “내가 아는 한 공식적인 대화 채널은 없다”면서 “정부와 군부에 반대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오슬로, 제네바, 뉴욕, 모스크바 등지에서 회의를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과 함께 참여해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기인 만큼, 안정을 찾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을 방문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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