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기에 살아남은 이들은 죽음을 경외하며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그 장례예식은 죽은 이의 몸을 처리하는 동시에 모든 이들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과정이었다. 사진은 고인을 추모하고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한술장례 추도실. 사진 : 한솔장례 제공
‘한인 직영-한인전용’ 장례식장 개원한 한솔장례 강병조 장례지도사
장례예식의 내용과 형식 모두 중요... 유가족 부담 덜어주고자 예식 장소 개원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이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경외하며 죽은 이를 보내는 의식과 함께 무덤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죽음은 신성한 것이었고, 그에 맞는 의례를 치렀다. 이 장례의식은 죽은 이의 몸을 처리하는 동시에 모든 이들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과정이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일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했고,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앞으로 자신에게도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달랬다. 또한 장례는 공동체의 통합과 유지라는 사회적 기능으로써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시대 상황에 따라 절차상의 변화는 다소 있었으나 이 의식의 본래 의미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인류학자인 앤마리 말레피트(Annemarie De Waal Malefijt)는 저서 ‘종교와 문화’(Religion and Culture)에서 죽은 자에 대한 의례를 ‘사자(死者) 의례’와 ‘조상 숭배’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사자 의례에서는 장례 절차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시신을 처리하는 데 머문다.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육체와 분리하여 가능한 한 빨리 이승을 잊어버리고 저승에 머무르도록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자 의례에서는 장례에 많은 돈을 들여 시신을 처리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이승에서 쓰던 물건들을 없애고 그 이름이나 기억을 빨리 잊도록 하려는 것이다.
장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과정
반면 조상 숭배에서는 장례에서 일정한 격식과 절차를 거친다. 또 가급적 죽은 자와 이승의 산 자들을 연결시키려고 한다. 죽은 자들이 지녔던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드러낸다.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에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며,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그의 말을 빌자면 우리 한민족의 장례는 조상 숭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전통적인 장례는 주검을 처리하면서 그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슬픔을 나누고 또한 죽음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를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라이들미어(12 Pike St, Rydalmere)에 문을 연 한솔장례식장 빈소. 이곳 장례예식장은 고인을 장지로 모시기 전까지 모든 장례예식을 한 자리에서 거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진 : 한솔장례 제공
오래 전부터 시드니 한인 커뮤니티에는 한인 동포의 장례의식을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또 짧은 기간이지만 장례회사를 운영했던 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뒤를 이어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비교적 젊은(?) 동포 가운데 강병조 장례지도사(한솔장례 운영)가 있다. 약 7년 전부터 이 분야에서 일해 온 그가 ‘우리네 예법에 따라 정성을 다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예우’하고자 최근 제반 장례 의식을 한 자리에서 수행할 수 있는 전용 예식장을 개원했다.
이 예식장에 대해 그는 “문화인류학자인 고 이문철 박사를 통해 오래 전 시드니에 한인 동포가 운영했던 장례회사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멜번이나 브리즈번에 이런 예식장이 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으니 한인 직영, 한인전용의 장례식장은 그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례예식 절차에 필요한
제반 시설 갖춰
장례는 장지를 선정하고 시신을 운구하여서 처리하는 절차이다. 망자가 죽은 양택에서 그가 묻힐 음택으로 옮겨가는 과정부터 장례는 시작된다.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장례 절차는 장지로 시신을 운구하기 전날까지 조문객을 받는 빈소 운영, 추도식, 입관식, 장례식, 하관식 순서로 진행된다. 화장의 경우에는 화장터에서 하관식 대신 화장 예식을 갖는다.
최근 문을 연 한솔장례식장은 장지 외에 진행되는 모든 절차를 행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조문객을 맞는 빈소, 문상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 입관-장례-추도식을 가질 수 있는 예식장을 갖추었다.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모든 장례절차를 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서비스 시설을 갖춘 셈이다.
특히 호주 현지는 물론 한인 커뮤니티 또한 고령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인전용 장례예식 공간이 필요했다 게 동포사회의 반응이다. 현재 호주의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약 420만 명)로, 기대수명은 82.8세로 한국(82.7세)과 유사하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 고령자들은 초기 이민세대들이다. 강 장례지도사는 “언제, 어떤 이유로 호주로 이주하셨든 이들은 지금의 호주 한인사회를 형성해 놓은 분들로, 이제는 연세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서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분들을 자주 접하고 또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있다”면서 “지금의 한인 세대 어떤 계층보다 초기 이민자로 힘든 삶을 개척하신 분들의 마지막 길을 정성껏 모시는 것은 유가족 가정을 넘어 한인사회 모두가 예우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한솔장례식장 또한 이를 감당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문상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사진 : 한솔장례 제공
강 장례지도사는 본래 노동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스무 살 되던 해 가족을 따라 호주로 건너온 그는 이곳에서 대학을 마친 뒤 건설분야 노동조합(CFMEU)과 청소 노조에서 활동했다. CFMEU에서는 한인 타일업 조직가로, ‘아주 특별하고 귀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약 4년간 한국의 ‘한국건설연맹’에서 근무하며 20살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사회 여러 계층의 구조적 문제들을 몸소 접하기도 했다. 4년간의 계약 후 다시 호주로 돌아와 청소노조, 건설업 안전교육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장례 절차, 너무 쉽게
여기는 풍조 ‘아쉽다’
이런 노동 분야의 이력을 버리고 장례지도사로 나선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였다. “지난 2012년 외조부가 돌아가시어 장례 일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회가 되어 묘지 분양회사로 옮겨가게 되었고, 2015년에는 ‘한솔장례’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지난 7년 동안 강 장례지도사는 수백 건에 이르는 동포분들의 장례식을 진행했다. 그는 “잘 하는 장례 진행은 없다고 본다”면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진행 과정에서 실수를 안 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분야의 일을 시작하기 전, 장례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은 부차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그는 “하지만 장례 일을 하면서 내용뿐 아니라 형식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이곳에서 어떤 연유로든 돌아가신 분들의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솔장례식장 입구(사진). 한인 전용 장례예식장을 개원한 강병조 장례지도사는 "어떤 연유로든 돌아가신 분들의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자신의 소임은 “고인에게 마지막 예우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 한솔장례 제공
강 장례지도사의 부모는 초기 이민세대이다. 그가 장례 예식을 진행한 수백 건 가운데 대부분은 그의 부모와 비슷한 시기에 호주로 건너온 이들이다. 그러기에 “마지막, 온전한 장례의식을 통해 그분들의 삶과 뜻이 후손은 물론 호주 한인사회에도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마지막 길인 장례 절차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며 “젊은 분들의 경우에는 인생 경험이 짧아 그렇겠다 싶지만 연세 드신 분들이 그러면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부모는 최소 9개월, 출산과 육아 준비를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할 때도 준비해야 할 내용과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는 그는 “누구나 앞으로 닥칠 죽음에 대한 준비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면서 “누구나 죽음을 준비하고 이후의 일을 대비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